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닥터 테그마크: 광기의 다중우주

맥스 테그마크의 『맥스 테그마크의 유니버스』를 읽고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멀티버스에 대해 다루기 시작하면서, 『닥터 스트레인지 2: 대혼돈의 멀티버스』라는 영화엔 제목에까지 '멀티버스'라는 용어를 박아 버리는 지경이 되었다. '대혼돈' 혹은 '광기'(Madness)라고 묘사되는 이유는 멀티버스 혹은 다중우주에 괴물들이나 다른 인생을 살고 있는 또 다른 자아가 나오기 때문이겠다. 무시무시한 괴물이 득시글한 다중우주, 아니면 또다른 인생을 살고 있던 '나'와 불가피하게 마주치는 어색한 장면들. 영화의 등장인물은 그 ‘광기’의 멀티버스를 73군데나 돌아다녀 봤다고 자랑스러워한다. 73개라고? 고작 그런 게 광기?


멀티버스의 진정한 광기는 갯수가 아니라 그 개념 자체에 있다. 그것은, 우리의 우주가 "인간의 상상력의 최대치보다 더 넓고 광대하고, 비정상적으로 보일 정도로 미친듯이 확장되는 다차원 세계"라는 개념이다. 그 개념은 정말로 미쳤다. 그렉 이건의 「무한한 암살자」에서는 유리수 무한집합의 농도보다 더 조밀한, 말 그대로 셀 수도 없이 조밀하고 연속적인 불가산 무한집합의 멀티버스가 등장한다. 이 보라, 얼마다 대단한 상상력인가? 멀티버스라면 이정도는 돼야지. 그러한 개념이 실제라면, 이 우주는 얼마나 무시무시할 정도로 넓은가? 멀티버스가 실재하지 않아서 천만다행이야. 잉? 아니라고? 멀티버스는 진짜로 있다고?


맥스 테그마크라는 물리학자는 물리학 연구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멀티버스 개념에 헌신해 왔고, 이 책 『맥스 테그마크의 유니버스』는 테그마크라는 물리학자의 인생을 쏟아부어 연구한 멀티버스에 대한 집대성이다. 그의 끝도 모를 전문성에 따라, 군데군데 설명이 충분하지 않고 바로 지 아는 얘기로 바로 넘어가는 성향 때문에 일반 독자 대상 책임에도 불구하고 정말로 어렵고 난이도가 높다. 그가 주장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멀티버스는 무한하다. 심지어 네겹으로 무한하다. 그리고 실재한다. 어려운 문장들을 뚫고 이 얘기들을 근본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이 불가산 무한 4-layer 멀티버스의 실재는 우리에게 진정한 공포로 다가온다.


Our Mathmatical Universe - Max Tegmark

멀티버스 이전 시대에, 물리학 이전 시대에 우리가 생각했던 상상력의 최대치가 단일 우주에서조차 얼마나 하찮았는지 되새겨보자. 우주가 고작 큰 거북이 위에 올라간 코끼리라느니, 빛과 어둠을 단 하루만에 창조하고 나머지 6일을 지구 만드는 데 몰빵했다니 하는 '썰'들을 과학이 밝혀 낸 우주의 광대함에 비교해 본다면, 순진한 인간의 상상력이란 정말로 보잘것이 없다는 생각밖에 들지 못한다. 천동설에 대해 생각해 보라.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외쳤던 과학 이전의 인간들 말이다. 이 미천한 상상력이 만들어진 이유는 지구 이외에 그렇게 거대하고 쓸모 없는 '빈 공간'이 펼쳐져 있을 것이란 상상력에 도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과학이 우주에 대해 밝혀낸 건 압도적일 정도로 거대한 빈 공간이다. 상상력의 한계를 넘어설 만큼 큰 공간, 그리고 그 공간들이 끝도 없이 무의미한 '빔(void)'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 그렇다. 이것이 우주다.


아니, 우주의 일부분이다.




1단계 다중우주

우주는 이런 비어 있는 우주조차 무한히 확장되어, 그 ‘무한성’으로 인해 반복되는 특성을 보인다. 잘 알려지고 합의된 우주 이론에 따르면, 우주란 유한한 크기 안에 들어가 있는 무한한 공간이다. (유한한 크기 속에 무한? 여기에 딴지를 걸거나 질문을 날리고 싶다면 주소를 잘못 찾았다.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영원한 급팽창(eternal inflation) 우주론‘의 나무위키는 뭐든 직접 찾아보기로 한다. 이 자리는 다중우주를 따지기에도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보잘것 없는 고등학교 1학년이 수학을 배울 때, ‘무한대’라는 단어의 공포감을 느끼지 못하고 남발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 단어는 사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의 최대치를 넘는 존재론적 공포가 내재되어 있다. 우주가 무한하다면, 그 안에 수학적으로 가능한 원자들의 조합은 전부 실재한다. 이 말이 무슨 소리냐면, 우리와 비슷하게 살아가고 있는 또 다른 우주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믿겨지지가 않는다고? 수학으로 간단히 증명해 보기로 하자. ‘우리의’ 우주라고 간주할 수 있는, ‘관측 가능한 우주’의 원자 배열 상태의 수는 10^(10^118)이라고 한다. (이렇게 큰 수가 어디있어? 라고 느껴진다면, 생각해 보라. 무한대는 이것보다도 더 크다. 당신이 ‘무한대’라는 단어를 너무 가볍게 보고 있었다는 증거다.) 자, 이제 당신은 ‘우리의’ 관측 가능한 우주를 떠나 무한한 우주를 여행한다. 거기서 당신이 10^(10^118)개의(!) 서로 다른 우주를 만난다면, 그 중 확률적으로 우리의 우주와 같거나, 적어도 비슷한 우주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1단계 다중우주

