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루이스의 『빅 숏』을 읽고
흥미롭게도 마이클 루이스의 책은 논픽션인데도 불구하고 세 번이나 픽션으로 영화화되었다. (『블라인드 사이드』,『머니 볼』, 그리고 이 책『빅 숏』전부 동일 제목으로 영화화되었다.) 픽션은 등장인물이 반드시 필요한데, 마이클 루이스의 논픽션은 실화 바탕임에도 인물들의 행동이 가상으로 창조된 것처럼 살아 숨쉬는 캐릭터성을 가지고 있다. 영화 『머니 볼』의 등장인물 ‘빌리 빈(브래드 피트)’과 ‘피터 브랜드(조나 힐)’를 기억하는가? 빌리 빈은 도전적인 목표를 수행하는 주인공으로, 피터 브랜드는 (통계학을 바탕으로) 그를 수행하는 사이드킥으로 등장한다. 사실 기반한 이야기 치고는 참으로 재미있는 캐릭터성이었다. 물론 마이클 루이스의 『머니 볼』과 영화 『머니 볼』을 같이 놓고 비교해 보면 영화 쪽이 더 기승전결을 다듬은 픽션에 가깝다. 마이클 루이스의 논픽션은 실질적으로 사실 기반으로 인물과 사건의 소개를 하는 것에 가깝다면, 영화는 픽션의 법칙을 바탕으로 사실을 깎아내거나 각색해 재미를 추구한다.
이 책도 마찬가지이다. 세 팀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것은 같지만(사실, 영화와는 달리 한 팀의 이야기는 약간 서브에 가깝다), 이야기의 흐름은 기승전결의 극적인 효과를 노린다기보단 인물의 심리와 상황을 다큐멘터리 처럼 소개하는 것에 가깝다. 영화는 이와는 달리 철저히 픽션의 법칙(기승전결)에 맞춰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픽션인 『빅 숏』이 영화 『빅 쇼트』로 각색될 수 있었던 것은, 등장인물들의 캐릭터성이 실제로 놀라울 정도로 독특했고, 현실이 그 타임라인에서 기승전결 구조를 끊어낼 수 있을 정도로 극적이었기 때문이다.
주요 인물은 마이클 베리 (Michael Burry, 영화에서는 크리스찬 베일이 역을 맡았다), 그렉 리프만 (Greg Lippmann, 영화에서는 라이언 고슬링이 ‘제러드 베넷’이라는 이름으로 출연했다), 스티브 아이스만 (Steve Eisman, 스티브 카렐이 ‘마크 바움’이라는 이름으로 출연) 정도이고, 브래드 피트가 연기한 인물을 중심으로 한 팀도 나온다. 정말 재미있는 캐릭터는 스티브 아이스만인데, 당시의 월스트리트 투자자들의 부도덕성과 무책임에 대해 사정없이 까고 다니는 인물이다. 그는 투자자들이 수백 명 모인 컨퍼런스장에서 유명한 인물의 연설 중간에, 손을 들고 손가락으로 ‘0’을 표시하며 “Zero! Zero!”라고 외친 후(당신의 얘기가 맞을 확률은 0%라는 소리를 외친 것이었다), 바로 전화벨이 울려 전화를 받으며 뛰쳐 나간 유명한 일화를 가지고 있다. 이 ‘사건’은 영화에서 스티브 카렐에 의해 매우 극적으로 그려지는데, 사실 이 일화 자체가 잘 믿기지 않을 정도로 독특한 ‘스티브 아이스만’의 성격을 드러낸다. 영화의 대본은 그냥 거의 각색이 들어가지 않았던 ‘있는 그대로’였는데도 불구하고 극적이다.
‘마이클 베리’라는 인물도 너무나 독특했는데, 그는 의학박사를 하다 그만 두고 투자사를 설립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는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위험성을 세계에서 사실상 최초로 간파하고, CDS라는 보험 상품을 역이용하여 서브모기지 프라임의 ‘몰락’, 그리고 세계 경제 자체의 몰락에 베팅하기로 결심한다. 후에 재미있는 사실이 밝혀지는데, 그의 아들의 자폐 스펙트럼 진단으로 인해 자폐증 테스트지를 받아 심심풀이로 직접 해보고는 자신 또한 자폐증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들이 자폐의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유전의 영향이 어느 정도 있었을 것이다.) 그는 투자자들의 돈을 이용해 CDS의 보험금을 다달이 지불하면서도, 사무실에서 떠나지 않고 투자자들에게 다량의 이메일을 보내며 자신이 틀리지 않을 날이 올 것이라는 주장을 절대 굽히지 않는다. (사무실에서 떠나지 않고, 대면이 아닌 간접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선호하는 성향 자체에서 자폐증적인 특성을 조금은 읽을 수 있다.)
