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SF 리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그렉 이건의 『내가 행복한 이유』를 읽고

물리법칙이나 신경구조가 인간성의 심연과 연결되는 지점

일명 "현존하는 최고의 하드SF 작가" (두 명 중 한명) 그렉 이건의 작품이 '드디어' 한국어 번역되었다.(다른 한 명은, 당연하지만 테드 창) 물론 그렉 이건의 작품이 지금까지 아예 번역되지 않았던 건 아니다. 2003년에 출간된 장편소설 『쿼런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경우엔 한 권만 낸 게 더 나쁘다. 2022년 올해까지 장장 19년을 "그렉 이건"이라는 이름을 뇌리에 새겨 넣은 채 언제 그의 다른 소설들이 번역될지 헛된 기대를 하며 기다려야 했었기 때문이다. (이것저것 따져 보자면, 『하드SF 르네상스』라는 2008년 앤솔로지에서 「내가 행복한 이유」라는 단편과, 최근인 2021년 『SFnal』이라는 앤솔로지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라는 단편이 번역된 적이 있긴 하다. 둘 다 최고였다. 그래서 더더욱 나쁘다.) 이번에 번역된 『내가 행복한 이유』라는 제목의 단편선은 우리가 이미 접한 「내가 행복한 이유」 포함 11개의 단편이 실려 있으므로, 드디어 한 편의 감질나는 단편 따위로 채워질 수 없는 "현존 최고의 하드SF 작가"라는 그렉 이건의 진면목을 흠뻑 느껴볼 수 있겠다. 책날개에 소개된 허블 출판사의 '워프' 시리즈라는 외국의 SF번역 선작 플랜을 살펴 보자면, 앞으로도 그렉 이건의 단편집은 두 권 더 나올 예정인 갑다. 신난다.


굳이 테드 창과의 비교를 할 필요가 있나 싶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비교해 보자면, 그렉 이건은 테드 창보다도 더 우리가 정의하는 하드SF의 본질에 더 가깝다. 테드 창의 작품들은 때로는 자신만의 판타지 세계관을 창조하고, 그 세계관에서 가상의 물리학으로까지 취급될 정도로 정교한 내적 법칙을 가지고 노는 식이다. 그래서 "이건 그냥 판타지 아냐?"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에 비하면 그렉 이건은 완전한 가상 판타지 물리학보다는 현실 수학/물리학과 분자생물학, 신경과학에 기반한 이야기들을 주로 쓴다. 의식의 관측이 양자적 파동 붕괴를 일으키는 『쿼런틴』, 스카이훅 또는 테더라고 알려진, 공학적으로는 '가능하다'고 알려진 우주 운송 수단에 대한 이야기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 이산적이 아닌 연속적 평행우주, 특히 칸토어의 연속체 가설에 기반한 불가산 무한 평행우주를 그리는 「무한한 암살자」 등에서 현실 수학과 물리학을 확장한 세계관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도덕적 바이러스 학자」나 「바람에 날리는 겨」는 현실 분자생물학에서는 아직까지는 불가능하다 할 지라도 어쨌든 현실에 기반한 DNA나 바이러스의 특성을 이용한 이야기들이다. 「내가 행복한 이유」, 「행동 공리」, 「내가 되는 법 배우기」에서는 신경과학에서 밝혀진 신경과 뇌에 대한 과학적 사실을 기반으로 자아나 의식 같은 철학적인 주제를 심도 깊게 탐문한다. 근데 이 사람 프로그래머라던데? 물리학 전문가도, 분자생물학 전문가도, 신경과학 전문가도 아닌 사람이 이런 주제를 이렇게 '그럴듯하게' 쓴다는 건 대단한 능력이다. 이 책에 실린 모든 작품들이 1990년대 쓰인 것들이라는데, 물리학이야 뭐 1900년대 초반에 밝혀진 양자역학 이론들이 워낙에 신기방기해서 그걸 이용한 SF가 아직까지 먹히는 걸테지만, 2020년대 나 같은 과학 오따끄가 읽어봐도 그럴 듯하게 들리는 1990년에 쓰여진 DNA, 뉴런, 바이러스, 팬데믹 소재의 SF 소설이라는 건 정말 시대를 초월하는 오파츠 같은 것이다. 프로그래머 겸 소설가 그렉 이건이 자기 분야도 아닌 최신 논문들을 얼마나 많이 찾아서 읽었는지 짐작되는 바다.


