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자기 미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루 MuRu Oct 26. 2015

26. 나를 괴롭히는 '반대 의견' 대처법

심리적 2차 반응, 2차 화살을 주의하자

(주: 이 글은 '반대 의견'에 대한 감정적, 심리적 대처법에 대한 글입니다. 구체적인 논리적 대응법은 이후 글로 올릴 것입니다. 그런데 감정적, 심리적 대처가 먼저 잘 되면 그 후의 이성적, 논리적 대처는 저절로 여유롭게 잘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감정편' 글을 먼저 쓰는 것입니다. 하지만 추후 글에서 '반대 의견'에 대한 구체적인 논박 방법론도 상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물론 반대 의견은 무조건 대처만 할 대상은 아니며 포용하고 조화시키는 것이 좋은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런 측면은 또 따로 써야 할 주제이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공통으로 경험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나의 견해나 생각, 표현에 누가 반대할 때의 반응과 대처 문제입니다. 보통 곧 잘 지내던 친구나 지인들과의 의절도 반대 의견때문에 일어나곤 하죠. 또한 상대방이 먼저 표현한 내용 중에 나의 평소 관점과 반대가 되거나 어긋나는 것이 있을 때 나에게서도 그 반응이 일어납니다. 


내가 쓴 글이나 한 말에 대한 명백한 반대 의견들이 주는 스트레스는 꽤 큽니다. 이곳과 같은 온라인 상의 글쓰기 공간 같은 곳은 '내 마당'이어서 좀 덜 한 편인데, 다른 이의 공간에서는 서로 곧잘 좀 쎄다 싶은 반대 의견들로 논쟁이 붙곤 합니다. 아무래도 타인의 공간에는 다른 성향의 여러 분들이 있고 또 그곳에서는 나는 단지 '제3자'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온라인 공간만이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일어난다. 




반대 의견에 대한 1차 반응


반대 의견을 직면했을 때 우리들에게 1차로 다가오는 건 '생리적 반응'입니다. 몸의 육체적 반응이죠. 주로 긴장 반응, 교감 반응의 자율신경적 반응이 되겠습니다. 이것은 각 개인의 타고난 생리적 기제에 따라 그 반응의 강도와 정도가 좀 다양하기도 합니다. 어떤 이는 좀 강하게 오고 어떤 이는 약하게 오는.


갑자기 온몸의 근육이 움찔 긴장할 수도 있고, 아랫배 어느 부분에서 뭔가 알 듯 모를 듯한 불쾌감이 일어나는 듯도 하고(장과 위가 불편하죠), 가슴 부분이 두근거릴 수도 있구요. 그리고 얼굴에 피가 몰리면서 다소 화끈거릴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리 반응과는 별개로 심리적 불쾌감이나 기가 참, 억울함, 분함 등이 올라올 것입니다.


우선 고려되어야 할 것은, 반대 의견에 대한 이러한 생리적, 심리적 반응은 아주 '자연스러운 반응'이라는 것이겠습니다. 내가 딱히 속이 좁아서도, 심약해서도, 교만해서도, 어리거나 어리숙해서도 아닌 아주 당연한 반응이라는 것이지요. 살아 있는 생명체라면 당연히 느끼는 것입니다.


물론 훈련이나 기타 통찰에 의해 언젠가는 이러한 최초의 생리적, 심리적 반응의 강도도 점점 약해질 때도 오겠지만 꼭 그것이 목표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이것이 '자연'인 이유는, 단세포 생물인 아메바를 생각해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는데 그 맞은 편이나 옆에서 다른 방향의 무언가가 부딪힐 때 당연히 충격과 저항감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건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지요. 없는 것이 오히려 불가능하며, 없으면 이상한 것입니다.


