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케임브리지 대학교 과학철학 교수 장하석의 책, 『물은 H₂O인가?』는 대중들이 그의 철학에 대해 쉽게 접해볼 수 있는(서점 가서 접하는 건, 그 책의 내용과 관계없이, 쉽다.) 두 번째 책이다. 첫 번째 책인 『온도계의 철학』은 온도계가 나타내는 '온도'라는 물리량의 실체를 정확히 정의할 때까지의 과학 역사에 대해 다룬다. 다들 그 사실을 알고 있는가? 물이 순수하면 할 수록, 오히려 0도에서 얼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른바 '과냉각'이라는 현상을 마주한 초기 과학자들에게 이 사실은 '온도'라는 물리량을 정하는 데 있어 엄청난 난관이었다. 우리 생각엔 당연하고 명확한 온도라는 실체는 과학사의 초기에서부터 극도의 혼란과 논쟁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이 책, 『물은 H₂O인가?』는 『온도계의 철학』의 작업을 계승한다. 과학사의 초창기 시절, 아무 것도 정의되지 않고 아무 것도 모르지만 무엇인가 자연의 이상함과 신비를 느끼던 시절, 그 혼돈의 시대에 과학이란 무엇을 하는 작업인가? 이번의 시대는 화학의 초창기, 흔히 '화학 혁명'이라 부르던 라부아지에의 화학 혁명이 꽃을 피우게 된 시대다. 장하석은 그 시대 이후의 화학 발전을 세 시대로 나눠서 조망했는데, 바로 라부아지에의 칼로릭 이론, 볼타전지와 물의 전기분해, 그리고 'H₂O 합의'이다.
Is Water H₂O?: Evidence, Realism and Pluralism - Hasok Chang
1. 라부아지에의 칼로릭 이론과 프리스틀리의 플로지스톤 이론
라부아지에는 우리에게 '질량 보존의 법칙'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가 질량 보존의 법칙을 내세운 이유는 자신의 열에 대한 이론, 칼로릭 이론을 '플로지스톤 이론'의 대항마로 내세우기 위해서였다. 플로지스톤 이론이란, '연소'라는 현상을 물질 안의 '플로지스톤'이라는 입자가 빠져 나가면서 생기는 현상이라고 설명하는 이론이다. 물론 플로지스톤은 종이 등의 탄소화합물의 연소를 설명할 수 있다. 우리는 탄소가 산소와 결합해 이산화탄소로 날아가고, 남은 재가 연소의 결과물이라는 설명(그러므로 연소 후의 질량은 연소 전의 질량보다 작다)을 배워서 알고 있지만, 플로지스톤 이론은 그와 다르다. 그 이론에 따르면, 종이 내부의 플로지스톤 입자가 공기중으로 빠져나가기 때문에 질량이 줄어든다. 이건 설명이 된다만, 플로지스톤 이론의 맹점은 금속의 연소에 있었다. 금속은 연소시 산화 반응을 하며, 이 때 산소가 금속 원자에 붙어 금속산화물이 되면 질량이 커진다. 플로지스톤 이론은 '음의 질량' 같은 개념으로 금속의 연소에 대해 설명했다. 누가 봐도 이건 Ad hoc(땜빵)이다.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에 맞닥뜨렸을 때 과학자들이 덕지덕지 기운 '추가 이론'을 덧붙이는 것이다.
그러나 라부아지에가 대항마로 내세웠던 '칼로릭 이론' 역시 현상에 대해 완벽히 설명하는 이론이 아니었다. 칼로릭 입자란 열의 실체인 입자인데, 문제는 이 칼로릭 이론조차도 현대 화학의 입장으로 보자면 정밀한 이론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우린 열의 실체가 입자가 아닌 운동에너지라는 사실을 다 알고 있지 않은가? 라부아지에가 과학사의 승자로 기록된 것 때문에 우리는 칼로릭 이론이 플로지스톤 이론을 개발살 내버린 줄로 착각할 수 있지만, 당시의 기준으로도 칼로릭 이론이 플로지스톤 이론보다 압도적으로 나은 게 아니었다. 아니 장하석의 말에 따르면 플로지스톤 이론이야말로 이후로 살아남았었다면 어쩌면 현대 화학의 발전에서 새로운 발견을 추동할 만한 가능성이 있었던 이론이라고까지 말한다. 예를 들어, 플로지스톤은 산화-환원 반응에서 '전자'라고 볼 만한 여지도 있었다. 만약 라부아지에의 승리로 인해 플로지스톤 이론이 이렇게 일찍이 묻히지 않았다면, 화학자들은 플로지스톤 이론을 마치 '칼로릭 이론'처럼 물고뜯고 하면서 그 이론의 가능성을 탐구했을 것이며, 어쩌면 전자를 실제로 발견했던 때보다 더 일찍 발견했을 수 있다. 그러면 우리가 '전류'와 '전자'의 방향이 다른 것 때문에 고통받는 거지같은 상황을 더 일찍 해결했을 수도 있다.
