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퇴원하던 지난주 금요일에 PCR 검사 음성 판정을 받기는 했지만, 주말 내내 아내는 두통이, 나는 인후통 증상이 있었다. 자가 격리자는 최종접촉일로부터 9일 차에 PCR 재검사를 받으면 격리가 해제되지만, 증상이 있다고 보건소에 연락하면 PCR 검사를 받으러 가는 외출은 허락해 준다. 단, 대중교통은 안되고, 반드시 자차로 가거나 방역 택시를 불러서 가야 하는 조건이 있다.
*방역 택시는 내가 사는 지역에서는 대기시간 포함 선별 진료소까지 왕복 4만 원 고정비용을 받는다.
나와 아내는 월요일 오전에 같이 검사를 받았는데, 내 검사 결과가 먼저 나온 것이다. 통상 검사 결과는 확진자에게 먼저 일찍 오고, 음성인 사람에게는 9시가 넘어서 천천히 온다.
8시 반, 보건소에서 전화가 왔다. 담당 직원은 차분하고 친절하게 나의 확진 사실을 재차 확인해 주었고, 지금 증상이 어떤지, 어제 PCR 검사를 다시 받게 된 동기가 무엇인지를 물어왔다. 나는 월요일에 자가격리 담당 공무원에게 설명했던 것과 똑같은 설명을 반복해야 했다.
"지난 18일 서울삼*병원에서 확진자와 같은 병실에 묶게 되어 자가격리가 되었고, 퇴원할 때는 음성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주말 내내 인후통이 있어서, 월요일에 검사를 받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양성이 나왔네요"
보건소 직원은 오늘 전화가 여러 곳에서 많이 올 것이라고 하면서, 힘드시겠지만 전화를 잘 받아달라고 했다. 증상이 심하지 않으시니, 생활치료센터 이송과 자택치료를 선택할 수 있다고 하였는데, 나는 아내와 아이들의 감염이 추가로 우려되는 만큼 바로 생활치료센터의 이송을 원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아내가 아직 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는데, 결과가 궁금하다고 하자, 확진자 리스트에 아내의 이름은 없다고 확인해 주었다.
전화를 끊고, 나는 회사에 확진 소식을 바로 알렸다. 지난주 목요일부터 연차를 사용해서 쉬고 있던 상황이라 회사 동료는 물론이고 가족 외에는 나와 접촉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 회사에서는 만약을 대비해 내가 근무하는 부서에 방역을 실시하고 진단키트로 부서원들 모두를 검사했는데, 다행히 전부 음성이 나왔다고 한다.
11시. 역학조사를 담당한다고 자신을 소개한 보건소 직원에게 전화가 왔다. 병원에서의 확진자 접촉 사실을 다시 설명해 주고, 퇴원 이후에는 월요일에 PCR 검사를 받으러 간 것 외에 일체의 외출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담당자는 스토리를 충분히 이해했고, 케이스가 매우 심플하다며 추가적인 동선 조사나 카드내역 조사 등은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사실, 많은 확진자들이 역학조사 단계에서 자신과 접촉한 사람들이나 방문했던 가게 등에 피해가 가게 되어 많이 힘들어한다고 하는데, 다행히 나는 그 과정은 피할 수 있게 되었다.
생활치료센터로의 이송은 언제 되냐고 질문하자, 죄송하지만 자신은 역학조사만 담당하고, 이송은 담당하는 부서가 따로 있는데, 다른 부서의 업무는 잘 모른다고 했다. 아마 오후에는 전화가 갈 것이라고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공무원들은 정말 다른 부서의 일은 잘 모른다. 아니, 어쩌면 모르는 게 더 다행일 수도 있다.
아내는 내가 확진자가 되었기 때문에 자가 격리 기간이 더 늘어났다. 그리고 아이들도 오늘 부로 자가 격리자가 되고, 바로 PCR 검사를 받아야 한다. 운전에 자신이 없는 아내는 방역 택시를 불렀고, 점심을 먹자마자 선별 진료소로 아이들을 데리고 떠났다.
코로나 확진 소식을 들은 큰 누나는 미국에서 코로나에 걸렸던 시누이도 인후통으로 고생했는데, 생강차를 계속 마시면서 코로나를 극복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생강차와 정관장, 비타민을 사서 문 앞에 놓고 갔다. 분당에서 일부러 오기는 먼 거리인데, 마침 고속터미널에 약속이 있어 나왔다며, 우리 집으로 한 걸음에 달려왔다. 생강차를 마시니 목이 조금 편해지는 기분이 든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내가 후각과 미각을 상실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큰 누나가 문 앞에 놓고 간 생강차, 홍삼, 비타민
아내와 아이들이 검사를 받으러 나가고 텅 빈 집.
좀처럼 내가 확진자가 되었다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 왜 내가 확진이 되었을까? 백신을 2차까지 모두 접종했고, 건강에는 자신이 있었는데, 왜 돌파가 되었을까? 와이프가 수술을 받으러 떠난 아침, 쉬지도 않고 통화를 하던 할머니의 간병인이 전파를 한 건 아닐까? 수다장이 간병인이 다녀간 화장실에서 내가 양치질을 했던 건 아닐까?
인후통이 점점 심해지는 것을 느끼며, 다른 증상이 더 생길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찾아온다. 무증상으로 생활치료센터에 입소했다가 증상이 악화되어 병원으로 후송되었다는 사람들의 후기도 보인다. 완치 뒤에도 '확진자'라는 주홍글씨를 달고 어떻게 사람들을 만나야 할지, 부모님에게는 이 소식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많은 생각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오후 내내 기다렸지만, 보건소 이송팀에서는 연락이 없다. 저녁 6시가 다 되어서야 겨우 연락이 된 구청 자가격리 담당공무원은, 지금 시간까지 연락이 없었다면 오늘은 이송이 안 되는 것이며, 내일 자신이 보건소에 다시 알아봐 주겠다고 했다.
TV에서는 위중증 환자 수가 연일 최다 기록을 넘어서고, 신규 사망자도 하루 사망자 기준 역대 최다라는 소식과 함께 생활치료센터도 입소를 대기하는 사람이 많다는 뉴스가 나온다.
내일도 생활치료센터 입소가 가능할지 모르는 상황이라 일단 화장실이 붙어 있는 안방에 내 짐을 모두 옮겨놓고 가족들과의 격리에 들어갔다. 밥도 아내가 방으로 별도로 차려서 가져다주었으며, 항상 마스크를 쓰고, 쓰레기와 옷가지들도 모두 별도로 분리해서 방 한편에 모아 두었다.
수술 후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온갖 집안 일에 아이들 숙제 챙기는 것까지, 내가 안방을 차지하게 되어, 잠도 거실에서 따로 자야하는 아내에게 자꾸 미안한 마음이 든다. 빨리 생활치료센터로 들어가야 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