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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고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언명으로 깨닫는 삶과 우주, 모든것에 대한 답

이 책은 대충 좀 알려진 어떤 전 시대의 과학자에 대한 이야기이며, 또 우리 시대의 어떤 과학 저널리스트가 그 과학자를 집요하게 파본 후에 받게 된 자신의 인생의 교훈을 생각해 본 이야기이다.


이 책이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떠들썩하길래 어쩌다 주목하게 되었는데, 사실 처음 내용을 전해들을 당시에는 이 책이 도대체 무슨 책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제목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이고 어떤 과학자의 이야기라는데, 부제목은 또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라니? 책 띠지에는 어떻게 쓰여 있는가? "다른 세계는 있지만, 그것은 이 세계 안에 있다"?!


이런 혼란스럽고 감도 잡히지 않는 주제를 마케팅하고 있는 과학책이 어떻게 대한민국에서 과학 분야뿐만 아니라 종합 분야에서까지 베스트셀러로 선정되었을까?


당황스럽다.

Why Fish Don't Exist - Lulu Miller


대충 좀 알려진 어떤 과학자에 대한 이야기

데이비스 스타 조던(1851-1931)은 어류 계통분류학자였다. 나무위키에도 안 올라간 걸 보니, (전문가가 아닌)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 과학자에 대해 알고 있었던 적은 이 책 이전엔 없었을 법 하다.


계통분류학이란 생물학의 한 분야로, 새로운 생물을 발견하고 그것에 이름을 붙이고 다른 근연종과의 관계를 추리하여 분류를 하는 학문이다. 카를 폰 린네가 떠오른다면, 정확하다. 찰스 다윈도 있다. 그는 린네의 분류학에 '진화의 나무'라는 시간의 차원을 확장해 주었다.


즉, 생명이 '분류된다'는 것은, 생명은 진화했다는 뜻이다. 왜 호모 사피엔스는 유인원과 비슷한지, 왜 모든 포유류는 아기를 낳고 젖을 물리는지, 왜 모든 어류는 물에 사는지 등. (물론 '고래'처럼 물에 살면서 젖을 물리는 동물도 있다. 이런 예외는 그냥 예외가 아닌, '수렴진화'라는 또 하나의 생물학 이론으로 만들어졌다는 게 놀라운 생물학의 역사다.) 데이비스 스타 조던 또한 린네와 다윈의 후예로서, 물고기를 열심히 분류하였다. 그가 하는 일은, 새로운 물고기를 발견하고 그 물고기에 이름을 붙이고, 표본을 만들고, 전에 발견되었던 다른 물고기와의 근연관계를 추적하는 것이었다.


이 과학자에 대한 여러 가지 일화들이 있다.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이 일어나 물고기 표본들이 다 박살났던 일 (표본과 이름표가 다 뒤죽박죽 되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낙천적 의지로 그 표본을 다 복구한 일, (여기까지는 긍정적인 일화) 대학의 관계자 한 명을 독살했다는 의혹, 그리고...


우생학을 신봉하고 죽을 때까지 우생학 실천을 위해 장애인들의 불임 시술을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


우리 시대의 어떤 과학 저널리스트에 대한 이야기

저자인 룰루 밀러는 어릴 적 아버지로부터 "넌 중요하지 않아"라는 인생의 참교육을 받았다. 아버지의 의도는 '넌 중요하지 않으니 멋대로 살아라'였지만, 그녀에겐 종종 이 교훈이 다르게 받아들여지곤 했다. "내가 중요하지 않으면 왜 난 살아야 할까?" 그 후 그녀의 인생은 우울한 사건의 연속이었다. 그녀는 어떤 남자와 결혼했지만 양성애적 성향도 있어서, 어떤 여자와 잤고 또 그걸 남자에게 말했고 이혼했다. (이 부분에서, 어떤 독자들은 소위 최신 트렌드인 'PC주의'를 느꼈다고는 하고 또 그 때문에 역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PC주의의 '매우' 과도한 자기 주장이 역하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이 책의 정도는 그렇게까지 역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그 이후로도 후회하고 우울에 잠겨있는 삶을 살았다. 그러다가 결국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사례를 접하고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는데, 특히 그 불굴의 의지,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때문에 자기라면 분명 절망에 빠져야 할 사건도 꿋꿋이 일어나 이름표를 꿰맸다는 일화에 감명을 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살인 의혹과, 명백히 기록된 우생학적 신념과 또 그 신념을 열심히 실천한 에피소드들을 다뤘다. 그녀는 물론, 데이비스 스타 조던을 찬양하지 않는다. 단지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일화에 살짝 감명을 받았을 뿐이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분류학자였다. 분류란 우주에 어떤 질서가 있다는 믿음이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어릴 때부터 그 믿음이 너무 강렬했다. (이 믿음 자체는 나쁜 게 아니고 오히려 과학자의 유능한 자질이다. 어떤 과학자는 돌멩이를 분류하기도 하는걸.) 그러나 그 '질서에 대한 강박'이 요상한 종교적 믿음과 결착되자, 그는 다른 방향으로 폭주하고 말았다. 그것은 바로, 진화란 사다리이며 진화하지 못해 사다리 밑에 깔린 생물들은 열등하다는 것.