2. 볼타 전지의 발명과 물의 전기분해
볼타 전지란 전기를 발생시키는 최초의 화학 배터리다. 화학자들은 볼타 전지를 통해 물을 전기분해하는 데 성공했으며, 물이 '수소'와 '산소'로 이루어졌다는 걸 최초로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최종적으로 확정된 상태는 아니었다. 볼타 전지의 양극과 음극이 적어도 10센티미터는 떨어져 있는데, 그 시대의 어떤 과학자들도 어떻게 산소 기체와 수소 기체가―만약에 하나의 물 분자에서 쪼개졌다면―그 분자의 관점에서 거대한 거리를 어떻게 돌파했는지에 대해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거리 문제'는 당시 화학자들을 무지하게 괴롭힌 문제였으며, 심지어 '리터'라는 어떤 화학자는 사실 물이란 원소이며, 전기 원소와 결합하여 화합물인 수소(물+마이너스 전기 원소)와 산소(물+플러스 전기 원소)가 생성되는 것이라 설명하기까지 했다.
현대의 화학 지식으로 봤을 때 이 말도 안되는 견해에 대해 당시 화학자들은 합리적으로 바라봤다. 왜냐하면 마땅한 대안 이론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라부아지에의 "물=수소+산소"로 설명하는 방식이야말로 불합리하게 느껴졌다. 당시에 라부아지에 이론을 구제하기 위한 온갖 Ad hoc 땜빵 이론이 난립했으며, 이에 따르면 물이 수소와 산소로 이루어진 화합물이라는 가설 또한 플로지스톤 이론처럼 당시에 합리적으로 고려하기엔 땜빵의 느낌이 강했다. 그래서 이 거리 문제는 어떤 명확한 해결책이 주어지지 않은 상태로 오랜 기간을 지내야 했다. 정답은 정말로 나중에야 밝혀졌으니, 정답이란 바로 일부 물 분자들이 전기 없이도 자발적으로 해리되어 이온으로 물에서 떠다니며, 그것도 당대 어떤 화학자도 상상조차 하지 못한, H+이온과 O-이온이 아닌, H+이온과 OH-이온이 전지의 극에 끌리는 것이었다.
3. H₂O 합의
물이 전기분해가 되어 수소와 산소의 부피가 2:1이 된다는 사실은 누구나 실험을 진행하기만 하면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어쩌라고? 그 시대엔 기체의 부피가 분자의 갯수와 상관관계가 있다는 사실은 밝혀진 바가 없었고, 심지어 '부피와 분자의 갯수는 완전히 비례한다'는 가설, "동일 부피-동일 개수(equal volumes-equal numbers: EVEN)", 즉 '이븐 가설'조차 뒷받침되는 증거가 없었다. 아무 증거도 없는 이븐 가설을 받아들이고 그로 인해 뒤따라 나오는 '물은 H₂O다'라는 주장을 처음으로 한 사람은 바로 아보가드로였지만, 그 당시의 화학엔 그의 모형 말고도 (장하석에 따르면) 네 개나 되는, 그만큼이나 정합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화학 모형이 있었다. 심지어 어떤 과학자는 이렇게 얘기하기도 했다. 산소와 수소의 결합 비율은 정해지지 않았다. HO도 물이고, H₂O도 물이고, HO₂도 물이고, H₂O₂도 물이고...물이란 이 모든 것의 혼합물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언제 물이 H₂O라는 정답에 이르게 되었는가? 장하석에 따르면, 아보가드로가 79세로 사망한지 얼마 되지 않은 1860년대에 화학자들은 "H₂O 합의"라는 것에 이르렀는데, 이제 드디어 인류는 물이 수소원자 두 개와 산소원자 하나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확실하게 인정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장하석은 여전히, 그 때의 합의가 모든 문제의 해결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그가 이 책에서 일관적으로 주장하는 바, 합의를 좀 더 뒤로 미루고 그 다섯 개의 각기 다른 모형을 '다원주의'적으로 연구해 본다면, 우리는 과학의 좀 더 다층적인 면모를 가질 수 있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물은 정말로 H₂O일까? 현대 과학에서 말하는 바, 확실히 물은 H₂O가 아니다. 물에 H₂O가 '포함되어 있을 뿐'이다. 물 안에는 해리되어 있는 H+이온과 OH-이온이 있으며, 이 분명한 사실 때문에 물은 여러 가지 형태가 섞인 혼합체다. 만약에 그 다원적인 경쟁 이론들 중 어떤 이론이 함께 발전했다면, 우리는 원자를 H나 O가 아닌, 기체가 안정적으로 날아다니는 입자 자체를 원자로 정했을 지도 모른다. 즉, '쪼개지지 않는 입자'로서의 원자란 H가 두 개 모인 것이다(H₂→H). 즉, 날아다니는 기체 입자 자체가 원자다. 이렇게 정의되는 과학 체계에 의하면 물은 H₂O가 아니라 HO½이다.
