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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루 MuRu Oct 26. 2015

글과 생각은 그 사람이 아니다

마치 멋진 바이올린 연주가 연주가가 아니 듯.


요요마의 첼로 연주와 같이 멋진 음악 연주를 듣거나 김연아의 피겨 스케이팅 같은 완벽한 스포츠 선수의 움직임을 볼 때, 우리는 그에 깊이 빠진다. 몰입의 정도에 따라 어느 정도의 몰아경을 맛보기도 한다. 


사실 완벽에 가까운 어떤 대상이 있을 때, 그 대상을 바라보거나 느끼는 것을 우리가 좋아하는 이유는 그 대상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경험하고  맛볼 수 있는 그 '몰입, 몰아 상태' 때문이다. 


그 대상은 각자의 상황에 따라 모든 것이 될 수 있다. 사랑하는 아이 혹은 연인, 멋진 자연의 풍경, 예술 작품들, 노래, 연주, 춤,  흥미로워하는 학문적 내용, 철학, 종교적 대상, 깨달음, 그리고 심지어 내가 사라지고 이 모든 것이 사라지는 '무아, 무상, 무주'의 상태까지. 



여기서, 다시 그 대상의 범위를 좁혀서 인간이 만들어 내는 어떤 창작물들도 돌아 이야기해 보자. 


우리는 우리에게 멋진 바이올린 연주를 선사해 준 그 연주자에게 당연히 찬사와 감탄을 보낸다. 왜냐하면 그 연주는 그의 끝없는 연습과 노력 그리고 그 천재성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멋진 스포츠 장면을 선사해준 운동 선수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마땅히 찬사와 호감을 받을 만 하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연주자, 운동선수)가 그 연주 자체, 그리고 그 움직임 자체가 아님을 안다. 두 사례 중에 연주자로만 범위를 좁혀 보면 이 논지를 이해하기에  좀 더 좋다. 


'연주'는 사실 고정된 실체는 없다. 그냥 흘러가는 시공간 속의 한 이벤트이다. 녹음과 녹화를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단지 흔적일 뿐 실제 그 연주는 아니다. 그리고 그 연주는 연주자라는 구체적인 개체를 통해 구현된 것도 맞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연주와 연주자를 혼동하진 않는다.  


연주자는 그의 연주가 아니다.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이 쓴 '글'과 그 글의 내용이 되는 '생각'은 그 사람이 아니다. '말'도 마찬가지다. 


단지 그 사람을 통해 표현된 것일 뿐이다.  


물론 연주자가 준비가 되었기에 그를 통해 감탄할만하게 완전한 연주가 나오듯이, 그 글을 쓴 사람이 어떤 식으로든 준비가 되었기에 그를 통해 그런 글(에세이, 소설, 연설문 등등)과 그 내용이 되는 생각(신념, 가치관, 세계관, 윤리도덕관 등등)이 나온 것은 맞다.  


하지만, 흘러가는 시공간의 이벤트인 연주가 연주가가 아니듯이 글과 그 생각과 말은 그 사람이 아니다. 


글과 생각과 말처럼 

'행동'도 그러하다.  


(* 이 글의 모든 용어와 논지는 테스트 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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