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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로맨서

한페이지단편소설 당선작

한페이지단편소설 당선작 No.1045 「메타버로맨서」

삽화와 함께 읽어보세요!




Metave-R-omancer


"이봐 마틴, 보스가 널 보자더군!"


동료가 재빠르게 지나가면서 나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나는 페이스-북의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동료에게는 단지 손짓만으로 알아들었다는 신호를 보냈다.


또 예의 그 학회에 가라는 거겠지.


보스의 사무실은 엘리베이터도 작동되지 않는 건물의 5층이었다. 나는 보스의 문을 거의 부수듯 밀고 들어갔다. 그는 거만하게도 다리를 그의 책상 위에 올려 놓고 페이스-북 중이었고, 내가 들어왔는데도 불구하고 다리를 내릴 시늉도 하지 않았다. 그는 덤-폰(dumb-phone:이 세계관에서 스마트폰을 비하하는 의미)을 손에 쥔 채 인사도 하지 않는 나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내가 고개라도 끄덕이길 바라는 눈치였으나, 나의 모가지는 단 1인치도 움직일 생각이 없었으니 헛된 바람이었다. 하는 수 없이 작게 한숨을 쉬며 다리를 내리고 담배를 꼬나문 보스는 드디어 한 마디를 던졌다.


"몬트리올에서 메타버-스 학회가 있어."


나의 빌어먹을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보스, 왜 나만...?"


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보스의 혓바닥이 난입했다. "가서 돈될 만한 걸 찾아오란 말이야."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 좋게 말하자면, 보스한테 인정받는 거겠지.


적어도 돈 냄새를 맡는 분야에 있어서는 말이다.


그래도 몬트리올의 자욱한 안개와 함께 VR 헤드셋을 쓰고 메타버-스에 취해 돌아다니는 필-디(Phil-die, 이 세계관에서 박사과정생을 비하하는 의미)가 가득한 컨벤션 센터를 생각하니 예전에 버-스전쟁 때 다쳤던 3D-VR 멀미 신경이 욱씬거릴 지경이었다. 고작 VR쟁이들의 틈바구니에 무슨 돈될 게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난 거절하지 못했다. 난 이 빌어먹을 보스에게 잘 보일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집세가 석달치나 밀려 있었기 때문이다.


"보스, 그럼 일주일 후 뵙죠."





몬트리올의 비오는 거리는 또 다시 나의 3D-VR 멀미 신경을 자극하는 듯 했다. 택시 내부에선 10년 전 내가 썼던 그 VR 헤드셋 내부의 퀘퀘한 냄새가 나는 것만도 같았다. 몬트리올 컨벤션 센터로 진입하기도 전에 벌써부터 VR 헤드셋을 쓰고 비를 다 처맞으며 거리를 휘젓고 다니는 짐승같은 필디들이 창밖으로 보였다.


키노트가 개최되는 그랜드볼룸에도 그것들, 뚱뚱하고, 마르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대학교 로고가 큼지막하게 박힌 스웻셔츠를 입은, 헤드셋을 쓰고 손발에 풀트래커까지 장착한 것들이 고개를 시계방향, 반시계방향으로 휘저으며 메타버-스에서 오랜만에 만났을 서로 다른 필디들과 시끄러운 언어로 재잘대고 있었다.


'쯧, 현실 세계와 구분도 못하는 것들.'


나는 속으로 생각했지만 10년 전 나 또한 그들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새삼 되새겼다. 헤드셋을 쓴 키노트 강연자가 더듬거리며 강단 앞으로 나왔지만, 헤드셋을 벗는 필디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메타버-스에서도 강연자와 똑같은 모습을 한 아바타가 걸어나오고 있었을 것이었으니.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폰질이나 하고 있었는데, 불현듯 이상한 예감이 들어서 고개를 들었다.


여전히 낄낄대는 VR 필디들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다시 덤-폰에 집중하려고 하는 찰나, 또 다시 예리한 위화감과 함께 노티가 폰 화면 위쪽에서 꿈틀거렸다. 근 몇 년간 보스의 메시지 말고는 아무 것도 울리지 않았던 페이스-북의 위치 알람을 확인했다. 몬트리올 컨벤션 센터에 동시 로그인한 한 친구가 온라인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확인했다. 왼쪽 앞에서 헤드셋을 쓰지 않은 단 한 명의 여자가 고개를 뒤로 향하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패트리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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