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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작가 윤부장 Nov 20. 2021

(슬봉생) Ep 9. 엄마의 '보물상자'

슬기로운 봉양생활


유튜브 ‘치매를 부탁해’라는 방송에는 똑똑한 치매관리 5가지 원칙이 나온다.

 

1.   치매환자에게 내 감정을 이입하지 마라

2.   내 생각대로 치매환자를 해석하면 안 된다

3.   치매환자의 말과 행동은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다

4.   치매환자에게 ‘보물상자’를 만들어 드려라

5.   옷장을 최대한 간단하게 만들어 드려라

 



얼마 전, 엄마가 지갑을 잃어버렸다고 온 집안을 찾아다니는 통에 한바탕 큰 소란이 있었다. 생신 때 드린 용돈을 모아놓으신 빨간 지갑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결국 옷장 안에 있는 겨울 코트 안 주머니에서 찾기는 했지만, 그곳에 지갑을 넣어둔 사람이 누구인지는 끝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치매환자들은 소중한 물건이라는 생각이 들면, 자꾸 물건을 감추게 된다고 하는데, 중요하게 생각되는 물건을 모두 ‘보물상자’에 넣게 하면, 나중에 쉽게 찾을 수 있게 된다고 한다.  큰 누나는 예전에 엄마, 아빠 두 분이 가방가게를 하시던 시절에 쓰셨던 것과 유사한, 작은 휴대용 금고를 엄마에게 선물했다.


그런데, 아빠의 반응이 시큰둥하다.

유난스럽게 무슨 금고냐, 장난감 같다, 여기다 돈을 어떻게 보관하냐, 금고로서의 기능이 부족하다, 앞으로 엄마 비상금은 아빠가 관리할 거다 등등, 필요 없으니 당장 도로 가져가라는 반응이다.

 

휴대용 금고는 비상금을 넣어두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고 몇 번을 설명해도 계속 필요 없다고 하신다. 옆에서 한참을 지켜보시던 엄마는 왜 내 거를 갖고 당신이 이래라저래라 하냐며, 신경 끊으라고 하시면서 상황을 일단락시키셨다.

 

집안에만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시면서, 아빠의 잔소리가 점점 강도를 더한다. 어제 아침에는 누나가 엄마에게 아메리카노 커피를 드리자, 왜 당신이 드시는 믹스커피랑 똑같은 것을 주지 유난스럽게 아메리카노를 주냐고 하시더니, 누나가 마시던 아이스 아메리카노에까지 당신의 믹스커피를 나눠주어서 누나가 엄청 화를 내기도 했다고 한다. 본인의 취향과 선택이 다 옳고, 다른 건 다 틀리다고 하시는 통에 자꾸 불만과 갈등이 생긴다.


그런데, 아빠랑 우리가 싸우면 엄마가 우울해하신다. 아빠 얼마 못 사니까 미워하지 마 이러신다. 그리고, 그 다음 날 까맣게 잊으시고, 다 몰라라 하신다.


가끔은 금방 잊어버리셔서 다행일 때도 있다.

 

아빠에 대한 이런저런 불만을 쏟아놓는 우리에게 큰 누나는 어른답게 한마디로 오늘 상황을 정리했다.

 

"우리가 아빠를 이해 못 하는 거지.

적당히 마이동풍 하면서 내가 사다 놓은 드립 커피들 마셔.

스타벅스랑 맛이 비슷해."


(10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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