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보다 조금 앞선 그들은 어떻게 컨텐츠를 만들고 소비하며 살고 있을까
이번 추석에는 가족들과 도쿄에서 함께 보냈어요.
저번 여행은 "'츠타야'라는 브랜드를 중심으로 어떤 의도를 가지고 그런 공간을 기획했는지"를 바라보았다면
이번에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컨텐츠를 가지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지금 즐기고 있는지"를 느끼고 왔답니다.
우리보다 앞선 일본을 보면서 앞으로 한국은 어떻게 될까?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해 준 여행이었고요.
앞으로도 기회가 되는 한 주기적으로 도쿄에 가볼 생각이에요!
매번 여행할 때마다 제가 무엇을 배우고 느끼고 왔는지도 꾸준히 기록해보도록 할게용 :-)
1. 일본은 어떤 과정을 통해서 컨텐츠를 만들어왔는지
2. 일본은 어떻게 격 높은 컨텐츠를 만들 수 있었을까
3. 일본의 탄탄한 컨텐츠 소비 시장
4. 지금 일본의 컨텐츠, 문화 수준
5. 앞으로 한국은? 앞으로의 컨텐츠는?
우리나라는 조선시대 이후 상업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글로벌 교류가 크게 축소되었지만 일본은 꾸준히 전 세계의 다른 나라들과 교류해왔다는 것을 일본 국립박물관 전시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15세기부터 동남아와 교류하면서 도자기를 대중들이 적극적으로 사용해왔고(베트남, 미얀마, 태국),
도자기 제작도 수출용으로 별도로 만들 정도였다니 얼마나 적극적으로 교류해왔는지 상상이 가더라고요.
요즈음의 우리가 구찌, 프라다를 비교하면서 유행을 따르는 것처럼 다도에서도 동남아 찻잔을 국가별로 모으고 쓰는 게 유행했었대요.
일본 전자기기 회사들은 해외에서 만들어진 것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개선하는 것으로 유명해요. 그러면서 퀄리티를 높여 자신들만의 기술을 만들어왔고요.
일본의 국립박물관에서 "일본 미술사"를 테마로 일본 미술이 어떤 역사를 통해 지금의 단계로 발전해왔는지를 시기별로 보여주고 있는데,
불교도, 미술 양식도 중국과 한국을 통해 전달받지만 단순히 받아들이는 것에서 벗어나 일본 스스로의 스타일을 만들어가더라고요.
(그리고 이 사실을 큐레이션에서도 강하게 강조해서 혼자 피식ㅋ했어요. 의도가 보였달까)
단순 큐레이션 설명뿐 아니라 미술을 알지 못하는 제가 보더라도, '일본풍'을 만들어가는 게 느껴져서 더더 신기했고요.
글로벌 컨텐츠들을 오랫동안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왔고,
스스로만의 방식으로 컨텐츠를 쌓으니, 서양에서 일본 화풍에 큰 유행을 일으킬 정도로 다른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격'을 가지게 되었고요.
역사적으로, '문화'는 1) 평화로운 시대 2) 자본 이 두 가지 조건을 갖춘 상황에 발전해왔다고 해요.
사실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 같아요. 전쟁이 일어나면 모든 국가의 예산과 사람이 전쟁으로 몰리겠죠, 당장 살아남는 게 우선이니까요.
그리고 사람이 먹고사니즘을 해결해야지 그다음부터 문화를 즐길 수 있죠. 그래서 어느 정도 이상의 부를 모은 자본가들은 문화/예술을 찾고 문화에 많은 돈을 소비합니다.
자본가들의 자본이 몰리는 분야로 인재가 몰리고 그러면 예술, 문화가 부흥해요. 대표적인 예가 르네상스의 부흥기를 열었던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이죠.
에도시대는 일본 역사상 처음으로 장기간 평화가 유지되고, 상인들이 부흥한 시대였다고 해요.
옷에 이 정도의 노력과 돈을 쏟아 넣어서 화려함을 만들어냈음을 가장 잘 보여주는 기모노가 인상 깊었어요. 상류층이긴 하지만 '옷'에 이 정도의 노력을 쏟아부을 수 있는 시기라는 거니까요.
