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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루 MuRu Jan 04. 2017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

'있는 그대로 본다'는 건, 여러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이렇게 보면 유용합니다.(사람을 비롯한 모든 대상, 상황 등에 공히 적용) 


일단, 인간이 아무리 '있는 그대로 본다'고 해도 '기존의 관념'으로 보는 건 물론 계속 있습니다. 이건 기억이기도 하고 또 인간의 앎이기도 하니까, 인간이 이미 알게 된 것이 뇌에서 자동으로 떠오르는 건 어떻게 할 수가 없지요. 


안 떠오르게 할 수도 없고, 떠오르는데 없는 척하는 건 더더구나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무시, 억압, 회피, 왜곡 등이 효과가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부작용만 불러오죠. 


그래서, 기존에 나의 앎대로 자동으로 대상을 파악하면 그냥 '아, 기존의 앎으로 보고 있구나'하고 인정해 버리는 것입니다. 사실은 눈치를 채는 것이기도 하죠. 허락하는 것입니다. 다른 추가 반응을 더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추가 긍정이든 추가 부정이든 말이지요.


그럼 이게 끝인가?


이게 끝일 수도 있구요. 아니면 이제 여기에 동시에 '다른 가능성'을 활짝 열어 놓는 것입니다. 즉 내가 가진 기존의 앎으로 상대와 대상 혹은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전부와 절대가 아님을 동시에 눈치채는 것이지요. 혹은 허락하는 것입니다. 허용하는. 또 기존 앎의 절대, 전부화를 포기하는. 


여기서 두 가지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그 '다른 가능성'들을 다소 구체적으로 떠올려 볼 수 있어요. 저 사람은 혹은 이 상황은 이러저러한 부정적 앎으로 나에게 느껴지고, 파악되고, 믿어지는데 이제 그게 아니라 저러저러한 여러 다른 특성, 내용, 의도, 맥락 등일 수 있다고 좀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이지요. 


예로, 누가 나에게 특정한 말이나 행동을 하면 이전에는 그걸 한 가지 의도 즉 나를 반대하거나 시비하는 것으로만 파악했다면, 이제는 다른 의도를 예상, 예측, 추론, 파악하는 것입니다. 


그 예상된 다른 의도가 맞거나 틀린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냥 '그럴 수도 있음'의 가능성을 열어 두는 것이지요. 혹은 시비 거는 게 맞더라도, 그것만이 전부가 아닌 것입니다. 물론 기존의 판단도 포함해서입니다. 


또 하나는, 구체적으로 떠오르는 '다른 가능성' 없이 그냥 열어 두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딱히 떠오르거나 느껴지거나 추론되는 게 없어도 '다른 가능성이 있음'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지요. 그건 나중에 드러날 수도 있고, 별다른 것 없을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기존의 내 판단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와 상관없이 그냥 열어 두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살아가면서 나름의 안목으로 대상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하려고 무척 애를 쓰고 있습니다. 노력도 많이 하죠. 그래서 또 자신의 기존 앎, 기존 판단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니까요. 


하지만 그런 아까움 외에, 나에게 진짜 이익되는 게 뭔지를 봐야 합니다. 기존의 앎, 기존의 판단 등을 무조건 절대시, 전부시 하기만 하는 것이 나에게 이로운가, 혹은 비록 아깝고 아쉽지만 '다른 가능성'도 동시에 계속 열어 두는 것이 나에게 이로운가. 


물론 기존의 앎, 판단과 다른 가능성들 중 어느 것이 더 적절할 것인가는 상황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이것도 항상 염두에 두며 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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