씹꼰대틀딱의 일갈, “권리만 추구하는 자들이여, 의무를 다해라”
이제 와서 "3대 SF 거장" 운운은 좀 지겨우므로 생략하도록 하겠다. 애초에 쥴 베른이나 허버트 조지 웰스의 고전 SF 시대를 지나 하드 SF의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 3대 SF 거장 세 명, 아이작 아시모프, 아서 C. 클라크, 그리고 로버트 A. 하인라인을 묶었다는 건 그 시절의 한물 간 분류법이다. 그런데 그 후 6~70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거장'이라고 하는 건 오해의 소지가 있다. 마치 이들 이후로 SF는 더 이상 발전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마치 3대 기타리스트로 에릭 클랩튼, 지미 페이지, 제프 벡을 꼽던 그 옛날 하드락 감성 같다. 그들이 아무리 3대 어쩌구로 피터지게 싸워도, 현시대 음악 씬은 힙합이 지배한다.
게다가, 나는 로버트 A. 하인라인이 아시모프나 클라크와는 성향이 다른 것같다고 생각한다. 하인라인의 소설은 프로파간다 소설로까지 느껴질 정도로 정치적 메시지를 강하게 띠고 있는데, 그 점 때문에 다른 두 명의 하드 SF 작가가 서로 비슷한 정도와는 다르게 다른 부류로 느껴진다. 심지어 하드 SF의 장르로 분류하는 게 맞나도 잘 모르겠다. (물론 하인라인의 작품 중에는 "너희 좀비들" 같은 빡센 하드SF 단편도 있다.) 물론 그 옛날 감성에 따르면 하드SF로 분류하는 게 맞을 것이다. 『스타십 트루퍼스』가 밀리터리 SF의 효시라고 하나, 그당시 밀리터리 SF라는 장르가 따로 있었던 것은 아니기에 강화복을 묘사하는 부분 정도면 충분한 강도로 하드하다. (과학적으로 하드하기보다는 공학적으로 하드하긴 하지만)
그 동작의 비밀은 네거티스 피드백과 증폭에 있다. (...) 당신이 손을 들면 강화복은 그것을 감지하고 증폭한 후, 같은 운동을 되풀이한다. 운동 명령을 내린 손을 에워싼 감지장치에서 압력이 사라질 때까지 움직이는 것이다.
이런 서술은 현대의 공학 중에서 BCI(Brain-Computer Interface)나 로봇 의수, Exo-skeleton을 다루는 분야에서 출간되는 논문에 나오는 설명 같다. 물론 하인라인이 소설을 집필하던 시절에는 이런 공학 분야가 없었기 때문에, 전적으로 그의 상상력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니까, 하드한 거 맞지?
또한 "우주전쟁은 어떤 모습일까?"를 그리는 데 있어서도 당시의 사람들이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의 소설에서, 우주전은 두 개의 군종으로 이루어져 있다. 바로 우주해군과 상륙육군. 전통적인 육/해/공의 군종은 사라지고, 단지 텅 빈 우주공간을 날아서 알보병을 적의 행성에 떨어뜨려 놓는 전술만이 우주전의 핵심이라는 것. 전통적인 상륙작전이 해군과 육군의 상호 협조로, 또 공수작전이 공군과 육군의 상호 협조로 이루어지듯이 행성 상륙 작전은 우주해군과 상륙육군의 협조로 이루어진다. 상륙이라고는 했지만 행성상륙은 전통의 상륙작전과 공수작전 두 가지의 성향을 동시에 띠고 있다. 먼 거리를 항해해 와서(상륙), 적진의 위에서 아래 방향으로 침투한다(공수). 해병대나 공수부대의 빡셈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들 '기동보병'의 빡셈과 규율, 그리고 자부심도 잘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의 진짜 가치는 정치적 메시지에 있다. 하인라인은 이른바 "자유의지주의"라는 정치 사조를 옹호하는 메시지를 작품 여럿을 통해 적극적으로 설파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작품 『스타십 트루퍼스』는 군국주의적인 자유의지주의라는 비현실적이고 또 많은 사람이 오해할 만한 체제를 다루는데, 애초에 하인라인이 군국주의를 주장한다기보다는 군국주의 체제에서도 어떻게 자유의지주의가 융합될 수 있는지를 상상해 본 것으로 이해하는 게 좋겠다.
“왜냐하면 인간은 어떠한 생득적인 권리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야.”
미스터 뒤부아는 말을 멈췄다. 누군가가 미끼를 물었다.
“선생님? 그럼 ‘생명, 자유, 행복의 추구’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아, 그래. 박탈 불가능한 ‘절대적 권리’ 말이지. 해마다 꼭 누군가가 이 장엄한 시적 문구를 인용하는군. 생명? 태평양 한가운데서 지금 빠져 죽고 있는 사내에게 어떤 ‘생존권’이 있단 말이냐? 바다는 그 사내의 비명에 귀를 기울이거나 하지는 않아. 자기 자식들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버려야 하는 사내에게 어떤 종류의 살 ‘권리’가 있단 말인가?
