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어지러울수록 시는 단정해야 하고, 시대가 차가울수록 시는 따뜻한 위치에 서 있어야 한다고 한다.
문학이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믿었던 시절에도, 농촌의 길가에 자라는 수많은 들풀들의 이름을 배우며 그것들에 자잘한 의미를 부여하는 시절에도, 안도현의 모든 시는 그의 삶과 뜨겁게 몸비비는 자리에서 나왔다. 그래서 그의 시는 안정적이고 따뜻하다.
안도현은 타고난 서정시인이다. 386세대인 안도현은 우리 시의 영토를 확장하고, 옹색해진 시적 상상력을 확대시키는데 기여한다. 또한, 그의 시에 나타나는 일관된 삶의 온기와 그것을 떠받치고 있는 탄탄한 언어의 탄력성은 그가 아주 장인정신이 투철한 시인임을 보여준다.
나 서른다섯 될 때까지
애기 똥풀 모르고 살았지요
해마다 어김없이 봄날 돌아올 때마다
그들은 내 얼굴 쳐다보았을 텐데요
코딱지 같은 어여쁜 꽃
다닥다닥 달고 있는 애기똥풀
얼마나 서운했을까요
애기똥풀도 모르는 것이 저기 걸어간다고
저런 것들이 인간의 마을에서 시를 쓴다고
- 「애기똥풀」 전문, 『그리운 여우』
안도현의 시를 읽으며 드는 생각은 참 기발하다는 것이다.
"허 참...어쩌면 이렇게"식의 감탄을 하게 된다.
마치 어린아이가 한껏 뛰어 놀면서 밝은 표정을 짓고 있는 듯한 모습, 그의 시를 읽어 나가다 보면 어느덧 빙그레 웃는 자신을 발견하지만, 돌이켜 자신의 삶을 반추하면 내가 그 동안 얼마나 세속적인 삶을 살았는가에 대해 다시금 반성하게 만드는 묘한 마력을 지녔다. 시인은 아주 작은 것에 각별한 통찰력을 지니고 있어야 하고, 말을 잘 다룰 줄 아는 사람이라야 한다면 그는 이런 면에서 무척 뛰어난 시인이라 할 수 있다.
안도현의 시에는 또한 은은한 정겨움과 짓궂은 유머가 어우러져 있으며, 해맑은 언어와 전라도의 진한 사투리가 무리없이 공존한다. 세상을 따뜻한 가슴으로 껴안는 시인의 사랑은 잊혀져 가는 작은 들풀 하나 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며 그것들을 따스한 손길로 어루만진다.
아, 고 잡것들이 말이여, 불도 한 점 없는 거 뭣이냐 깜깜한 묏똥가에서 둘이서 불이 붙어가지고는 누가 왔는지, 누가 지나가는지, 누가 쳐다보는지도 모르고 말이여, 여치는 싸랑싸랑 울어댔쌓는디 내가 어떻게 놀라부렀는가 첨에는 참말로 산 귀신들이 아닌가 싶어 대가리 털이 바싹 서두만 가만히 본께 두 년놈들이 깨를 홀라당 벗고는 메뚜기 같이 착싹 붙어가지고는 일을 벌이는디, 하이고매...
-「뜨거운 밤」중에서, 『바닷가 우체국』
그 많고 환한 꽃이
그냥 피는 게 아닐 거야
너를 만나러 가는 밤에도 가지마다
알전구를 수천, 수만 개 매어다는 걸 봐
생각나지, 하루종일 벌떼들이 윙윙거리던 거,
마을에 전기가 처음 들어오던 날도
전깃줄은 그렇게 울었지
그래,
살구나무 어디인가에는 틀림없이
살구꽃에다 불을 밝히는 발전소가 있을 거야
-「살구나무 발전소」중에서, 『아무것도 아닌것에 대하여』
안도현의 시 속에서는 모든 것들이 기뻐하고, 슬퍼하고, 아파하고, 기다리며, 울고, 말한다. 한마디로 모두 사람과 같다는 것이다. 자연물이든, 무생물이든 모두 느끼고 감정을 토로한다. 모두 주체적이며 사람과 동등한 입장이다. 때로 시인은 그들 무리 안으로 들어가고, 그들은 시인에게 말을 건넨다.
왜 안도현은 유독 의인법의 방식을 편식하는 것일까. 그는 그들의 순수, 혹은 거칠 것 없음을 도용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마치 동시에서 어린이의 시선을 화자로 끌어와 대상에 대한 진정성을 확보하는 것과 같다. 그들은 사람보다 눈치볼 일들이 적어 느끼는 대로 말할 수 있는 순수함이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느끼고는 있어도 차마 여러 이유로 말 못하는 인간사를 대신 얘기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냥 사람이 건네는 말보다 더 참신하게 다가와 진한 여운을 남긴다. 시인에게 사물과 사람들의 삶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들을 통해 시인은 사람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안도현의 시는 무척이나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으며, 고르고 품격이 느껴진다. 소월시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에서 보여지는 문학적 탄탄함과 개인의 깨달음을 넘어서 대승적인 깨달음에 다다른 시들을 보면 이러한 비판들이 기우라는 생각도 든다. 짧으면 짧은 대로 길면 긴 대로 시의 맛을 남겨놓을 줄 알고 때로는 깊은 이야기도 슬쩍 아무렇지도 않은 듯 둘러칠 줄 아는 시인은 이제 시에 관한한 대가라고 불리워도 손색이 없을 듯 싶다. 다만 그의 시가 시로서 지녀야 할 시적 긴장을 잃고 자신이 취할 시적 태도로부터 멀어지고 있지 않은가 하는 점은 분명히 짚어 넘어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