2단계 다중우주

광기는 아직 시작일 뿐이다. 앞서 언급한 ‘영원한 급팽창’ 이론에 따르면, 우주의 급팽창은 우리의 관측 가능한 우주와 다른 우주의 사이사이에 우리가 여행할 수 있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새 공간을 계속 창조해 낸다. 그런데 과거 급팽창 시절에는 작은 부피 안에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있었고, 그 에너지로 인해 작은 국소적 영역에서는 우리의 우주와 다른 물리적 성질을 가진 ‘상변화’가 일어다. 이후 이 작은 영역은 급팽창을 통해 거대한 영역으로 자라난다.


이게 무슨 소리일까? 우리의 ‘관측 가능한 우주’와 1단계 다중우주는 적어도 우리와 비슷한 물리법칙과 물리상수를 가지고 있었지만, 2단게 다중우주에선 그런 것조차 기대할 수 없게 된다는 말이다. 암흑에너지 밀도, 전자 질량, 쿼크 질량, 공간 차원과 시간 차원마저 다른 ‘무한대로 많은’ 우주가 있고, 이게 바로 우리의 우주다. 1단계 우주와 2단계 우주는 하나의 단일한 공간에 멀리 떨어진 영역들이지만, 우리는 수학적으로는 도달할 수 있을지언정 물리학적으로 그 영역들로 이동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빛보다 빨리 멀어지는 관측 가능한 영역의 테두리에도 도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영역들은 ’평행우주‘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간주해도 된다. 왜냐하면 거기엔 나와 똑같이 생겼지만 마법을 연구하고 있는 ’김필산‘이 반드시 존재할 것이며, 심지어 무거운 전자가 가벼운 양성자의 주위를 도는 원자로 이루어진 김필산도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2단계 다중우주

3단계 다중우주

3단계 다중우주는 양자역학의 다세계 해석으로 도출된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사고실험에 대해 알고 있는가? 슈뢰딩거의 파동 방정식에서 파동이 ’관측을 통해 붕괴‘하듯이 삶 파동과 죽음 파동이 중첩되어 있던 고양이가 상자를 열자마자 둘 중 하나의 파동으로 급격하게 붕괴한다는 이야기 말이다. 그러나 물리학자 휴 에버렛 3세는 물리학이든 양자역학이든 뭐든 파동이 붕괴되는 것에 어떤 그럴 듯한 수식이 없음을 이상하게 여기고, 여기에 해석을 약간 변경한다. '파동함수는 절대로 붕괴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고양이는 영원히 중첩된 상태로 존재할 것이다. 영원히.


이것이 3단계 다중우주이다. 우주는 양자적으로 중첩된 파동이다. 그리고 파동은 한 번 나뉘면 영원히 안녕이다. 나뉘기 전의 현실로 합쳐지지 않는다. 1단계와 2단계 다중우주의 현실과 혼합하면, 3단계 다중우주는 그 넓고 광대한 우주에 파동의 중첩 현실까지 겹겹의 레이어로 확대된다. 3단계 다중우주는 또 얼마나 무한할까? 양자적 다중우주의 분리는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가? 뭐, 한 달에 한 번 정도? 1단계와 2단계 다중우주가 통째로 두 개로 분할되는 거지. 얼마나 무시무시하고 광대한 현실이니? 아니, 그게 아니다. 양자적 분할은 우리의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원자와 소립자가 시도때도없이, 툭하면 하는 일이다. 지금 순간에도 나를 이루고 있는 모든 원자들이 계속 분할해대고 있다. 한 번 분할할 때마다 1단계와 2단계 다중우주는 통째로 복제되어 나(뿐만 아니라 우리의 우주)가 두 개가 된다.


(1단계와 2단계도 그렇지만) 3단계 다중우주는 이제 현실이다. 물리학자들에게 설문조사를 한 적 있는데, 많은 수의 물리학자들이 이제는 코펜하겐 해석보다도 다세계 해석을 더 신빙성 있게 여기고 있다고 한다. 아무리 그래도 설문조사는 설문조사지! 증명을 해야 할 것 아닌가? 그리고 양자적으로 분할된 우주로 건너갈 방법이 없는 이상, 그걸 증명할 방법은 없을껄? 아니다. 있다. 테그마크의 미친 제안이 있는데, 내 생각에도 그 실험은 양자적 다중우주를 완벽하게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런데 왜 그 실험을 안 하고 있는거야? 당장 하자! 어...그 실험이 좀...


