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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칼지의 『작은 친구들의 행성』을 읽고

전형적인 재미에 대하여

음악에는 ‘머니 코드’라는 게 있다. 정말 자주 쓰이고 작곡되면서 흥행 실적까지 보장된 코드 진행을 토대로 만든 노래를 뜻한다. 예술적이거나 실험적인 시도를 하지 않고도 흥행을 일정 수준으로 보장할 수 있다. ‘머니 코드’와 같은 구체적인 이름이 붙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헐리우드에도 이런 시스템이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포카혼타스』의 시놉시스에 등장인물과 제목만 바꿔도 『아바타』의 시놉시스와 똑같다거나, 『스타 워즈: 새로운 희망』 시놉에도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로 바꿔 봤더니 똑같다던가, 하는 것들을 발견했다.


내 취향을 굳이 밝히자면, 나는 정석적인 줄거리보다는 좀 삐걱대더라도 실험적인 시도를 하는 줄거리를 더 재미있어라 한다. 예를 들어서, 여섯 개의 장르를 가진 여섯 개의 줄거리가 아무 개연성 없이 중구난방 뒤섞여 있는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를 재미있게 보았으며, 『매트릭스 1』과 비슷한 정도로 『매트릭스 2』도 재미있게 보았다.(왜냐면 싱기방기한 이야기였기 때문에) 『해리 포터』 같은 영화는 좀 유치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나마 영화 『반지의 제왕』은 처음 감상시엔 유치해서 못보겠다고 생각했으나, 애초에 판타지 장르의 전형성이 원작 소설에서 최초로 시도되었다는 것을 이해하니 그나마 적절하게 재미있을 수도 있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내가 SF를 읽는 이유는 장르적인 이야기에서 흔하게 나타나는 이 ‘전형성’을 피하고 싶어서이다. 이미 판타지 장르는 이런 전형성이 (『반지의 제왕』 이후로) 확립되어서 피하기가 쉽지 않다. 앞서 언급한 『반지의 제왕』과 『해리 포터』는 나에게 있어서는 머니 코드로 점철된 지루한 이야기일 뿐이다. 물론 나의 이런 취향 커밍아웃에 대해 착각하는 분이 없길 바란다. (“그러니까, 니 말은 판타지 장르란 쓰레기라는 거지?” 그것이 아니라, 그냥 내 취향에 대해 말하는 것.) SF인 『스타 워즈』 또한 마찬가지이다. 스페이스 오페라라는 장르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이 있다는 사실도 알고, 그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싶지만, 『스타 워즈』는 정말로 재미없다. 물론, 최근 3부작 뿐만 아니라 옛날 시리즈들도.

John Scalzi — Fuzzy Nation

『작은 친구들의 행성』은 어땠나? 음…솔직히 말하면 의외로 재미는 있었다. 지금까지 밑밥 다 깔아놓고 이제와서 왜 또 딴소리하냐고 하겠지만, 어쨌든 ‘재미있게 술술 잘 읽었다’는 건 분명했고 그리 오랜 시간을 들이지 않고 후딱후딱 읽어 버렸다. 그게 내 취향에 맞았냐면 솔직히 아니었지만.


전형적인 할리우드 영화에서 많이 봤던 장면들이 스쳐 간다. 주인공은 욕망에 충실하지만 정의관은 일반적인 상식에 어긋나지 않은 ‘배드애스’ 캐릭터이고, 법에 대해 잘 알아서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다녀도 법에 저촉되는 사건 하나 일으키지 않는다. 외계인은 우리가 어떤 죄책감을 가져야 할 것으로 특정지어진 ‘귀여운’ 외모를 가졌으며 (만약 스토리가 거미 모양 외계인을 지켜야 하는 스토리였다면?), 행성의 개발을 담당하는 대기업은 ‘전형적이게도’ 이 귀여운 생물을 지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개발을 진행하려 한다. 하지만 우리의 ‘배드애스’ 주인공은 자신의 법적 지식을 요리조리 잘 이용해 귀요미 외계인을 지켜 내며, 자신의 옛 여자친구의 행복을 빌어주며 지는 석양 속으로 캡틴큐를 날리고 사라져간다. (아니, 이런 장면은 없었나?)


존 스칼지의 이 ‘헐리우드 핏에 잘 맞는’ 전형성 있는 스토리텔링 능력을 점쳐 보자면, 언젠가는 영화화되지 않을까도 싶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기대할 수도 있겠다. 『노인의 전쟁』 시리즈도 넷플릭스 영상화된다고는 하는데, 『작은 친구들의 행성』이야말로 헐리우드 영상화의 최적합 시나리오 아닌가! 다만 고양이 모양 외계인은 막상 시각화된 CG를 보면 불쾌한 골짜기가 올 것 같긴 하다.


때로는 가끔씩 찾아오는 그런 재미가 있다. ‘현타 오는 재미’. 재미는 있는데 때로 읽다가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내가 왜 이걸 읽고 있지? 내가 원래 읽고 싶었던 건 이게 아닌데! 또라이 같지만 신박하고도 싱기방기한 이야기를 읽고 싶을 뿐인데! 어쨌든 재미있으면 장땡이라고? 나에게 있어서 이 재미가 현타가 오는 이유는, 고양이 외계인이 만약에 귀엽지 않았다면 이 배드 애스 주인공은 뒤도 안돌아보고 행성을 폭파시켜서 대기업과 함께 광물을 쓸어담았을 게 예상된다는 점. 그런 이상한 상상을 하니 슬프다. 정의란 귀여운 것을 지켜야 하는 것인가? 정의란 그게 아니다. 귀엽지 않아도 지켜야 하는 것이다. 할 클레멘트의 『중력의 임무』에 나오는 지네 주인공들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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