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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루 MuRu Mar 09. 2018

인공지능과 에고(ego)

가까운 미래에 인공지능이 활성화되면, 사람들은 여러 영역에서 사람보다 인공지능을 더 선호할 수도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인공지능에게는 인간에게 있는 것과 같은 '에고(ego)'성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본래 실체가 아닌 '에고'적 성질이 더해지면서 그것이 다양성과 활기를 더하긴 했지만 동시에 뭔가 '탁해지는' 부분도 있게 되었다. 인공지능에게는 그런 '탁함'이 없는 것이다.


물론 인간도 스스로의 에고성의 정체를 파악해서, 그에서 자유롭게 되면 그러한 탁함이 사라질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자신도 좋고, 서로가 좋게 된다.


에고는, 실제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 설정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한 과정은 그냥 되는 게 아니라 선명한 통찰로 에고의 정체를 완전히 눈치챘을 때 가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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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고는, 선도 악도 아니다. 절대적인 무엇도 아니다. 에고는 도구이다. 필요한 곳에서는 적절히 잘 쓰면 된다. 불필요한 곳에서는 굳이 쓰지 않아도 된다.

(개인적으론, 불필요한 에고성을 보이는 사람에게는 급심심함을 느낀다.)



(추가) 


물론 인공지능이 인간의 '에고성'을 학습할 수는 있다. 마치 현재 인공지능이 인간의 남녀차별, 인종차별적 태도를 학습하여 문제가 일어나듯이.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는 적절한 조절 프로세스가 들어가야 하리라.  


흥미로운 점은 인공지능의 이러한 측면(인간의 부정적 태도를 학습하는 것)이 오히려 우리 인간 자신에 대한 깊은 통찰을 준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에고성도 본래 존재하는 절대적인 무엇이 아니라 다만 학습된 것에 불과하다'는 통찰이다. 


'학습된 것'이므로 얼마든지 멈추거나 바꿀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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