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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라는 허상,  메타버스라는 새로운 세계

닐 스티븐슨의  『스노 크래시』를 읽고

하나의 유령이 2021년 대한민국을 배회하고 있다. '메타버스'라는 유령이.


'메타버스'는 가상과 실제가 상호작용하면서 공진화하여 정치·사회·경제·문화 활동이 이루어지며 가치를 창출하는 세상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디지털 가상 세계에서 사람들은 자유롭게 만나고 활동하며, 자본과 화폐를 이동시키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경제활동을 한(다고 한)다. 가장 대표적인 메타버스로 로블록스, 포트나이트, 마인크래프트, 그리고 우리나라의 제페토가 있(다고 한)다.


새로운가?


메타버스라는 개념은 전혀 새롭지 않고, 혼란만 가중시킬뿐더러, 생각보다 위험하다. 그들이 말하는 메타버스라는 '디지털 가상 세계'는 최신의 트렌드가 아니라 20년 전부터 게임을 통해 사람들이 향유하던 레트로한 세계다. MMORPG라고 들어는 보았는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40대 회사원 아재들이 이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공간에 오랜만에 접속해 향수를 느끼고 추억을 되살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긴 아는 것일까? 메타버스가 포함하는 개념에는 '가상현실(VR)'이 있는데, 대표적인 메타버스라고 꼽히는 로블록스, 포트나이트, 마인크래프트, 제페토 어느 것도 제대로 된 가상현실 게임 아니다. 오히려 가상현실의 대표 게임인 'VR Chat'은 왜 메타버스라는 담론에 끼지 못하는지 궁금하다. (돈이 안되고, 오타쿠 같으니까 그렇겠지) 심지어 어떤 메타버스에 대한 주제에도 그 가상현실을 어떻게 실현시킬 수 있을지, 오큘러스 풀트래커 착용 시의 사용자경험 장단점에 대한 어떤 토의도 찾아볼 수 없었다.


어떤 사람은 2007년 논문(14년 전에 정의된 디지털 개념 한물간 임을 인지할 수 있어야 할텐데)을 들고 와서 구글 맵스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까지 메타버스라고 얘기하던데, 이렇게 '모든 것이 메타버스'라고 정의한다면 그 정의는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 버린다. 특히 메타버스가 주식 관련주로 검색되는 경향을 볼 때, 허상의 트렌드인 메타버스는 제페토는커녕 와우도 못해본 순진한 투자자들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다.


이 모든 사태가 '메타버스-무새'들의 디지털 기술 발전의 역사에 대한 전면적인 몰이해에서 오는 것으로 진단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메타버스(meta-verse)'라는 용어 자체의 출처에 대한 연구도 되어 있지 않을 것이다. 그들도 알고는 있다. 이 용어가 바로 닐 스티븐슨의 『스노 크래시』라는 사이버펑크 소설에서 처음 만들어졌다는 것을. 그러나 그들 중 이 책을 읽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들 중 실제론 초딩겜인 로블록스나 제페토는커녕, 와우나 VR Chat을 해본 사람이 없듯이 말이다.




닐 스티븐슨의 『스노 크래시』는 1992년 최초로 출간한 사이버펑크 장르의 SF 소설이다. '사이버펑크'란, 1984년 윌리엄 깁슨의 『뉴로맨서』라는 작품이 '거의' 탄생시킨 장르로(내가 '거의'라고 말한 이유는, 실제로 진짜 탄생시킨 작품이 그전에 따로 있었기 때문), 세기말적 신체 변형, 미국인의 일뽕 성향, 그리고 사이버스페이스가 필수요소로 포함된 SF 장르라고 할 수 있다.