자본가들이 더 화려한 옷을 원하는 만큼 기술도 발전해서 이 시기에 염색법, 직조법도 어마 무시하게 많이 발전했다고 해요.
일본 국립박물관에는 (무려!) 실제 미라가 전사되어 있어요!!!ㄷㄷ 설명에 따르면 1904년에 이집트 고고국 국장이 일본 국립박물관에 기증했다고 합니다.
근데 미라라는 문화유산을 이집트에서 그냥 주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분명히 그에 합당하는 무언가를 일본이 해주었을 때 이런 미라를 기증하겠죠.
일본은 오랫동안 전 세계의 문화유산 복구, 전시에 큰돈을 투자해온 국가예요 (바티칸, 앙코르와트 등 전시를 보면 일본의 글로벌 기업들이 많은 후원을 하고 있어요.)
긍정적인 이유는 아니지만, 그리고 하나 더.
일본은 아시아 여러 나라를 침략하고 지배했던 나라였어요. 그래서 단순히 사회적 관계가 아닌, '물리적으로'도 문화유물을 가져올 수 있던 조건이었죠. 런던의 대영박물관에서 정말 전 세계의 유물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요.
아래의 전시물은 중국 당 시대의 돋을새김 석상입니다.
전 세계에 이런 형태를 가진 작품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은 일본 국립박물관밖에 없다고 해요. 중국 본토보다 일본이 더 많이 가지고 있다는 거. 놀랍더라구요.
그 외에도 수많은 전시. 아시아 최고급으로 많은 문화재가 있었어요.
국립미술관에 있는 유물 중 국가가 소유하던 것이 아닌, 개인들이 기부한 유물들도 많았어요.
각 문화재들의 가치를 알아보고 즐기고 투자할 수 있는 안목들.
그리고 본인이 모은 문화재를 기부하는 사람들.
대학교 사회학 시간에서 접한 이론 중
'문화는 대중의 계급을 보여준다. 문화는 단순히 자본력의 반영이 아닌, 오랜 시간 동안 이어진 주변의 관계, 가족, 생활 습관으로 형성되기 때문이다'라는 내용이 있었어요.
쉽게 말하면, 오랜 양반 가문 vs 개화기에 갑자기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된 돌쇠, 느낌이랄까.
일본은 많은 자본을 가진 나라이기도 하지만, 오랫동안 전 세계에 '네트워크'를 쌓고 여러 유물을 보유하고 관리하는 나라죠.
지금 일본의 문화 수준은 단순히 돈이 많다고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문화는 하루아침에 쌓이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일본에서 게임이 발매되거나, 맛집에 어마 무시하게 긴 줄이 늘어서는 광경은 한국에서도 자주 접할 수 있어요. 일본 여행을 가도 자주 보는 장면들이고요.
정말 취미를 위해 상상 이상의 노력을 발휘하는!ㅎ 나라더라고요
오덕들의 성지인 아키하바라에서는 온갖 피규어와 굿즈를 파는 가게들이 어마 무시하게 많아요. 그중에 가장 유명한 '만다라케'라는 샵에 들어가면 이렇게 한 건물의 층별로 테마를 만들 정도로 많은 컨텐츠가 있어요.
이런 장난감들이 고가에 거래되더라고요. 장난감도 돈이 되는 시장!
그래서 아마 더더욱 많은 소비가 일어날 수 있는 것 같아요. 나중에 가져다 팔 수 있고, 오히려 좋은 제품은 재테크까지 가능..
동인지와 팬픽만 모아놓은 코너는 꼭 소개하고 싶었어요ㅋㅋ 제가 대박대박!!!! 막 소리 질렀던 곳ㅎ
잘 보면 단순히 '원피스' 코너가 아니라, 원피스에서도 조로X루피, 남성향, 여성향, 조로X나미처럼 각 테마별로 나누어두었어요. 아 진짜 덕후들의 천국이더라고요ㅠㅠㅠ.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일본어 안 배워둔 걸 후회했어요.. 이제라도 미래를 위해 배워두겠어..
정교한 관절 인형들.