물고기(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책은 단 하나의 핵심적인 주제로 끝맺는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스포 아니지? 제목에도 써져 있잖아.)


사실 분류학에서는 잘 정립된 관점이다. 이와 비슷한 관점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파충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파충류란 일반적인 인식으로는 거북이, 악어, 뱀과 도마뱀류를 묶는 분류법인데, 사실 이들에겐 하나의 공통조상이 있다. '사우롭시드' 또는 '석형류'라고 부르는 1억 7,000만 년 전에 살던 단 한 마리의 공통조상은 도마뱀처럼 생겼었다.



문제는 이 사우롭시드에서 우리가 파충류로 부르지 않는 조류가 후손으로 갈라져 나왔다는 것이다. 이젠 "조류는 공룡의 후손이며, 사실상 새가 곧 공룡이다"라는 얘기는 꽤 유명해졌지만, 아무리 그래도 새를 파충류라고 하지는 않는다. 새를 배제한 '파충류'라는 분류는 서로 가깝지 않은 세 집단을 묶어 놓은 것이라 이상하다. 왜냐하면 악어는 파충류가 아닌 조류와 가장 가까운 친척이고, 파충류 내에서는 어떤 종도 악어와 조류보다 가깝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분류학자들은 '파충류'라는 분류를 측계통군(paraphyletic group)이라고 부른다. 학술적으로는 아무래도 측계통군이 의미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굳이 심하게 말하자면, '파충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물고기(어류)라는 분류는 폐어, 실러캔스, 조기어류, 상어, 장어 등 다양한 집단을 포함하는데, 그들의 친척 관계는 엉망진창이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실러캔스는 조기어류인 송어나 연어보다 인간과 더 가깝다. 즉, 어류라는 분류는 상식 선에서는 당연한 분류법이지만, 측계통군이라 학문적으로는 큰 가치가 없다.

이밖에도 분류학에서 발견한 사실들이 우리의 상식적 분류법에 위배되는 것들이 많이 발견되었다. "아프리카의 인류가 아프리카를 제외한 전 세계 인류보다 더 다양하다"는 사실은 우리의 상식과 모순된다. 아프리카는 인류의 조상이 처음 출현한 장소이고 또 동아시아와 유럽, 아메리카 인류의 공통 조상은 아프리카에서 나온 후에 분화했다. 그러나 아프리카에 계속 살던 인류도 동일한 시간선 동안 계속 분화한 것은 마찬가지다. 그들은 '남겨지고' 유럽인과 동아시아인만이 발전한 것이 아니다. 그들 또한 아프리카에서, 유럽인과 동아시아인보다 더 다양한 형태로 분화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우생학을 그토록 믿었던 것은 바로 분류학에 따라 어류가 존재한다는 믿음 때문, 그리고 남겨진 어류는 열등하고 계속 진화해 발전해가는 포유류와 인간은 우등하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이 믿음이란 사실 증거가 없다. 과학이 아니다. 오히려 '뒤에 남겨지는 열등한 생물들'이라고 생각했던 어류는(그리고 장애인, 열등한 인종, 열성인자를 가진 인간은), 오히려 더욱 더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진보했다. 유명한 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진화란 진보가 아닌 다양성이다'라고 말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진보는 다양성의 증가다. 사실상 멸종하지 않는 모든 생명은 다양성을 증가시키며 진화해 왔으며, 그러므로 모든 멸종하지 않은 생물은 진보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믿음을 깨부수기 위해서, 우생학(이 과학이라는 믿음)을 거부하기 위해서, 우리는 과학적 생물분류학이 우리의 상식적 생물분류법과 배치된다는 걸 이해해야 한다. 즉,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를 통해 개인적인 신념의 변화에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것은 룰루 밀러가 한 단계 더 해낸 성취다. 그것은 바로 '인간은 서로에게 중요하다'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소한 철학. 솔직히 나는 분류학에 대한 과학적 사실은 전부 알고 있던 것이었고 우생학을 반박하는 논점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 지는 오래 되었지만, 이걸 개인적인 인생 철학에까지 사용하지는 못했기 때문에 그녀의 이 관점까지의 여정에 경이를 표한다. 또한, 과학자의 긍정적 일화와 부정적 일화가 뒤섞여 있는 일대기를 절묘하게 배치해 박진감 넘치는 논픽션 스토리를 만들어 내고, 재기 넘치는 문체와 함께 강렬한 교훈으로 결말을 맺은 구성력에도 감탄을 금치 못하는 바이다. 아울러, 애매한 포지션의 과학책을 힐링물(?)로 포지션해 기어이 베스트셀러에 올려놓은 한국 출판사 마케팅팀에도 (비꼬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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