Reasons to be Cheerful - Greg Egan

때로는 그렉 이건이 다루는 현실 과학 너무 어려워서, 소설 안에서 설명 파트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기도 한다. 가끔씩은, 뭐 아예 설명도 안하고 넘어간다.(근데 생각해 보라고. 칸토어의 불가산 무한집합에 대한 연속체 가설을 어떻게 짧은 단편소설에서 설명할 수 있겠어?) 심지어 어떤 등장인물들은 평범한 사람이거나 심지어 우울증에 시달리는 무직 백수 청년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대학원 박사 과정생마냥 암의 최신 임상 연구성과들을 줄줄 읊으며 의사와 이론 배틀을 벌이기도 한다. 극도의 호불호 포인트로 예상되는 지점인데, 이런 건 사실 독자 취향의 문제라기보단 알고 있는 선행 지식의 총량 문제다. "그래 너 아는 거 많아서 좋겠다"라는 대답을 이끌어내려 한 발언은 아니고, 그냥 내가 그렉 이건의 관심사와 나의 과학 분야의 관심사들이 우연히도 겹쳤다는 얘기다. 2003년 『쿼런틴』을 읽을 때부터, 그리고 「내가 행복한 이유」를 읽을 때 알아봤다. 이 사람 참 내가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구만. 난 사실 로켓공학이나 천문학 분야엔 의외로 관심이 없고 아는 것도 희박하다. 그래서 최근에 대한민국 로켓 발사 장면 실황 중계나 제임스 웹 망원경의 고해상도 우주 관측 사진같은 뉴스에 대해 오히려 일반인들보다도 더 시큰둥~했다. 그런 점에서 그렉 이건 얘기 중에 우주선이나 다른 행성의 얘기가 없다는 것조차 내 취향과 일치하는 부분이다. 최근에 닐 스티븐슨의 『세븐이브스』 1권을 읽어 보았는데, 1권의 중후반까지 우주선의 구조와 작동 원리를 구구절절 설명하는 판에 나가떨어져 버렸다. 흠, 2권부터는 좀 재밌어진다고 하긴 하더라만...


"그렉 이건 왜 재밌어요? 이건 그냥 과학 이론 설명이고 소설 같지도 않은데?" 라고 내게 물어본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아니거든? 소설 맞거든? 그렉 이건이 푸는 이야기들은 과학 이론에 대한 단순한 설명문이 아니라고. (그리고, 과학 이론 설명이라는 것도 원래는 충분히 재밌거든?) 그렉 이건이 다루고자 하는 질문은 우리가 물리적 우주에서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궁금해 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본질, 철학적 질문들에 대한 인간 이성의 최전선이 내놓는 답변이라고. 그 의문점을 설명하기 위해서 길고 장대한 최신 과학 이론들을 가져오고, 또 그걸 SF적으로 변용하지만 '말 되는 것처럼 들릴 정도로만' 변용하는 미묘한 지점. 그런 점에 있어서 그렉 이건의 작품들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물론 작품들 가운데 굳이 '인간의 본질에 대한 해답'까지 굳이 도달하지 않은 것들도 있고, '인간의 본질에 대한 해답'에 도달하고 싶었지만 실패한 것들도 있다. 이런 작품들은 아무리 그렉 이건이 쓴 거라 해도 그닥 재밌지 않다. (그런 점으로 보아 나의 판단 기준은 무턱대고 '그렉 이건'이 쓴 것이라 빨아제끼는 수준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11편의 단편 중 상당한 비율의 소설들이 이런 질문을 던지고 또 그 적절한 답을 소설의 반전 구조나 여운을 남기는 결말 형식으로 풀어낸 어려운 작업의 결과물이라는 건 하드 SF 작가로서의 그렉 이건이 독보적으로 쌓아 온 성과다.