뇌과학적 근거도 있습니다. 가장 최근의 어느 연구를 보면 심리적 장애와 물리적 장애에 반응하는 뇌의 부위가 같다고 합니다. 사람이 실제 길 같은 곳을 가다가 자신의 앞에 물리적인 장애물이 있을 때 반응하는 뇌의 영역과, 종교나 사상 그리고 자신의 집단 등에 대해서 추상적으로 위협이나 반대, 장애가 되는 요소를 만났을 때 반응하는 뇌의 영역이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반대 의견을 접할 때 생기는 첫 번째의 생리적, 감정적, 심리적 불쾌 반응은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반대 의견에 대한 2차 반응과 그 처리


핵심은 두 번째 반응입니다. 즉, 첫 번째 일어난 생리적, 심리적 반응들에 대한 우리 자신의 2차 반응인 것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뭔가가 앞으로 나갈 때, 즉 내 생각의 어느 방향으로 전개될 때 그 방향과 다르게 오는 여러 생각들은 존재하는 것이 당연한데,  그때 자연스럽게 생기는 충돌감과 저항감 등에 어떻게 2차적으로 반응하는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2차 반응 중 가장 곤란한 것이 2차적인 '감정 반응'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1차적인 여러 생리 반응들은 자연스러운 것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그 1차 반응에서, 반응 자체는 어떤 좋고, 나쁨이 없는 순수 신호인데 우리는 그 신호를 주로 부정적으로(특히 반대 반응에서는 더욱 더) 해석하고 느낍니다. 그리고 이 '부정적인 해석과 느낌'이 바로 우리의 2차 반응이 되는 것이지요.(이 2차 반응에 따르는 3차, 4차 반응도 또한 가능한데, 결국 포괄적으로 모두 2차 반응이 되는 것입니다)


1차 반응은, 글자 그대로 최초의 순수 반응입니다. 방향이 다른 두 개체가 부딪힐 때 나오는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이것은 여지가 없습니다(물론 내 쪽에 부딪힐 요소가 없으면 그런 반응도 생기지 않겠습니다만). 그냥 있는 그대로, 느껴지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수긍하고, 수용해 버리면 됩니다. 그리고 그 반응 자체에 대해서 개의치 않는 것입니다. 상관치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냥 그걸 잘 '이용'하는 것입니다. 마치 앞서 말한 단세포 생물 아메바처럼 그냥 자연스럽게 뭔가 앞에 있으니 타고 넘든지, 우회해서 가든지, 반대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게 정답입니다.


어쩔 수 없는 1차 반응과 달리 2차 반응은 조절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즉 우리의 노력에 따라 개선의 여지가 있습니다. 또한 2차에서도 안되면 3차, 4차에서 여지가 있습니다(앞서 말했듯이 모두 통틀어 2차 반응입니다).


보통은 이 불가항력의 1차 반응을 어떻게 해 보려 하거나, 받아들이거나 인정하지 못하거나 그리고 심리적으로 허용하지 않으려 하면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모두 2차 반응입니다. 이걸 눈치 채야 합니다. 즉, 2차 반응은 순수 자연인 1차 반응을 자연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 그 자체입니다. 1차 반응을 '처리 해야 한다'며 연쇄반응으로 나오게 되는 것이 모든 2차 반응인 셈입니다. 이게 어느 정도 이상 교묘해서 만흔 경우 눈치채지 못합니다.


보통 우리가 가장 많이 가지게 되는 2차 반응은, 우선 자기 자신에 대해서 가지는 부정적 느낌들입니다. '내가 만만하나?, 내가 하잖게 보이나?, 내가 뭔가 잘못했나?, 내가 뭔가 부족한가?, 내가 제대로 못했나?, 나를 뭘로 보고?, 나를 알아 보지 못한단 말이지?' 등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사실은 그 반대, 충돌, 저항은 '나'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데 말이지요. 그건 그저 '내 생각' 한 조각에 대한 또 다른 '생각 조각'의 충돌입니다. 물론 그 생각을 품고 또 표현한 주체로서 내가 그 생각과 나를 동일시하게 되는 프로세스는 있습니다만, 그러한 동일시와  관계없이 '그 생각은 나 자신이 아닙니다'. 그런데 보통 우리는, 우리의 생각이 아닌 '나 자신'과 연관하여 그 상황을 전개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후의 상황은 이제 혼란에 빠지기 시작합니다.


