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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루 MuRu Oct 26. 2015

왜 저런 철학자, 작가, 정치인, 종교인에 열광하지?

간단하다. '타인의 취향'이기 때문이다.

왜 저 사람은 저런 철학자, 작가, 정치인, 종교인에게 열광하지?

간단하다. '타인의 취향'이기 때문이다.

취향은 다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취향의 우주는 지극히 평평하다)


음악, 운동, 취미 등에서는 서로 좀 다른 것을 선호해도 취향의 차이이겠거니.. 하면서 이해를 하는데(근데 이런 영역에서도 타인의 취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곧잘 있긴 있지만), 이상하게 '생각, 사고' 등이 추가로 들어가는 영역에서는 서로 잘 이해와 수긍을 하지 않으려 한다.


주로 철학, 종교, 사상, 신념, 가치관, 윤리도덕관, 문학관 등이 그런 영역이다. 사실은 예술 분야도 들어간다. '느낌'의 영역이지만 이에도 역시 생각과 사고 기능이 침투하기 때문이다.


/


이런 몰이해의 이유는 간단한데, 생각이나 사고가 들어가는 영역에서는 괜히 그 '내용물에 대한 자신과의 동일시'가 더 찐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이런 영역에서의 자신의 선택과 취향에 짐짓 큰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마치 다른 것을 선택한 이들은 모르는 대단한 것을 아는 양.


하지만 냉정히 말하면 이것은 단지 심리적 느낌일 뿐, 실제 그 영역이 다른 영역보다 더 특별할 건 없다. 심지어 그 '선택'은 내 의식 속에 쌓인 과거의 정보들에 의한 '편향된 랜덤(randem)'의 기제로 일어난 것일 수도 있다. 단지 내가 의미를 부여할 뿐.


그래서, 단언하건대 작가나 철학자나 사상가나 정치가, 종교인 등에 대한 각 개인들의 선호와 심리적 쏠림은 아이돌 가수 등들에 쏠리는 10대 아이들(요새는 어른들도 많지만)의 그것과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다.


물론 사회적으로 가지는 영향력이나 그를 통해 일어날 수 있는 결과는 상대적으로 다를 순 있다. 하지만 그 바탕에 존재하는 심리적 기제는 같다는 것이다. 


내가 저쪽들이 이해가 안된다고 여기는 그 순간, 저쪽도 내가 이해가 안된다고 느끼고 있고 또 생각하고 있다. 마치 거울처럼...


/


누군가들이 누군가에게 열광하고 쏠리고 하는 현상은 일종의 '집단의식적 현상'으로 분석하면 유용하다. 어떤 큰 덩어리 의식의 분포와 움직임인 것이다. 개개 개체 의식들은, 어떤 이유나 조건에 의해서 그 덩어리 속의 하나하나의 구성물 역할을 하는 것이다. 큰 덩어리도 있고 작은 덩어리도 있다.


하지만 굳이 이런 별스러운 이론이나 관점을 들이대지 않더라도, 여하튼 여느 대상에 열광하는 개체와 집단들의 그 열광은, 그저 어떤 연관된 사전 조건들에 의해 일어나는 일종의 '바람'같은 현상인데, 이 경우 어느 게 더 맞고 틀리거나, 옳고 그르고의 판단을 들이대는 건 무척 애매하다는 것이다. 아니 아예 무의미하다고 해야 한다. 그런 대상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냥  '유유상종'일뿐인 것이다. 그래서 '평평'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첨예한 부분들이 직접적으로 연관된 경우(예를 들어, 누가 누구에게 실제 고통이나 피해를 주는 등)가 아니라면 그냥 서로서로 각자의 취향을 즐기는데 집중하는 게 좋다. 굳이 타인들의 취향이 이해가 되지 않거나 거부감이나 불쾌감이 느껴지는데 집중하지 않고 말이다. 예를 들어, "쟤들 왜 저래?"같은.


내 것 즐기기도 바쁜데, 재미도 없는 남의 것에 관심 줄 일 없다.


(# 물론 서로 다른 취향 간에 토론하고, 논쟁하고, 경쟁하고, 우열을 다투어 보고, 진화 발전해 보고 하는 등의 모든 시도와 노력은 완전 자유다.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면 된다. 그리고 토론하고 논쟁할 때 하더라도, 우선 내 꺼 잘 즐기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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