‘양자 자살’이라고 이름 붙은 이 실험은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죽음과 삶의 중첩으로 몰아넣었던 장치를 기관총에 부착한다. 즉, 양자 측정 결과에 따라 총알은 발사되거나 발사되지 않거나 한다. 1초에 한 번 방아쇠를 당긴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발사되거나 않거나 할 것이다. “탕-짤깍-탕-탕-탕-짤깍-짤깍-탕-짤깍-짤깍”. 그것은 완전히 무작위적이다. 여기서, 아마도 크레딧을 소모해야 하는 불쌍한 학부생인 당신은 한 가지 행동을 해야 한다. 그는 총구 앞에 머리를 들이민다. 그런데 갑자기, 총은 계속해서 짤깍댄다. ‘짤깍-짤깍-짤깍-짤깍-짤깍-짤깍...“ 그 사건이 일어날 확률은 기하급수적으로 감소한다. 1/2, 1/4, 1/8, ..., 1/65536. 당신은 1분동안 살아남는다. 확률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줄어들었다. 1경분의 1. 당신은 머리를 빼낸다. 다시 탕 소리가 간간히 들리기 시작한다. 즉, 기계 고장이 아니다. 이 실험이 의미하는 바는, 1초마다 발사되거나 하지 않거나 하는 총알에 의 당신이 머리를 들이밀기 전이나 후나 마찬가지로 평행우주가 갈라지지만, 당신이 1경분의 1의 확률을 뚫고 살아남아 있다는 사실에 의해서 다른 평행우주, 즉 총알을 맞고 장렬히 머리가 뚫린 당신이 존재하는 평행우주가 1경 개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미안하다. 당신을 실험참가자로 선정해서. 하지만 이 실험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이것이다. 제 3자를 시키면 그는 분명히 죽는다. 실험참가자는 반드시 이 평행우주를 증명하고 싶은 사람이어야 한다.


3단계 다중우주



4단계 다중우주

솔직히 말해 4단계 다중우주의 상황은 저자도 아직 개념적이며 명확한 증거도 없고, 많은 물리학자들이 지지하고 있는 상태는 아니라고 말한다. 그만큼 이 가정급진적이고 불완전하다. 이 4번째 겹의 다중우주는 '수학적 우주'이다. 이 우주는 물리학 법칙이란 수학이며, 이에 따라 수학적 구조가 다르다면 그에 따른 물리적 우주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아주 간단히 말하면 이렇지만 당신이 책을 읽어 본다면, 이보다 더 풍부한 철학적 논증을 읽어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 4단계에 이르러 그럴 듯하게 설명할 자신을 잃었다. 저자가 펼치는 논증도 현실적이지 않다--좀 사변적이다. 솔직히 그렇게까지 믿기지는 않는다.)


4단계 다중우주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알고 있던 시기를 지나 태양이 지구를 돌고, 그 태양계보다도 더 큰 은하계의 넓이를 알게 되었을 때, 그리고 관측 가능한 우주의 광대한 크기를 알게 되었을 때에도 인간은 거기에 막대한 공포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물리학자들은 4겹의 다중우주에 대한 이론이 진리가 되었다고 강요한다. 솔직히 무섭고 두렵다. 도대체 이런 무한한 공포를 우리는 어떻게 심리적으로 다스려야 할까?이 공포감을 나타내는 장르 소설의 용어가 있다. '코스믹 호러'다. 하지만 어떤 코스믹 호러 소설 작가도 이렇게까지 거대한 공포를 창조해 내진 못했다. 또다시, '현실이 소설을 뛰어넘은' 순간이다.


맥스 테그마크의 『라이프 3.0』이라는 책도 번역되어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인공지능의 급속한 발전에 따른 특이점에 대한 예측을 한다. 솔직히 말해서 4겹 다중우주의 먹먹한 광대함에 비하면, 인공지능의 반란이나 지배 따위 하찮게 느껴진다. 『이기적 유전자』 같은 책에서 동물이 이렇게까지 이기적으로 태어났는데 인간은 왜 이타적으로 살아야 하는지 엄청 심각한 철학적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나는 뭐, 『이기적 유전자』 는 별 문제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 책 『맥스 테그마크의 유니버스』를 읽고 나면, 인간이 무척 소중하게 여겼던 많은 가치들, 윤리, 사회, 자본, 역사, 이런 것들이 끝도 없이 하찮게 보일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 무한대의 다중우주와 비교한다면, 솔직히 모든 것이 보잘것 없다.


하아...하찮고 보잘것 없고, 광대하고 끝없고... 그래도 내일은 오고 인생은 계속된다. 자리에서 일어나 출근이나 하자.


매거진의 이전글 장하석의 『물은 H₂O인가?』를 읽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