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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작가 윤부장 Mar 31. 2022

(슬봉생)Ep 14. 엄마와의 기억

"엄마. 엄마는 나 키울 때 언제 제일 힘들었어?"

"힘든 거 없었어. 너는 어릴 때 순했어."

"그래도 뭐 힘들었던 기억 없어?"

"낳을 때 조금 힘들었지, 머리가 커서 그랬는지, 혼자 너를 낳고 까무러쳤어"

"ㅎㅎ 나 머리 별로 안 큰데. 그런 거 말고, 고등학교 때 수원에서 누나랑 자취할 때,

엄마 혼자 버스 타고 반찬통 잔뜩 싸들고 자주 왔었잖아. 그때 힘들었어?"

"그런 건 하나도 안 힘들었어. (잠시 침묵)

난 네가 어릴 때도 떼쓰고 울면 벗겨 놓고 엄청 팼어"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왜 때렸어?"

"말 안 들으면 때리지. 네가 하수도에 돈을 홱 버리던 날에도 보일러실에서 엄청 팼는데........."




엄마가 기억하는 그날은 나도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물론 앞뒤 줄거리는 엄마가 기억하는 내용과는 많이 다르다.

초등학교 4학년 여름이었다. 아빠는 방학 때 집에서 놀지만 말고 합기도를 배우라고 하셨고, 그 길로 바로 도장에 나를 끌고 가셔서 등록을 마치셨다.


합기도 수련은 처음부터 나에게 맞지 않았다. 생김새부터 험상궂게 생긴 합기도 사범은 어린 초등학생들에게 수시로 팔 굽혀 펴기, 쪼그려 뛰기 등 단체기합을 내리기 일쑤였는데, 1시간의 수련 시간은 정말 지옥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게다가 주말에는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모든 수련생들이 동네 저수지에 모여, 구보는 물론이고 오리걸음으로 계단을 오르는 훈련을 해야 했다. 처음에는 그래도 일단 한 달은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2주쯤 지났을 까, 더 이상 합기도장을 다니기가 싫어졌다. 그렇다고 아빠한테 합기도장을 그만두겠다고 감히 말할 자신도 없었던 나는, 합기도장을 가야 하는 시간에 동네 오락실에서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오곤 했다.


엄마가 기억하는 그날이었다.

오락실에서 평소와 다름없이 게임에 집중하던 나는, 내 이름을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에 싸함을 느끼며 뒤를 돌아봤다. 아빠였다. 내가 수련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합기도장에 찾아가셨다가, 며칠 내가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셨고, 그 길로 나를 찾아 동네 놀이터와 오락실을 모두 찾아다니셨다고 한다.


아빠의 손에 끌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주머니에 있던 100원짜리와 50원짜리 동전을 모두 하수도에 버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랬는지 이해가 가지만, 마치 도박장에 경찰이 단속을 나왔을 때, 사람들이 서둘러 돈을 감추는 것과 비슷한 심리였을까?


아빠에게 회초리로 몇 대를 맞았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마당에 있던 싸리빗자루에서 뽑아 만든 회초리가 몇 대 인지도 모르게 부러져 나갔을 때, 흥분한 아빠를 말리던 엄마는 나를 데리고 반지하 보일러실로 들어갔다.


엄마의 기억과 달리 그날 엄마는 나를 때리지 않았다. 엄마의 오래된 훈육 레퍼토리 중 하나인데, 엄마는 나한테 같이 약을 먹고 죽자고 했다. 물론 난 울며불며 잘못했다고 하며 엄마가 먹으려는 약을 밖으로 집어던졌다. 그 약이 그냥 청심환이었다는 건 그때는 몰랐다. 그렇게 한참을 나는 엄마와 함께 울었고, 엄마는 내 종아리에 안티푸라민을 발라주셨다.


근데 엄마는 왜 엄마가 나를 엄청 때린 걸로 기억하시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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