살면서 진정 해 볼만한 것
'말(언어)을 넘어선다'는 것은 별로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실은 세상 수많은 일들이 모두 말(언어, 생각, 개념, 분별)을 넘어서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요리를 봐도 그렇습니다. 지금 스파게티를 처음으로 만들어 보려 합니다. 자주 먹는 봉골레 스파게티를 골라봤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옆에서 만드는 법을 아는 사람이 말을 해주어도, 레시피나 요리 설명서를 봐도 그건 '봉골레 스파게티 요리하기 그 자체'가 아닙니다. 결국엔 그 '말들을 넘어서(말들과 직접 상관없이)' 내가 손수 만들어 봐야 합니다. 그래야 요리 자체가 만들어집니다. 또 '요리를 실제 한 것, 실제 할 줄 아는 것'이 됩니다.
요리를 직접 할 때 내가 몸과 마음의 움직임으로 하는 그 모든 과정 중에서 말로 설명을 듣고 그대로 적용해서 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말과는 전혀 상관없이 내가 느끼고, 감을 잡고, 만들어 나가야 할 경우들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말로 알려주는 것이 요리 과정 '그 자체'는 결코 아닙니다.
다른 예로, 양궁을 배운다고 합시다. 되도록이면 과녁을 맞힐 수 있도록 감을 키워야 합니다. 코치나 선배들이 어느 정도선까지는 말로 가르쳐 줍니다. 하지만 어느 선 이후부터는 그 말만으론 되지 않습니다. '말을 넘어선' 혹은 '말과 상관없는' 것들을 내가 직접 느끼고, 알아차리고, 익혀가야 합니다. 활쏘기 그 자체는 그에 대한 말, 언어, 생각들과 본질적으론 아무 상관없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구조는 꼭 몸으로 하는 영역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정신, 의식, 마음으로 하는 과정에도 똑같이 적용이 됩니다. 그 대표적인 영역들이 바로 철학, 명상, 종교 등의 영역입니다. 아니면 넓게 잡아서 '인문학적 영역'이라고 할까요.(하지만 '인문학적 영역'이란 말은 이 말을 듣고 해석하는 이에 따라 여러 가지로 보는 것이 가능해서 좀 애매한 표현이기도 합니다.)
여하튼, 이러한 정신적인 영역에서도 위의 스파게티 만들기나 활쏘기처럼 실제 뭔가 '넘어섬'이 있으려면 처음엔 할 수 없이 '말'로 접근하게 됩니다. 특히나 위의 요리나 양궁처럼 몸으로 하는 것이 아니어서 더욱 그렇기도 합니다. 물론 정신적 영역도 나중에 알고 보면 결코 '말'로만 하는 경우가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만 여하튼 말로 시작해서 말로 진행하고 말로 끝내려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경우든 인간의 모든 활동은 어떤 영역에서든,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그 자체'는 모두 '말을 넘어서' 있게 됩니다. 심지어 걷는 것 하나라도 말이지요. 그러니 말에, 생각에, 개념에, 언어에, 앎에 너무 많이 의지하는 우리의 모습을 이제는 조금 돌아볼 때가 되지 않았나 사료됩니다.
왜냐하면 말(언어, 생각, 개념, 분별, 앎)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무의식적 습관 때문에 우리 인류가 겪는 고통이나 괴로움이 결코 작지 않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