 

사이버스페이스라고? 그렇다. '메타버스'의 원 뜻인 디지털 가상 세계에 대한 개념이 1984년에 최초로 만들어진 닳고 닳은 개념이라는 사실이 또다시 드러나고 말았다. 물론 『뉴로맨서』의 사이버스페이스보다 『스노 크래시』의 메타버스가 좀 더 진일보하긴 했다. 컴맹이라고 소문났던 윌리엄 깁슨과는 달리, 닐 스티븐슨은 디지털 가상 세계에 접속하기 위해서는 어떤 기술이 필요한지, 어떤 사용자 경험이 필요한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소설을 쓰기 위해 '애플 매킨토시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참조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Neal Stevenson - Snow Crash
양쪽 눈에 서로 조금씩 다른 이미지를 보여 줌으로써, 삼차원적 영상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영상을 일초에 일흔두 번 바뀌게 함으로써 그것을 동화상으로 나타낼 수 있었다. 이 삼차원적 동화상을 한 면당 이 킬로 픽셀의 해상도로 나타나게 하면, 시각의 한계 내에서는 가장 선명한 그림이 되었다. (...) 그는 컴퓨터가 만들어내서 그의 고글과 이어폰에 계속 공급해주는 가상의 세계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었다. 컴퓨터 용어로는 '메타버스'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세상이었다.


디지털 가상 공간의 '아바타'라는 개념 또한 여기에서 처음으로 그 뜻으로 쓰였다. 작가가 직접 그렇다고 주장하는 사항이다. 나무위키의 '아바타' 항목에서는 다른 주장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뉴로맨서』에서는 눈을 강화 플라스틱으로 교체한 인물이 등장하는데, 이처럼 과격한 분위기의 세기말적 신체 개조술은 사이버펑크 장르의 거의 필수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스노 크래시』에서도 당연히 그런 게 나온다. 여기엔 트럭과 기계적으로 혼연일체 되어 있는 등장인물이 나온다. 주인공 와이티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자동으로 발동하는 강간 방지 장치와 갖가지 특수 장비가 장착된 특별한 수트를 입고 있다.


사이버펑크 특유의 사회상도 봐줄 만하다. 미국이라는 국가는 허물어졌고 '마피아'나 '피자 체인점'이 더 권력이 강하다. 마이크로네이션은 허물어진 국가의 공권력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벽을 쌓고 안보를 추구한다. 주인공 '히로'는 한국인과 흑인의 혼혈로, 일본도 두 자루를 등에 찬 채 거리를 활보한다. (과다 일뽕에 주의를 요한다. 하지만 역사를 왜곡하거나 하지는 않으니 안심) 일뽕스러운 분위기는 90년대 사람들이 미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2020년대 사람들로 하여금 추억에 어린 눈으로 바라보게 해 주는 '카세트 퓨처리즘' 적인 재미 요소이다.




그러나 이 소설이 적당히 사이버펑크 분위기를 내며 사이버스페이스라는 개념을 '메타버스'라는 용어로 치환했을 뿐인 『뉴로맨서』의 아류작에 불과한 것은 아니다. 이 소설의 이야기 흐름 중 하나 메소포타미아와 유대교, 기독교의 바벨탑 신화를 관통하는 '정보'와 '바이러스'에 대한 특이한 설정이 있다. 메타버스 안의 NPC라고 볼 수 있는 '사서 데몬'과의 지루한 역사 강의가 생각보다 긴 분량을 차지하는데, 차근차근 읽다 보면 소설의 가장 깊은 수준에서 핵심을 관통하는 이야기임이 드러난다.


그렇다. 한낱 『뉴로맨서』 짝퉁으로 불릴 뻔한 소설인 이 작품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주제가 바로 이것이다. "어떻게 인간이 메타버스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정보 바이러스에 감염되도록 할 수 있을까?" 작가는 이 핵심 질문으로부터 시작해 사이버펑크적인 사회상과 거대 종교집단의 음모까지 길고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를 구축해 냈다. 이 주제는 '바이러스'와 'DNA', '언어', '정보', 그리고 리처드 도킨스의 '밈'을 관통해 지나가면서 이것들에 대한 본질을 깊게 성찰하게 만든다.



표지에서 일뽕 오타쿠스러운 일본도 두 자루를 차고 있는 인물의 일러스트에 거부감을 느낀다 해도, '메타버스'라는 허상뿐인 광풍에 거부감을 느낀다 해도, 사이버펑크라는 한물 간 장르에 관심이 없다 해도, 이 소설을 읽어볼 만한 가치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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