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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작가 윤부장 Jan 18. 2022

(書評)게흘레꾼 - 김소진

열린 사회와 그 적들

부자지간에 처음으로 함께한 술자리였구나.  얼큰하게 취해 못난 애비를 만나 그간 평탄치 못하게 살아온 네 삶을 넋두리하며 절망하던 네게 애비는 아무 할 말이 없었다. 아마도 처음인 것 같구나. 이렇게 잠든 네 머리맡에서 머리칼을 쓰다듬는 일은.


나를 이해해 달라는 변명도, 이건 이래 서고 그건 그래서였다는 식의 강제적 설득을 위해서 이 글을 쓰는 건 아니다. 단지 못난 애비가 어떻게 살았는지 아들에게 알려주고 싶고, 애비 삶의 어긋난 점을 빗대서 내 아들 녀석이 훌륭하게 자랐으면 하는 마음을 말로 다 할 수 없어 가슴속에 쌓아 두었던 말들을 이렇게 종이 위에 적어 놓는다.


'아버지'


이 세 글자가 내 이름 대신 불리게 되면서 내 딴엔 부모와 아내, 자식에 대한 도리, 가장으로서의 역할 등 세상의 그 어느 아버지나 다 느끼는 책임감이란 게 있었다. 사실 그 책임감이란 건 생각을 안 하려 해도 자연스레 드는 것인데 평생을 자식인 네 앞에서 한심스레 살아온 나로서는 그 '아버지'라는 세 글자가 부끄럽기만 하구나.


이 아버지 세대는 알다시피 산다는 것이 그리 녹녹지 않았다. 이 애비같은, 지극히 평범하기 짝이 없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배움도 짧고, 가진 것도 없었다. 고작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험한 시대를 탓하며 소주 한잔에 온몸의 고뇌와 한숨을 눌러 담아 목구멍으로 넘기는 일이었고, 내게 삶에 대한 의지나 희망은 아무리 찾으려 해도 찾을 후 없는 마치 식도를 타고 뱃속 어딘가에 꽁꽁 숨어버린 소주와 같았다. 그러다 보니 자꾸만 흘러들어 가는 알싸한 소주 맛에 몽롱한 기분이 들 때면 괜히 큰 소리 뻥뻥 치고, 온 가족 먹여 살리느라 시름하는 마누라에게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해가며 가장으로의 권위를 지키려고 나름대로 폼도 재곤 했다.


하지만 아들아.


이제는 네 녀석도 다 자라서 곧 아버지가 될 나이가 되었으니, 이 애비가 살아온 삶을 거울삼아 네 녀석만큼은 떳떳한 애비로 자리매김하기를 바란다. 이 애비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변한 건 없지만 예전과 같은 시련도, 지난날에 대한 후회도, 끙끙 앓던 이 같던 이 고난도 더 이상 나를 어쩌지는 못하는 것 같구나. 이 애비는 단지 지금 이대로가 참 편하고 좋다. 이 글을 읽으면서 이 애비에 대한 혹시 있을 기대나 동정이 생겼다면 냉큼 집어삼키거라. 내 생각엔 더 이상 이 애비가 너에게 부끄러운 대상이 아니라 생각된다. 그것이 부모와 자식 간의 인정이든 한 불쌍한 인간에 대한 포기든 간에 말이다.


네 녀석에게 크게 희망적이지 못한 못난 애비에게도 하나의 욕심이 있다. 앞으로 살아갈 네 녀석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고 싶은 조심스러운 바람이다. 그것이 이 애비의 '사치'라고 생각해도 좋다만 공수래공수거라 하지 않던. 한 번뿐인 인생 이 애비의 말년에 '사치'라는 이름의 카네이션 한 송이, 이승에 온 기념으로 가져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구나.


주절주절 말이 많았다. 잘 자거라.


- 애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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