독특하고 재미있는 인물들이 너무나 매력적이기 때문에, 사실상 모기지니, 공매도니, CDS니, 합성 CDO니 하는 경제학적 용어들에 대한 설명은 잘 들어오지 않는다. 워낙 어려운 분야기도 하고, 실제로 그 어려움 때문에 그쪽 분야의 여러 전문가조차 위험성을 과소평가했다. 내가 이해한 대로 최선을 다해 설명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CDS란 원래 보험상품으로, 어떤 금융상품에 대해 손실이 날 때 손실을 보전해 주기 위해 매 주기마다 다달이 보험금을 지불하는 상품이다. 그런데 내가 몰랐고 재미있었던 사실은, 보험 상품인데도 불구하고 ‘손실 위험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도 가입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가입된 CDS는 사실상 보험이 아니고 도박이 된다. 왜냐하면 금융상품이 손실이 날 것이냐 말 것이냐에 대해 이해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다달이 보험금을 납입하며 베팅을 하는 의미로 변질되기 때문이다.
마이클 베리가 최초로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위험성에 대해 인지한 후, 그는 그 위험성을 ‘고발’하지 않고 오히려 CDS를 통해 몰락에 ‘베팅’했다. 이 해결책 자체가 참으로 놀라운데, 심각한 도덕적 딜레마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화에서 표현한 ‘마크 바움’(스티브 아이스만)의 고뇌, 그리고 벤 리커트(‘브래드 피트가 연기)가 동료에게 ‘춤추며 즐기지 말라’고 했던 일화들이 여기에서 나온다. 세계가 멸망하는 것을 보며 떼돈을 벌어도 괜찮은 건가? 마크 바움은 영화 마지막에, 투자상품을 매각해 떼돈을 벌어 멸망한 세상의 대부호가 될 것인가 아무 것도 안할 것이냐(사실상 도덕적으로 안전하지만 몰락을 피할 수 없는)에 대해 고민했다. 물론 그는 매각했다. 모든 등장인물이 그런 식으로 떼돈을 벌어들였다.
이 행위는 부도덕한가? 아닐 수도 있다. 내가 잘은 이해 못하겠지만 이 투자 행위들은 책에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불러일으키는 장본인들을 ‘처벌’하는 역할도 한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딜레마가 어느 정도 감소되긴 한다. 주인공들은 멸망한 세계 위에 떼부자가 되어 모른척하며 살아가기 보다는, 세계를 이렇게 만든 사람들을 처벌하는 심판자가 된다. 그런데, 그러면 끝인가? 딜레마는 모두 사라졌는가? 아니다. 심판자가 이득을 취한다면, 여전히 딜레마의 날카로운 꼬리는 사라지지 않고 방울을 흔든다. 이득은 세계가 멸망하며 몰락한 사람들에게 분배되어야 한다. 그래야 정의다.
그들에게 최상으로 도덕적인 옵션은 ‘고발’이었다. 언론사든 어디든 주장하고 또 주장하는 방법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고, 적극적으로 알리기보단 조용히 베팅하여 나중에 심판자가 되는 길을 택했다. (물론, 자신의 투자자들에게 이메일을 보낸 마이클 베리, 컨퍼런스장에서 ‘zero’를 외쳤던 스티브 아이스만의 행의도 고발이라도 보여지지만) 최고의 도덕적 행위가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 딜레마의 상황이었다. 도덕지상주의자가 되어 벽창호처럼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진실을 떠드느니 그냥 개인의 사사로은 이득만 챙긴 것이다. 여전히 주인공들은 춤만 추지 않을 뿐, 멸망한 세상 위에서 샴페인 잔을 흔들며 즐기고 있다.
현실은 픽션과는 달리 결말 후에도 생이 이어진다. 마이클 베리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벼락부자가 되었는데도 불행한 상태였다. 투자자들은 사태 이전에도 마이클 베리를 공격했지만, 사태 이후에도 돈을 분배받으며 마이클 베리를 욕했다. 업계의 부도덕성을 강렬히 공격했던 스티브 아이스만(마크 바움)은, 도덕적 딜레마를 떨쳐내고 돈다발 위해서 행복했을까? 마이클 베리, 스티브 아이스만, 그렉 리프만 모두 실존인물이다. 그들의 위키피디아 페이지를 열어 그들의 ‘백설공주의 결혼식 이후’ 스토리를 살펴볼 수도 있겠지만, 나의 호기심은 그렇게까지 열정적이진 않으므로 그냥 픽션 『빅 쇼트』의 여운 있는 결말로 마무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