비유하자면, 내가 공 하나를 던졌는데 누가 던진 다른 공이 내 공과 부딪힙니다. 때에 따라선 그런 상황에서도 화를 내거나 불쾌감을 느낄 때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론 그 공은 공이고 나는 나입니다. 그래서 공을 다시 주우려 가는 번거로움은 있겠지만, '공을 던진 나'는 본질적으론 그 충돌과 아무 직접적 상관이 없습니다. 이걸 눈치 채야 합니다.


또 다른 2차 반응은 상대방에 대해 가지는 부정적 느낌들입니다. '저 치는 뭐냐?, 왜 날 미워하지?, 사람이 왜 저리 부정적이야?, 왜 저리 단편적이고 일방향이야?, 왜 저리 생각이 이상해?, 오냐, 나도 복수해 주마, 나중에 보자, 너는 끝이야' 등등 여러 가지입니다.


이 경우도 공의 비유는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람이 표현한 생각은 그 사람이 던진 공입니다. 그 사람은 그 공이 아닙니다. 곧 그 사람의 생각은 그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보통 '그 사람'을 공격하거나 미워하거나 그에게 화를 내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 후의 상황은 혼란에 빠지기 시작합니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는 '단지 의견 표명'이 아니라 그에 수반되어 후속 과정으로 여러 심각한 일들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또 그 상황에 맞게 여러 가지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조치를 취하며 나아가야 하겠지요. 아무 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말은 결코 아니니 오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글은, 우리가 최선의 행위를 취하되 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가지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반대 생각, 의견의 표현' 문제는 대부분이 '단지 생각이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그 이상의 무엇은 없습니다. 그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뭔 일들이 후속으로 일어나거나 하는 일은 드물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고작 그 '생각의 다름'을 허락하고 허용하고 수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선 '정신적 독재가'가 되는 것이지요. 만약 나에게 힘이 있다면, 그의 그런 '다른 생각' 따위는 무참히 없애거나 삭제하고 싶어 할 수도 있는. 실제로 그런 일은 하지 않지만, 나의 '생각의 나라'에서는 이미 독재자가 된 것입니다. 물론 실제 외부로 표현하지 않은 한 별 탈은 없습니다만, 내가 괴로워집니다. 


그러므로 다시 정리해 보면 포인트는 두 가지입니다. 복습 차원에서 한번 더 보기 바랍니다.


첫째, 충돌과 저항으로 일어나는 1차 반응을 자연스러운 반응으로 수용하고 받아주고 이해하고 알아차리기. 즉 이를 통해 1차 반응으로 끝이며, 불필요한 후속 반응으로 넘어가지 않게 되는.


둘째, 1차 반응에 대한 추가적인 해석과 느낌인 2차 반응을 제대로 다루기. 

일어나는 대로 기꺼이 경험해 주는 것이 그 방법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무심하기'. 일어나든 말든 개의치 않기, 상관하지 않기, 영향 받지 않기. 무덤덤해 지기. 무관심해 지기. 그냥 냅두기. 그래서 자연스레 흘러가고 지나가게 하기. 2차 반응을 직접 조절하거나 바꾸거나 없애는 것이 아님을 주의. 그런 애씀, 의도 자체가 2차 반응임. 이게 가장 많이 빠지는 함정임. 마음은 그렇게 하면서 실제 외부적으로 해야 할 일들은 다 하기.


# 첫째 프로세스가 잘 되면 잘 될수록 둘째 프로세스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짐.

# 또한, 다루어지지 않는 즉 아직 통제되지 못하는 2차 반응에 대해서도 마치 1차 반응을 자연스럽게 보듯이 보는 것이 핵심. 2차 반응으로 고민하며 새로운 3차 반응을 일으킬 필요 없음. 여기서 제일 많이 걸림.

매거진의 이전글 25. 우리가 관계를 맺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