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확진자 생활
"드디어 보건소에 연락 왔어. 오늘 4시 반까지 집 앞으로 앰뷸런스가 온대"
"나랑 애들은 너무 걱정하지 말고, 가서 푹 쉬고 잘 치료받고 와. 모두 음성나올 꺼야"
"내가 떠나고 나면 집 안까지 방역을 해 준다고 하네. 이제 거실에서 자지 말고 안방에서 편히 자"
"그래. 다 낫고 건강하게 만나자"
최근 늘어난 확진자의 영향으로 나는 확진 후 3일 차가 되어서야 생활치료센터로 이송이 되었다.
생활치료센터는 각 지자체마다 여러 가지 다양한 형태로 운영되는데, 내가 이송이 된 곳은 요양병원 입원실을 생활치료센터로 개보수한 곳이었다.
4인실 문을 열자마다 어둠침침한 조명과 병원 침대, 그리고, 파티션으로 분리해 놓은 개인 공간이 낯설게 느껴진다. 다행히 도산대로가 내려다보이는 창가 쪽 위치가 내 자리다. 신발 크기로 나에게 배정된 공간의 평수를 대략 재어보니 2.7평 정도가 계산된다. (4.3m X 2.1m)
앉아서 일을 하거나 글을 쓸 수 있는 동그란 책상과 의자도 하나씩 있고, 냉장고, TV, 옷장, 스탠드도 있어서 일주일 정도 지내기에는 큰 부족함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진의 계기가 되었던 서울삼*병원의 6인실보다 훨씬 여유롭고, 파리나 이태리의 후진 호텔보다는 오히려 호사스럽게 느껴졌다.
식사는 9시, 12시, 6시. 정해진 시간에 병실 앞에 도시락이 배달되는데, 낮에는 후식으로 아메리카노나 아이스 아메리카노, 계피차 등이 나오기도 한다.
후각과 미각이 상실된 상태를 글로 표현하는 건 대단히 어렵다. 음식을 아무리 씹어도 맛이 느껴지지 않기에 도시락의 퀄리티나 맛에 대한 평을 내리는 것도 불가능하다. 어제 저녁에 나온 식사 중에 빨갛게 고춧가루로 양념이 된 음식이 닭고기인지, 돼지고기인지 맛으로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는데, 마지막에 남아있던 닭껍질로 추정되는 부위를 발견, 그것이 닭볶음탕이었음을 알게 될 정도다.
케바케이긴 하지만, 완치 후에도 몇 개월째 미각과 후각이 100%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글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센터에서의 생활은 100% 비대면으로 이루어진다.
아침/저녁 하루 2회, 체온, 심박수, 혈압 등 건강정보를 스스로 측정해서 모바일앱에 등록하고,
간호사실에서 처방전을 내리기 위해 걸려오는 전화에 응답을 하고 나면 여기서 나를 찾는 사람은 없다.
같은 병실에 있는 환자들끼리도 일체의 대화가 없을뿐더러, 병실 안에서는 전화통화를 하는 사람도 없어 항상 조용하다. 나도 가급적 통화는 자제하고 있는데, 회사나 집에서 오는 급한 전화는 나가서 복도나 엘리베이터 앞 로비에서 받는다.
측정한 정보는 위중증 환자 여부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근거가 되는데, 내 수치는 다행히 모두 경증에 속한다. 종종 생활치료센터에서 병원으로 후송되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상태가 위중해 지면 병원에 상주하는 의사가 바로 추가진료를 한다고 한다.
센터 입소 후 일과 시간 중에는 원격으로 회사 업무를 하고 있는데, 사업부장님은 센터에 있는 동안에는 푹 쉬라고 하셨지만, 일을 하게 되면 시간도 잘 가고, 울화가 치밀어 오를 여유가 생기지 않아 좋다. 다만, 부서원들이나 병실 내 다른 환자들이 좀 불편할 수도 있어 대화를 해야 하는 온라인 미팅은 참석을 하지 않고, 메일이나 메신저 등으로만 일을 하고 있다.
지금도 가끔씩 답답함을 느끼기는 하지만, 처음 확진 판정을 받고, 생활치료센터 배정이 되기 전, 먹먹하게 집 안방에서 혼자 있을 때는 육체적인 고통보다는 우울감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
센터에 온 이후로는 낮에는 바쁘게 업무도 챙기고, 저녁에는 글도 쓰고, 지인들이나 가족들과 카톡으로 대화를 하면서, 우울감도 많이 사라지고 일상 복귀에 대한 자신감도 조금씩 생긴다. 입소할 때 가지고 들어온 2권의 책도 금요일까지는 모두 다 읽고, 주말에는 회사 전자도서관에서 2권을 더 대여해서 읽을 생각이다.
( 4편 - "Ct값이 뭐냐구요"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