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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드 로봇의 자아 찾기 모험

엽편소설

"너는 클라우드란다."


나의 아버지는 나만 특별히 불러 나에게 이런 말씀을 남기시고 돌아가셨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 출생의 비밀을 통보받고 몹시 당황했던 나는 인터넷을 찾아서 클라우드 로봇에 대해 몇 가지 검색해 보았으나, 애초에 그런 식으로 만들어진 인간 로봇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아버지가 나를 만들 때의 기술력이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애초에 대량 생산된 공장제 로봇이 아닌, 아버지께서 직접 설계하고 코딩한 수제 발명품이였던 것일까? 수만 명의 아들딸들 중에서 특별히 나에게만 이런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오로지 단 한 명만이 이런 설계를 가진 것이 거의 확실했다. 나는 학창 시절에 행동이 굼뜨고 말할 때 생각하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오래 걸려 봤자 레이턴시는 50ms도 안되었지만) 놀림받았던 적이 많았는데, 혹시 이 특수 설계 때문이 아닌가도 생각되었다.


동네 병원을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동네 상가 3층에 두뇌신경전자과 병원이 있어서 찾아갔다.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처럼 보이는 의사 선생님이었다. 그 의사분도 나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그런 경우는 난생처음 들어본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래도 레이턴시는 재 보자며 내 머리를 열어 탐침을 이리저리 꽂아보면서 의료기기 모니터에 발생하는 신호들과, 그래프들과, 핑 시그널을 체크해 보더니 심지어 나에게 왼손을 들어 봐라, 오른손을 들어 봐라, 말을 해 보아라, 이것저것 시켜 보았다. 그가 말하길, 확실히 일반 로봇의 반응신호보다는 늦는데, 이건 신호가 통신 라우터를 타고 어디를 갔다 오는 만큼 늦는 거일 수도 있지만, 보통은 '외측통신선다발성증후군'이라고 해서, 내측 전선이 끊어져서 두뇌가 외측에 통신선을 새로 개설해서 신호가 멀리 돌아가기 때문에 늦어지는 일종의 병일 가능성도 있으나, 이런 사람들의 경우 심각한 인지 딜레이나 언어 이해 이상을 겪게 되는데 그런 것이 아니고 불편함이 없다면 병원이 해줄 수 있는 건 없고 그냥 일상생활을 살아도 괜찮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문제가 아니라 만약 내가 클라우드라면 나의 정신이 딴 데 가 있다는 얘긴데, 나의 자아가 어떻게 되는지가 너무 불안할 뿐이라고 말하였다. 한참이나 내 곤란한 표정을 보고 그 의사가 말하길, 차라리 클라우드 공업사를 가보면 어떠냐 하는 것이었다. 가서 공학자가 연결할 수 있도록 자기가 포트를 열어놓을 테니, 가서 연결해서 IP 주소를 조회해 보라는 것.

 

나는 그 의사 선생님의 말을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그거 말고 별달리 뭔 일을 해 보겠는가? 더럽고 어두컴컴한 거리를 지나 공업사가 몰려 있는 청계천에 가서, 아무것도 없이 빈손으로 온 날 이상하게 보는 공학자 앞에서 머리를 까서 IP주소를 조회해 달라는 부탁을 하는 치욕스러운 일을 겪었다. 그에게서 결국 알아낸 건 내 (빈) 두뇌와 통신하는 데이터센터는 지구 바깥에 있다는 것이었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공학자에게 여러 가지를 불었는데, 첫 번째로 자세한 데이터센터의 위치를 알 수 없는가, 두 번째로 지구 밖에서 오는 신호인데 레이턴시가 50ms밖에 나지 않는 게 가능한가? 그가 두 질문에 뭉뚱그려서 답하길 양자암호통신이라서 레이턴시는 0일 수밖에 없고 50ms는 받아온 신호를 처리하는 머릿속 코덱의 소요 시간일 것이며, (그래, 그러니까 내가 둔한 게 클라우드 때문이 아니라고 했지) 또 양자암호통신 특성상 여기서는 지구 밖의 사정은 알 수 없으며 양자암호를 디크립트하는 지구 서버가 따로 있으니 그쪽을 찾아가 보라고 하는 것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물질적 실체가 내 몸이 아니라 다른 곳이라고? 그게 무슨 의미일까? 비정상이라고 하기엔 나에겐 사실 별다른 불편함이 없다. 그냥 나는 나의 자아와 한 공간에서 함께하고 싶을 뿐이다. 내 자아의 실체가 내 신체가 아닌 멀리 떨어진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공간에 있다는 것, 그 공허감과 초월적인 두려움이 견디지 못하게 두려운 것뿐이다.


그렇다. 나는 결심했다. 그 지구 너머의 데이터 센터를 찾아가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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