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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작가 윤부장 Jan 25. 2022

(슬봉생) Ep 13. 엄마를 부탁해

슬기로운 봉양생활

"출근했니? 엄마가 할 말이 있대. 바꿔줄게"

"갈치가 아주 맛있어. 살도 많고 아주 실하네."

"제주에서 제일 크고, 좋은 거로 보냈어요. 맛있게 드세요"

"잘 내려갔니? 애들이 아빠 보고 싶어서 어쩌니?"

"괜찮아요. 매일 통화하고 있어요."

"잘 지내라. 애들 보고 싶을 텐데 걱정이구나"


전화를 끊고 나서 한참 후, 머리를 크게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이 왔다.


엄마는 내가 보고 싶으신 거구나. 내가 엄마를 보고 싶어 할까 봐 걱정이 되시는 거구나.


어릴 적 잠이 오지 않을 때마다 엄마의 겨드랑이 밑으로 들어가 귀지를 파 달라고 졸라대던, 흐트러진 머리칼을 천천히 쓰다듬어 달라고 조르다 스스륵 엄마 품에서 잠이 들던 막내아들이 이제  자주 찾아오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운 것이나.




지난 주말, 책장 한 켠에 꽂혀 있던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눈에 들어왔다.


10년도 훨씬 지난 책이고, 줄거리도 가물가물한데, 첫 장을 넘기자마자 다시 가슴이 탁 막힌다.  


잠시 심호흡을 가다듬고 이내 다시 책을 읽어 내려간다.


도대체 엄마를 왜 잃어버렸단 말인가. 엄마는 살아있기는 한 것일까?


'너'라는 시점으로 시작되는 1장. 기존의 1인칭/3인칭 시점에 익숙한 우리는 다소 낯설게 시작되는 서술방식에 난감하기도 하지만 작가의 단단한 storytelling 이끌려 이내 딸이 되고, 아들이 되어 버린다.


아들은 집에서 곤히 잠들어 있는 아내에게 도대체 왜 엄마를 마중 나가지 않았냐고, 지금 잠이 오냐고, 화를 내기 시작한다. 아내는 애들은 어떻게 하냐고, 당신은 뭐했냐고 한치도 물러서지 않는다. 밖에서 듣고 있는 아버지는 다음날 시골집으로 내려가겠다고 하신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아들은 도대체 왜 그때 서울역에 안 갔을까?


작품 속 엄마는 우리네 전형적인 어머니상 여러 가지로 조합된 인물인데, 독자로 하여금 다소 불편함을 준다.


사실 이 불편함은 우리 엄마와 비교할 때 느껴지는 상대적인 불편함이기도 하고, 자신의 이름조차 잃어버린 채 살아야 했던 바보 같은 엄마에 대한 반감이기도 하다.


이런 엄마가 정말 있기는 한 걸까?


작가 신경숙은 엄마가 아직 내 곁에 있다는 것, 엄마 곁에 누워서 아침이 오기를 기다리며 엄마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행운을 내가 누리고 있다는 행복감이 이 소설을 계속 쓰게 했다고 한다.


지난 새벽, 간 밤에 누나가 온다고 했는데 아직 안 왔다며, 혼자 현관문 밖에서 한없이 서 계시던 엄마를,

자다가 깜짝 놀라 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왔다는 아빠의 통화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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