이 모든 논의가 대체 무엇인가? 우리가 왜 물이 HO½일 수도 있고, 연소란 무엇인가가 빠져나가는 현상이라고 설명하는 이론을 남겨 둬야 하는가? 장하석의 주장에 따르면, 그건 과학의 현상이고 정의이며, 과학이 나아가야 할 길이다.
첫 번째, 과학의 현상에 대해, 과학의 정의에 대해. 플로지스톤 이론과 칼로릭 이론이 경쟁하던 시절, 물의 전기분해의 '거리 문제'가 해결되지 않던 시절, 그리고 H₂O 합의에 이르기 직전까지의 다섯 가지 화학 모형이 존재하던 시절은 우리가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가? 만약 그 어설픈 이론들이 과학이 아니었다면, 그 시절의 화학자들은 '과학자'가 아니라는 말인가? 아니다. 그 시절도 과학이었고, 그들도 당연히 과학이다. 내가 느끼는 바, 우리는 완벽하게 아름다운 물리학과 화학의 시대를 살고 있어서 잘 모르는 모양이지만, 생물학, 생리학, 심리학, 인지과학에서는 여전히 그와 비슷한 혼란스러운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만약에 최종적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 '가장 아름다운 이론'이 등장한 순간부터를 과학이라고 한다면, 그 이전에 뭔가 노력했던 학자들은 과학을 한 게 아니라는 소린가? 그렇지 않다. 그것이 과학이라는 행위의 현상이고, 그러한 활동까지 과학의 정의로 포함되어야 한다.
두 번째, 과학은 필히 그렇게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 장하석은 여전히 이런 상황에서 과학이란 이 모든 주장을 조기 기각하지 않고 되도록이면 오랫동안 살려두고 연구하자는 입장을 취한다. 그렇다. 이 책은 단지 화학의 역사에 이런 일이 있었어요 하고 소개하는 과학사 책이 아니다. 이 책은 과학이란 이런 것이며 과학은 이래야 한다고 주장하는 과학철학 책이다. 물이 "HO도 들었고, H₂O도 들었고, HO₂도 들었고, H₂O₂도 들은" 혼합체라는 얼토당토 않은 주장을 왜 우리는 살려 놔야 하는가? 장하석에 따르면, 모든 이론이 좀 더 오래 살아남아 있을 때 과학은 더 빠르고 발전적일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과학 연구 시스템, 즉 대학교 연구소, 논문 저널 시스템, 연구 평가 등등을 이렇게 '다원주의'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 장하석의 주장에 대해 반대를 표하고 싶은 과학계 종사자가 많을 것이며 (그 많은 예산을 낭비해가면서 굳이 그래야 하는가?) 이 주장을 수용함으로서 일어날 온갖 잡다한 비과학적 이론가들의 부상을 예상하는(창조론, 한의학, 백신 반대운동까지 다원주의적으로 인정하라는 말이야?) 평범한 회의주의자도 많을 것이다.
나는 여기에 어떤 찬성이나 반대를 표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이 책에서 감탄한 점은 과학의 역사와 과학의 의미에 대해 이 정도로 자세하고 일목요연하게 바라본 과학철학자 장하석의 안목과 업적 뿐이며, 그것만 즐기는 데에 내 온 정신을 쏟는 것도 바쁘다. 그런 점에 있어서 나는 다원주의의 찬반 여부와 관계 없이 토마스 쿤이나 칼 포퍼를 넘어서, 과학이 무엇인지를 좀 더 깊게 탐구해 보고 싶은 독서가에게 이 책을 추천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