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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작가 윤부장 May 17. 2022

(슬봉생) Ep 15. 묘자리 답사


"죽으면 그냥 화장해서 산이나 강에 뿌려. 할아버지, 아버지 묘자리까지 내가 다 파서 화장으로 모셨는데, 내가 어떻게 묘자리에 들어가냐?"

"제가 할아버지들한테 다 말씀드릴게요. 저는 두 분 화장으로 못 모셔요"

"나는 납골당은 싫다. 답답할 것 같아. 그냥 나무에다가 뿌려줘."

"당신은 뜨거운 불구덩이에 들어가는 게 겁나는 거지?"

"죽으면 그만인데, 그건 하나도 겁 안 나"

"남한강 근처에 묘자리 준비했어요. 자리도 좋고, 두 분 쉬시기는 아주 좋은 곳이에요"

"부창상회도 이번에 거기로 갔다지? 재구도 거기 있고"

"네. 아빠 친구분들도 여럿 계시고, 고향에서 가깝고, 적적하지 않으실 거예요."

"좀 멀지 않니? 니들 사는 곳에서 가까워야 좋은데. 입구가 좁아서 명절에는 차도 많이 막힐 텐데."

"......"




주말 아침부터 단톡방이 바쁘다. 아빠가 4호에게 민원을 넣기 시작하신 거다.


"너 오늘 노니까 남한강 묘자리 보러가자."

"묘자리는 아들하고 가셔요. 난 위치도 모르고, 운전도 서툴러서 자신 없어요"

"묘자리가 진짜 있기는 있는 거냐? 큰 애도 안 간다 하고, 너도 안 간다 하고, 도대체 왜 안 보여주는 거야? 제주에 있는 놈이 언제 올 지 알고 기다려? 그놈도 맨날 나중에 나중에 가자고 하고"


아빠 성화를 감당할 수 없어 급 탈출 중이니, 아빠가 친애하시는 3호가 출동해서 분위기 대전환을 해 달라는 4호의 긴급한 톡이 이어진다.


몇 주 전 아빠는 나에게 묘자리를 보러 가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다. 큰 애에게 묘자리 보여 달라고 같이 가자고 했더니 너랑 가라고 했다며, 네가 서울에 올라올 때 하루 시간을 낼 수 없냐고 하셨다.


사실 하루 시간을 내는 것보다 아빠와 함께 공원묘지를 갈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혹시라도 묘자리가 맘에 드시지 않는다고 하시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먼저 앞섰기 때문이다.


이런 핑계 저런 핑계로 나중에 모시고 가겠다며 몇 번을 둘러댔는데, 오늘 아침 드디어 4호에게 역정을 내신 것이다.


결국 전화를 드렸다.


"내일 아침에 제가 남한강으로 모시고 갈게요. 차 막혀서 아침에 일찍 가야 하니 아침 일찍 드세요.

 7시까지 갈게요"




"경치가 좋구나. 저 아래까지 다 내려다 보이고"

"볕도 잘 드네. 산소에 떼도 잘 살 것 같고"

"여보. 여기 누워 봐요. 아주 편안하네."

"편안해? 나도 누워 볼 까"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나요? 우리도 여기로 올 건데, 나중에 또 인사 나눠요"

"엄마. 옆에 계신 분이 뭐래? 나중에 반갑게 보재?"

"귀신이 뭔 말을 하겠냐."

"......"


아빠는 몸을 일으켜 앉아, 한참 동안 아무 말없이 아래를 내려다보신다.

무슨 생각을 저리 하시는 걸까.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 거리가 조금 멀지 않냐는 엄마의 걱정이 시작된다.


당신이나 나나 이제 죽어서나 오는 거지 여기 또 올 일은 없다는 아빠의 핀잔에 엄마는 당신 먼저 가면 당신 보고 싶어도 멀어서 자주 못 까 봐 그런다고 하신다.


"아빠 먼저 가시고 엄마가 아빠 보고 싶어지면 언제든 얘기해.

 내가 1시간 걸리던 2시간 걸리던 모시고 갈게.

 가겠다고 마음만 있으면 아무리 멀어도 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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