근데 가격을 잘 보면 인형 하나에 28000~55000엔(28만원~55만원...)까지 나가요..!ㄷㄷㄷ 그리고 옷은 또 따로 사야 하는데 옷은 더 비싸요...!ㅠㅠ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건, "아 비싸. 저런 거 사는 사람들 이해 안 가네? 이상해"가 아니라 "이 가격에도 돈을 내고 사는 소비자가 있는 시장"이라는 거.
그리고 이런 소비자가 사주는 시장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컨텐츠 제작자들이 계속 생겨날 수 있고 새로운 컨텐츠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
아키하바라의 AKB48 카페까지 가보았어요ㅎㅎㅎ 카페인데 컨셉이 AKB48이라고, 아키하바라의 명소 중 한 곳입니다ㅎㅎ
AKB48는 한국에도 꽤나 이름이 알려져 있는데 원래는 아키하바라의 지역 아이돌이었다고 해요. AKB가 "AKihaBara"를 줄임말로 만든 이름(지역 아이돌이라는 것부터 이미 일본스러워.....ㅎ)이래요ㅋㅋㅋ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한 30분 정도 공연 영상을 계속 보았어요. 관람 코너의 사람들도 다 조용하게 영상에 집중하는 느낌ㅎㅎ 생각보다 앉아있는 사람들의 연령대들이 높았던 것도 신기했어요.
이번에 프듀48에도 AKB48 애들이 나와서 말하긴 했지만,
정말 한국 아이돌에 비해서 외모도, 노래도, 춤 실력도 부족하고 공연 자체의 퀄리티, 스타일도 훨씬 별로여서 처음에 보기가 괴로웠으나(일본 특유의 오글... 하는 장면들이 너무 많았어요.. 막 요술봉이나 요정컨셉..ㅠㅋㅋ 그리고 춤 너무 못 추고..... 노래도 다 립싱크고...)
근데 또 한 30분 보고 있으니까 나름 정감도 가더라고요ㅋㅋㅋ
왜 일본 아이돌이, 문화가 갈라파고스화 되는지는 이해가 갔어요. 인구 1억으로 충분히 내수 시장이 크고 & 이들이 아낌없이 돈을 뿌리니까요. 굳이 해외로 나갈 필요가 없으니까 자국 시장을 타깃으로만 아이돌이 생기고, 딱 그 정도의 수준으로만 아이돌 컨텐츠들이 만들어지고 소비되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 내수시장 규모가 너무 작아서 아이돌 기획사들이 일찍 아시아로 눈을 돌린 게 더욱 글로벌한 문화 트렌드를 빠르게 익히고 이제는 아이돌 시장을 리드해나갈 수 있게 된 동력인 것 같아요. 역시 알다가도 모를 '좋은 점'과 '나쁜 점'들.
저는 여행을 갈 때 그 나라 사람들의 꽃에 대한 소비를 관찰해요.
꽃을 즐긴다는 건, 이미 먹고사는 게 다 해결된 여유로운 상태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일본은 일상에서도 꽃을 어마 무시하게 세련되게 다루더라고요. 그리고 비싼 꽃을 사고, 꽃가게가 일상에 있어요.
한 백화점은 사람들이 건물 안에 있어도 바깥과 연결되어 있도록 통로가 설계되어 있었어요.
답답한 백화점이 아닌 자유로운 공원에 들어와 있는 느낌을 잘 표현한 수준 높은 건축물들이 일상에 자주 보이더라고요.
* 시부야 히카리에 백화점 8층의 문화공간 8/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공간에 더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컨텐츠와 전시를 보길 원해서 만들어진 문화를 위한 공간이라고 해요. 시부야 히카리에 백화점 8층 전체가 문화공간입니다.
땅값이 어마 무시하게 비싼 시부야에서 시민들이 더 쉽게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도록 이 정도로 큰 문화공간이 만들어져 있다는 것 자체가 참 부럽더라고요.
* d47
각 지역의 특산물과 지역을 대표하는 디자인을 볼 수 있는 d47(일본 47개 각 지역의 특색 있는 디자인을 모은 브랜드).
역시나 '일본스럽게' 지역별로 수준 높은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전시되는 방식도, 판매되는 방식도 세련되었어요. 그리고 지역별로 자체적인 컨텐츠가 풍부한 것도 부러웠고요.