자유의지주의라는 정치 사조에 대해 최근의 이슈와 엮어서 얘기해 보자면, 백신반대운동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자유와 권리란 무제한적으로 주어져야 하며 그 절대적인 자유를 위해 사회, 과학, 정치 등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자유의지주의의 다른 번역어가 '자유지상주의'인 것처럼 말이다. "나에게는 백신을 안 맞을 권리가 있고, 마스크를 써서 CO2를 숨쉬는 것 대신 마스크를 쓰지 않고 O2를 숨쉴 권리가 있다!" 여기서 더 나가면 그 권리란 기독교적 신이 주신 천부적인 권리이기 때문에, 심지어 '바이러스와의 전쟁 상태'라고 할 수 있는 팬데믹 상황에서도 그 권리란 지켜져야 한다. 그러나 위의 미스터 뒤부아의 말에 따르면, 그런 천부적인 권리라는 것은 없다.
자유의지주의의 선봉장 격인 로버트 하인라인의 말이니 틀린 말도 아닐 테고, 미스터 뒤부아가 반동인물도 아니니, 이것이야말로 자유의지주의다. 자유의지주의의 본체란 결국 권리란 생득적이거나 천부적인 것이 아니며, 동등한 무게의 의무와 함께 행사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도 자유의지주의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었네.
실제적인 이유와 수학적으로 증명 가능한 윤리적인 이유로 인해, 권력과 책임은 동등해야 할 필요가 있네.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전위(electric potential)가 서로 다른 두 지점 사이에서 전류가 흐르는 것만큼 확실하게 균형을 이루려는 힘이 그들 사이에서 작용하는 거야.
정치윤리적인 메시지는 이렇게 SF적인 시대배경과 융합된다. 그 시대란 아예 윤리 또한 과학과 마찬가지로 수학적으로 증명된 시대인 것이며, 그런 절대적인 수학의 당위성 아래에서 사회란 필연적으로 이런 모양의 체제로 흘러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의무를 수행하지 않은 무제한적인 권리를 누리는 사회는 의무와 권리를 동등하게 균형맞춘 사회에 침략당해 멸망하는 세계관.
가치 있는 것이 공짜인 경우는 없다. 생명을 유지하는 호흡조차도 출생 시의 격심한 노력과 고통을 통해서만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다. (...) 그리고 인생에서 가장 지고한 것을 얻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는 바로 생명 그 자체야.
자유를 누리기 위해 생명까지 지불할 가치가 있을까? 그렇다! 그것이야말로 전쟁이고 안보다. 그리고 군대는 자유를 수호하는 최상위집단이다. 당연히 생명을 담보해본 적 있는 사람만이 시민이 될 수 있고 투표권이 주어지는 사회.
너무 막나간 거 아니냐는 반발은 물론 있었다. 하지만 하인라인은 다른 다양한 정치적 관점을 여러 작품에서 옹호하면서 그 논쟁을 피해 갔다. 예를 들어서 『낮선 땅 이방인』이나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은 무정부주의적인 자유의지주의 체제를 그리고 있다 하니, 애초에 하인라인이 군국주의적인 인간은 아니라는 말씀. 그냥 자유의지주의-무새로 봐야 하지 싶다.
아니 그리고 애초에, 군국주의가 자유의지주의적인 이상을 담았던 역사적 사례가 있을까? 군국주의란, 군대와 전쟁이 존재 의의가 되는 사회 아닌가? 그렇다면 스타십 트루퍼스에서 그리는 사회도 진정한 의미의 군국주의가 아닐 것이다. 그들의 군대는 그 자체의 존재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다. 소중한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동등한 의무로써 존재하는 것일 뿐.
그럼 신체적 제약으로 의무를 행사하지 못하는 사람들, 장애인, 여성, 노약자는 어떡하라고? 좋은 질문이다. 우리는 사실 대PC의 시대를 살고 있으니, 이 지점이야말로 현대적인 사상을 이용해 하인라인의 정치 사상에 공격을 가할 수 있는 취약점이 될 것이다. 스타십 트루퍼스의 징집장교의 말에 의하면, 국가는 어떻게든 모든 사람들에게 의무를 부과하는 방법을 찾아 낸다. 그 사람이 여성이든, 노약자든, 신체에 결점이 있든 상관 없이. 말은 참 쉽지만 이건 정말로 국가 운영에 있어서 어려운 과제가 될 것이다. 대한민국도 이런 식의 운영을 하고 있다. 남성은 신체의 취약점에 등급을 부여받고 등급외 인원은 '어떻게든 의무를 부여받아' 군대 대신 공익적인 취지의 근무를 한다. 말은 참 쉽지만 운영해 보니 정말로 쉽지 않은 행정적 도전 과제이다. 신체에 등급을 매기고, 탈락자와 합격자를 매기고, 의무를 '강제로' 떠안기는 시스템, 게다가 그렇게 부여받은 자유의지주의적으로 보장된 소중한 권리는, 의무에서 면제된 인구의 절반 중 일부에게 '평등'이라는 취지로 매도당한다. 그럼 어쩌라고? 여성도 징집하라는 거냐? 아니, 그런 건 아니야. 우리는 "여자는 집에서 애나 봐, 전쟁은 쌍남자들이나 하는 거야"라고 일갈하는 개쌍마초남과, "여자와 남자는 동등한 의무를 부과해야 해, 그것이 설령 징집이라도."라고 엄근진하게 주장하는 스타십 트루퍼스 징집장교의 두 극단 중 하나만을 취할 필요는 없다고. 그 중간의 길은 어디든 가능하니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