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나를 통해 나를 다시 만나는 것
나는 너를 통해, 너는 나를 통해
자기 사랑을 완성한다.
자기 존재를 완성한다.
인간은 관계의 존재이다. 살아가면서 여러 형태의 관계를 맺었다 풀었다 한다. 친구 사귀기, 연애 하기, 결혼.
그리고 아이들도 낳는다.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도 있다.
사실 '관계 맺기'는 가장 신비로운 현상 중에 하나이다. 왜냐하면 한 개체가 자신을 넘어서서 존재하게 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관계 맺기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은 '나와 너의 만남'이라기보다는 '또 다른 나를 통해 나를 만나는 것'이다. 이 때 그 '나'들는 이전의 나가 아니다.
그래서 관계는 자기 사랑을 완성시키는 한 방법이 된다. 그 기회가 된다.
여러 관계 중에 가장 신비로운 것은 '자식을 낳는 것'이다. 물론 친구나 연인 혹은 스승과 제자 등의 관계가 그보다 덜 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모두 충분한 의미와 신비를 품고 있다. 다만 자기의 아이를 낳는다는 행위에는 좀 더 직접적인 강렬함이 담겨 있다. 육체적으로도 그리고 정신적으로도.
자기의 아기를 통해, 부모 된 이는 처음으로 '나를 넘어선 나, 나 밖의 나'를 생생한 현실로 만나게 된다. 심지어 부모에게 아기들은 '나보다 더 소중한 나'가 되기도 한다.
나보다도 더 소중한 나라니! 사실 이것은 심오한 철학이나 종교를 통해서나 가능할 것 같은 불가사의 한 신비한 경험이기도 하다.
인간만이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각기 나름으로 자신의 후손을 만든다. 가장 드라이한 생물학적 설명은 이것을 종족번식 본능, 종족 유지 본능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시각으로 보면 이것은 '또 다른 나를 통해 나를 만나려는 본능'이라 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렇게 만나려는 목적은 자기 사랑을 완성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자기 존재를 완성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쩌면 의식적이라기보다는 다분히 무의식적이거나 원형적인 현상이라 볼 수도 있다.
존재의 자기 사랑이 꼭 아이들을 통해서만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여러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있다. 또 부모와 아이들의 관계도 항상 좋기만 하고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때로 비극적이거나 파괴적으로 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모든 부정적 요소들마저 포함해서 부모들이 경험하는 것은 결국 '나 하나만으로 이루어진 자기'에 대한 집착 혹은 착각 혹은 무지, 무명의 극복이다. 어쩌면 이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무아'보다도 더 심층적이고 강렬한 체험일 수도 있다. 만약 제대로 경험하고 알아챈다면 말이다. 그럴려면 다분히 애씀과 자각, 통찰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부모, 자식 간의 관계만이 아니라 사실상 우리들이 맺는 모든 관계엔 그런 원형적 요소가 담겨 있다.
그러므로 우리,
삶에서 맺게 되는 어떤 관계이든
그 관계의 인연이 다 해서 멈추게 되기 전까지는
최선을 다해 소중히 여기고 잘 보살펴 주자.
모든 관계는 곧 기회이다.
나만을 위하거나 그만을 위하는 것이 아닌
나와 그를 넘어선, 존재 자체를 위한.
그리고 존재들의 자기 사랑의 완성을 위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