 

인간이 물리적 우주의 일부이며, 이성과 관찰을 통해 그 우주를 통괄하는 법칙을 알아낼 수 있다는 사실은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 가장 심오하며 중요한 통찰이었다. - 2014년 인터뷰



「적절한 사랑」

주인공은 사고난 연인을 다시 되살리기 위해, 뇌를 그녀의 자궁에 넣고 2년간 보호한다. 그녀는 원치 않는 그 '임신' 기간동안의 신체적 변화뿐만 아니라 정신적 변화까지 겪으며 혼란스러워하고, 사랑의 본질적 속성에 대해 깊이 고민한다. 기괴하고 기발한 아이디어와 통찰력 있는 메시지로 짧지만 강력한 임팩트를 전달해 주는 소설이다. 나처럼 몇십 년 동안 그렉 이건을 이름만 되새겨 왔던 사람들에게 처음 접하게 된 소설이지만, 그 기대치를 제대로 채워 주는 훌륭한 이정표를 세워 주었다.


...라고 생각했지만, 앞으로 읽을 예정인 다른 소설들에 비하면 엄청난 것도 아니었다. 계속해서 강력한 소설들이 앞으로도 계속 준비되어 있다.


「100광년 일기」

어떤 과학자가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외부 은하 세계를 관측한다. 그리고 그 원리에 따라 인간들은 스스로 쓴 일기를 과거로 보내 자신이 그 일기를 읽게 할 수 있다. 일기를 읽은 과거의 나는, 그 일기에 반대되도록 행동할 수 없다. 미래는 예정된 것이다. 주인공은 어느 순간에, 일기에 기록되지 않은 충격적인 어떤 사건을 겪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미래가 그 사건에 의해 어떤 형태로든 변화되어야 하지만, 일기에는 그 변화가 쓰여져 있지 않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다.


미래가 모두 결정되어 있다는 결정론적 세계관을 그리는 (일종의) 시간여행물이라고 할 수 있다. 엄밀히 따지자면 시간여행을 하는 주체가 인간이 아니라 일기장(또는, 정보)이다. 중요한 건 인간이 미래에 자신이 어떻게 될 지 알게 됨에도 불구하고 그 미래가 시키는 대로 행동하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 만약에 일기장에서 "나는 빨간 버튼을 눌렀다"라고 쓰여 있는데, 괜히 심술이 들어서, 혹은 미래를 바꿔보고 싶어서, 아니면 스스로의 자유의지가 있다는 사실을 밝여 내서 물리학의 위대한 업적을 성취하고 싶어서 초록 버튼을 누를 수 있다면, 누를 수 있지 않은가? 이 소설의 설정에 따르면, 그것은 불가능하다. 자유의지가 사실 '결정론적 계산기인 뉴런으로 작동되는 우리의 뇌'의 착각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면, 당연히 그렇다. 우리의 자유의지라는 착각은 조각케익 위에 딸기처럼, 결정론의 세상에 '얹어져' 있을 뿐이다. 딸기는 케익의 심연을 건드리지 못한다. 자유의지라는 착각은 결정론의 물리학 법칙을 수정할 수 없다. 미래에서 온 일기를 읽게 되는 순간, 우리의 마음은 자유의지가 없는 방식으로 당연지사하게 돌아갈 뿐이다. 


그러나 이런 결정론적인 세계에서 모두들 다 쓰는 일기를 "안쓰기로 결심"한다면, 그 때부터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는가?


