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DNA라는 용어를 좀! 개같이 쓰지좀 말자!

‘문화적 DNA’라는 개같은 소리

내가 들어본 문과 단어중에 가장 오용되고 있고 오해의 여지가 있는 단어 베스트 1을 꼽자면 ‘DNA’라는 단어가 아닌가 한다.


 무슨 개소리지? DNA가 문과 단어?라고 생각하셨겠지만 내가 하는 말이 맞다. DNA는 문과 단어다.


“문화적 DNA”라는 개같은 맥락에서는 말이다.


‘DNA’와 ‘문화’는 절대로 같이 쓸 수 없는 단어라는 것을 조금이라도 느껴 보셨는지는 모르겠다.


굳이 발음하기조차 어려운 ‘Deoxyribonucleic acid’라는 말 대신 ‘DNA’라는 두문자어는 누구나 기억하기 쉽고 간지가 난다. 그래서 이건 이미 단어다. 문제는, 이 단어가 너무 유명해져서 개나소나 그 단어의 의미를 알고 있다고 착각해 멋대로 확장해 버린다는 점이다.


그로써 DNA라는 단어는 듣기 거북한 문맥에서 멋대로 팍팍 튀어나와 날 고통스럽게 한다. 다음은 그렇게 날 괴롭혔던 문장들의 예시다.


혁신과 열정의 DNA를 가지고 있는가?

일등 DNA의 체화

→ 내가 다니는 회사의 화장실 소변기 눈 마주치는 곳에 적힌 문구. 난 오줌쌀 때마다 눈을 질끈 감는다.

“기업의 DNA 바꾸자”

→ 이 부분 주목. DNA와 “바꾸자” 같이 쓰는 거 있기 없기? 이거 진짜로 뭘 비유하는건데, 염색체 교차?유전자 크리스퍼? 방사선 돌연변이?


물론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하하, 네 말의 논지는 알고 있어. DNA는 전문용어이고 전문용어를 이런 ‘비유법’으로 이용하면 안된다는 거지? 그래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마. DNA라는 단어는 이미 전문용어를 넘어서 일반명사화 되었으니까. 너도 알다시피 시니피앙은 시니피에를 너머서 랑그와 빠롤로...”


아니아니, 그런 말이 아니다. 전문용어고 뭐고를 떠나 DNA는 ‘문화’라는 단어와 절대로 같이 쓰면 안 된다. “바꾼다”는 말과도 쓸 수 없다.


DNA는 생물의 유전을 가능하게 하는, ‘정보’를 담고 있는 ‘물질’이다. 유전이란, 아버지와 어머니의 아들딸들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반반씩 닮게 하여 피부색이나 생김새, 키, 손가락 길이 등을 바꿀 수 없게 하는 것이고, 인간이 원숭이나 개, 달팽이, 나무 같은 것처럼 생기지 않게(그리고 그런 것으로 변화하지 않게) 하는 것이고, 또 개처럼 짖지 않게, 돌고래처럼 초음파를 쏘지 않게 (쏠 수 없게), 박쥐처럼 반향정위를 이용할 수 없게 하면서 또 문법과 단어가 있는 언어를 배울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하하, 필산아 알고 있다니까. 내 말은, 한국인이나 중국인, 영국인 등이 세대를 걸쳐 전해져 내려오는 음식 문화, 민족성, 정부 체제 선호도 등이 세대를 거쳐도 크게 변화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특성을 단지 유전물질인 DNA에 비유하여 표현하는 것 뿐이라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문화의 전달과 유전은 비유를 허용할 수 없는, 완전히 반대되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말이 단지 ‘비유’라는 이유로 쓰인다고 생각해 보라.


김대중은 민주주의의 박정희이다. 그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정은 마치 박정희의 산업화에 대한 열정만큼이나 대단했으므로.

간디의 비폭력 투쟁에 대한 정신은 마치 히틀러의 우생학에 대한 정신과 같았다. 모든 국민들이 그에 화답했고 곧이어 국가의 정신이 되었다.


암걸리겠지?


그러니까 요지는, 문화는 유전과는 완전히 다른 매커니즘으로 세대간 전달되기 때문에, 유전 매커니즘과는 사실상 반대의 의미로 써야 한다는 것이다. 세대간 전달된다는 것 때문에 유전과 비슷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다음과 같은 특성들에 대해 극심한 혼란을 겪게 된다.


유전은 절대로 바꿀 수 없다. 문화는 그래도 어느 정도 바꿀 수 있으며, 바꾸기 힘들지만 안 좋은 것이라면 힘들더라도 바꿔야 한다는 특성을 가진다. 예를 들어, ‘한국인은 맞아야 한다’는 걸 “문화 DNA”로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한국인을 계속해서 맞아야 말을 듣는 인종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유전은 학습하는 게 아니다. 문화는 학습하는 것이다. ‘일등 DNA의 체화’라는 얘기는, 나에게는 일등 정신은 학습하거나 체화할 수 없고,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라 일등으로 태어나면 죽을 때까지 일등이고 이등으로 태어난 사람은 죽을 때 까지 이등이라는 얘기로 받아들여진다. 이런 캐치프레이즈를 들으면 나는 이런 본심을 숨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이등으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일등을 할 수 없을 테니, 말이라도 일등을 하고 싶다는 것을 남에게 알리고 싶다.”


“기업의 DNA 바꾸자” DNA를 바꾸자는 게 진짜 무슨 소린지 내가 진짜 이해 안돼서 그러는데, 이 말 한 사람한테 좀 묻고 싶다. 당신은 당신의 DNA를 노력해서 바꿔 본 경험이 진짜 있는가?


그러므로 앞으로, DNA라는 말을 굳이 인용하고 싶다면, 태어나서 간직하고 있는 것이고 절대로 바꿀 수 없는 꿈도 희망도 없는 경우에만 사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주길 바란다.


우리 회사의 게으름 DNA, 절대 바꿀 수 없으니 포기하고 이직합시다.

한국인의 문화 DNA, 한국인은 맞아야 합니다. 절대 안바뀝니다.
(나 지금 비꼬는 거니까 내가 진짜 이렇게 생각한다고 생각하지 말기 바람)
우리는 꼴등 DNA를 내장하고 있으니 일등은 절대 불가능하겠네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기똥찬 아이디어를 내는 것, 실현하는 것, 그리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