최근에 반짝 떠올랐던 "술 먹을 수 있는 책방"
츠타야가 넘넘넘넘넘 멋지게 만들어놨더라고요. 시부야에 있는 츠타야 건물 7층의 서점 위에 한 층을 이렇게 라운지처럼 만들어두었어요. 책도 읽고, 술도 마실수 있는, 그런 멋진 공간
츠타야의 본질 중 하나는 소유가 아닌 대여예요. CD나 DVD를 모두 살 필요 없고 츠타야에서 대여하라는 것!
여기에서 확장된 게 츠타야 서점, 그리고 모든 '라이프스타일' 그리고 '공간'까지도요.
우리 집에 벽난로가 있는 멋진 서재를 굳이 만들 필요가 없어요. 이런 멋진 공간을 츠타야에서 즐기면 되니까요!
물론 컨텐츠, 문화에 돈을 내는 시장이 바탕이 되긴 하지만,
이런 기업이 더 세련되게 높은 문화를 만들어나가고 있는 게 정말 정말 부러웠어요.
그리고 제가 왜 이렇게 도쿄를 좋아하는지 다시 알게 되었고요.
한국보다 조금 더 앞선 문화, 세련됨을 보고 느끼고 싶어서요.
(생각해보니 일본이나 동남아 애들도 BTS한국에서 볼 수 있으니 한국에 사는 걸 부러워할 수도 있겠어서 비겼네여. 아이도루 화이팅!ㅎㅎ)
전에 가본 도큐핸즈는 그냥 문구점 정도였는데, 신주쿠 도큐 핸즈는 각 층별로 가판대에 취미로 즐길 수 있는 것들을 컨텐츠화 해서 판매하고 있었어요. 근데 각 테마별로 판매하는 상품이 너무 전문성 있게, 잘 갖춰져 있어서 놀라웠어요. 역시 덕후의 천국 일본!
요즘 핫한 곳들은 모두 다 인스타 맛집이에요. 이제는 네이버로 검색 안 하니까요.
그래서 똑똑한 가게들은 이렇게 인스타 핫플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해둬요. 메뉴뿐 아니라 사람들이 인증샷을 찍고 올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죠.
그래서 비주얼적으로 훌륭한 디자인을 가지는 게 중요한 시대!
인간은 본능적으로 보다 더 아름다운 것, 멋진 것, 앞선 것을 추구해요.
지금은 비주얼적으로 이쁜 요소가 중요하지만, 그다음은 문화적으로 앞선 것들을 찾게 될 거에요.
지금도, 명소나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곳들은 정말 '예술'을 자유자재로 인테리어에 사용해요.
앞으로 더더욱 이런 고급 컨텐츠가 있는 곳이 사람들을 끌어당길 거고 그 중심이 되고자 하는 장소, 사람은 이런 컨텐츠를 잘 다루는 능력이 중요하겠구나, 생각했어요.
비주얼에서 한 단계 올라선 것이, 문화적 수준을 가진 예술이고 그다음은 '가치'겠구나, 했어요. 문화보다 한 발짝 더 높은, '철학'적인 요소들이요.
이제는 제품, 서비스가 어떤 가치를 지니고 이를 잘 표현하는지가 중요해지는 시대가 도래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산 제품의 가치가 나를 표현하는 시대.
이제 소비자는 그 브랜드의 정신과 철학을 돈 주고 사는 거고요.
그리고 그런 브랜드들이, 수많은 제품 안에서 어마 무시한 차별화된 '아우라'를 가지죠.
이미 너무 잘하는 브랜드들이 있죠 - 무지, 스타벅스, 애플, 슈프림, 나이키.
이 브랜드들은, 단순한 비주얼/디자인/예술을 넘어선 가치를 만들어내고 잘 표현한 브랜드들이에요. 그래서 사람들이 그렇게 열광하는 것일 거고.
이번에도, 여행을 통해 참 많이 배웠어요.
돌아와서는 조금 더 예술을 의미 있게 보고 있고,
나는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이걸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표현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있고요.
일본이 어떻게 자신만의 문화의 격을 높였는지, 일본에서 한국의 미래를 살짝 엿보고 온 저의 글이 도움이 되길 바라며,
이 글을 쓰고 공유합니다 :-)
소피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