「내가 행복한 이유」

암으로 인한 호르몬 때문에 극한의 쾌감을 느낀 적이 있는 주인공은 수술로 인해 쾌감의 뉴런이 제거어 우울감에 시달린다. 말 그대로 쾌감 기능이 제거되어 있기 때문에 쾌감을 느낄 수 없는 몸이 되어버린 것. 그에게 제안된 새로운 뇌수술법은 인간 4000명 정도의 평균적인 커넥톰을 뇌에 자라게 하는 신기술이다. 그 수술 이후, 그는 말 그대로 모든 것에 대해 쾌감을 느낀다. 모든 것을 보며 기분이 좋아지는 상황에서 뭐가 나빠졌는가? 그는 취향에 대해 고민한다. 그가 느끼는 모든 것에 대한 모든 쾌감은  4000여 명의 평균 취향이다. 그는 "나만의 취향"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모든 것을 좋아하는 취향이란 취향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 그런 취향을 가진 인간은 타인과 구별되는 자아도 애매해진다. 자아란, 타인과 구별되는 차이를 '메타'지각하는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이 도달하는 놀라운 해결 방법은, 취향을 의식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시각 인터페이스를 뇌 속에 다는 것이었다. 그는 의사에게 어떤 시술을 받은 후, 머리 속에 어떤 시각적인 사용자 인터페이스(UI)를 '불러내는' 능력을 얻는다. 그는 특정한 시각 자극을 보고 쾌감을 느끼는 와중에, 그 UI를 불러내어 노드를 조정해 그 쾌감을 감소시킬 수 있게 된다. 즉, 자기가 좋아하고 안좋아하는 걸 선별적으로 취사선택해 자신의 취향을 만들어나갈 수 있게 된다. 이후 그는 적극적으로 자신의 취향을 '4000명의 평균 취향과 다른' 자신만의 취향으로 조각해 나가기 시작한다. 우리가 이 이야기에서 마주치는 인간성이란 무엇인가, 타인과 구별되는 '나'의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내가 스스로 자아를 조각해 나가는 과정이 환경이나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아를 만들어 나가는 평범한 인간의 인생과 명백히 다른 지점은 무엇일까?


「무한한 암살자」

이 세계의 평행우주는 칸토어적인 무한의 세계다. 행동의 이지선다적 선택에 따라 분화하는 두 개의 평행우주라거나, 양자역학적 스핀 방향에 의해 갈라지는 슈뢰딩거의 고양이적인 평행우주와는 다르게, 이 세계관 평행우주의 모든 '나'는 무한히 연속적이고, 심지어 유리수의 무한보다도 더 큰 형태로 무한하다. 유리수도 무한인데 그 무한보다 더 큰 형태로 무한하다고? 이게 뭔 개소리야? 이걸 게오르그 칸토어의 연속체 가설이라고 하는데, 나무위키에서 찾아보던지 말던지. 이 주제에 대해 나는 무한한 사랑을 느끼고 있고 또 타인에게 썰을 마음껏 풀고 싶은 욕구도 있지만, 내 얘기를 듣는 상대방이 재미있어할 확률은 실수의 집합에서 우연히 한 수를 뽑았을 때 그 수가 유리수일 확률일 것이다. 0이란 얘기. 소설에 대해서도, 이 소설이 대단한 소설이고 내 인생의 별로 남을 것이 거의 확실시되지만 이 소설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을 오프라인에서 만날 확률 또한 0과 같다. 「내가 행복한 이유」와는 다르게 아무에게나 읽어보라고 추천하기가 매우 곤란한 작품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도 "실수의 집합에서 우연히 한 수를 뽑았을 때 그 수가 유리수일 확률"에 처하게 된다. 말 그대로.


「내가 되는 법 배우기」

'보석'이란 태어날 때부터 뇌에 설치하는 신경모듈이다. 보석은 30살이 될 때까지 자신의 뇌와 동기화를 이루고, 30살 이후에 대부분 수술을 통해 자아를 보석으로 대체한다. 주인공은 보석으로 대체되는 것을 내키지 않아 한다. 보석으로 대체된 삶 이후에 자아는 어떻게 되는 걸까? 이 소설은 눈에 띄는 큰 반전이 있으며, 그 반전 때문에라도 결국에 결론적으로는 그렉 이건이 천착하는 인간성의 본질이라는 걸 다시 되새길 수 있게 한다. (반전 때문에 썰을 더 못풀겠네!)


「루미너스」

「무한한 암살자」에 이어, 또 다시 무시무시한 수학SF. 괴델의 불완전성의 정리나 적어도 수학자 힐베르트 시절의 '형식주의 수학'에 대한 논쟁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한다. 당연히 소설 내에서 이런 것들을 아주 친절하게 설명해 주지 않으니, 각자 알아서 챙겨 먹고 오도록. (물론 나 또한 지금 당장은 설명해 줄 입장이 아니다.)


테드 창의 「0으로 나누면」과 비슷한 소재와 주제의식을 공유하지만, 내 생각엔 그보다 더 뛰어나다. 「0으로 나누면」의 주인공들이 다소 사변적이고 현실과는 괴리된 고민에 허덕이고 있다면, 이 작품의 주인공은 실제로 현실의 갈등에 얽매여서 행동하고 있다. 수학에 대한 주제를 어떻게 현실의 갈등과 사건으로 끌고 올 수 있을까? 테드 창의 작품이 넘지 못한 이 지점을 그렉 이건은 이 작품으로 넘었다.


누구나 "우리가 알고 있는 수학이 사실은 틀렸다면? 혹은 모순을 품고 있다면?" 같은 생각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걸 수학적으로 증명해 낸 사람은 괴델밖에 없고, 소설의 재미를 살리면서 독특한 상상력을 발산한 사람은 그렉 이건 밖에 없다. 이 작품의 상상력이 독특한 지점은, 수학적 증명이란 건 원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나가는 것이라는 세계관이다. 수학적 명제의 증명이 시도되기 이전엔 그 증명이란 건 참이나 거짓을 확정하지 않은 상태라는 소리. "무슨 개소리야, 수학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아"라고 말하고 싶다면, 나 포함 누구나 그걸 다 알고 그것에 대해 일말의 반박도 하려고 시도하지 않았지만, 그렉 이건은 "그대로 만약에 진짜 그런 세계가 있다고 상상은 해 볼 수 있잖아?"라고 말하고 있다. 맞다. 그 괴델이 최초로 수학 체계의 모순에 대한 증명을 해냈듯이, 이런 상상도 아무나 못하는 일이다. 상상은 자유지만 때로는 어떤 상상은 극도로 어렵다.


그래, 상상할 수는 있다 쳐. 그런데 그 소재를 또 다음 단계까지 끌어올리는 것조차 극도로 어렵고 난해한 과정일 것이다. 바로, 소재를 바탕으로 소설적 재미를 살리면서 완결된 형태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것. 등장인물을 꾸리고, 배경과 갈등을 조직하고, 결말의 반전 묘미를 살리고 등등등. 게다가 이 소설에서의 난점은, 그렉 이건의 혼자만의 상상력으로 탄생한 전무후무한 세계관을 어떻게 일반 독자에게 이해시키느냐는 것이다. 그는 해냈다. 제대로 잘 해냈는지는 솔직히 잘은 모르겠으나, 적어도 나를 이해시키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그래, 그 정도면 된 거다.) 그 방식은 이렇다. 수학 명제들이 땅따먹기 싸움을 한다. 뭐? 명제가...땅따먹기? 이런 발상을 자체가 황당할 정도로 기가 막힌 얘깃거리지만, 사실은 그 황당함을 가라앉히고 차근차근 생각을 정리해 본다면, 결국엔 더글러스 호프스태터의 『괴델, 에셔, 바흐』에서 읽어 본 현실 수학의 변용이다. 분명히 그 책에 그런 지도가 있었다. 수학 명제들이 땅따먹기를 하는 그림.

『괴델, 에셔, 바흐』그림 18. (96페이지)


그렇다면, 나에게도 기회가 있었다는 말이다. 저 대단한 하드 수학 SF를 쓸 수 있는 기회가. (아니, 이 작품이 1990년대에 쓰였으니, 적어도 그렉 이건보다 먼저 생각할 수 있을 기회는 없긴 했지. 그 때 난 잼민이였으니.) 하지만 기회가 있으면 뭐하는가? 그런 재주가 안 되는데. 세상에 유일무이하게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이야기로 완결해 내는 그런 재주가. 그렉 이건만이 가지고 있는 그런 재주가.



그렉 이건 컬렉션


그렉 이건의 『쿼런틴』(행복한책읽기판, 2003) 리뷰

그렉 이건의 『쿼런틴』(허블판, 2022)  다시 읽기

그렉 이건의 『내가 행복한 이유』 리뷰 (현재글)

그렉 이건의 『대여금고』 리뷰

매거진의 이전글 다채롭게 태어나는 SF 작가들, 그리고 김필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