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OO 이와 할머니의 오목 대결은 생각보다 빡빡했다. 제 1국과 제 2국은 서로 한 판씩 승패를 주고받았다. 이제 결승전 제 3국. 할머니의 실력에 조금 놀란 OO이도 조금씩 긴장하기 시작한다.가족 단톡방에 엄마와 OO이의 오목 대결을 올리자, 누나들도 엄마가 오목을 두시는 것이 가능하냐며 놀랍다는 반응이다.
요즘 OO이는 오목에 푹 빠져있는데, 중학생 형이나 엄마와 꾸준히 실전 경기를 한 터라 실력이 제법 많이 늘었다. 집에서 쉬는 시간에는 혼자 흑백 두 돌을 모두 사용해서 연습도 하곤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가끔 생각지도 못한 수를 만들어 내기도 하는데, 형과 엄마를 상대로도 꽤 높은 승률을 보이고 있다. 그런 OO이가 할머니를 상대로 지금 고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엄마가 오목을 두는 모습은 대단히 낯설다. 치매로 인해 기억을 조금씩 잃어가고 계신 엄마가 오목을 두는 광경이 조금 충격스럽기도 하다. 어린 시절에 내가 엄마랑 같이 오목을 두었던 적이 있던가? 누나들이나 아빠와 오목을 두었던 기억이 어슴푸레 나기는 하는데, 어떤 일인지 엄마와 오목을 두었던 기억은 좀처럼 떠오르지가 않는다.
어린 시절, 우리 집 거실 한 켠에는 항상 바둑판과 장기돌이 있었다. 놀이가 별로 없던 시절인지라 아빠는 옆집 아저씨나 작은 아버지나 집에 놀러 오시면 항상 장기나 바둑을 두셨다. 물론 어르신 3명 이상이 모인 날에는 화투를 치면서 술도 한 잔씩 하셨는데, 옆에 앉아서 화투치는 것을 구경하다 보면 중간중간 돈을 따신 분들이 소위 "뽀찌"라 부르던 용돈을 주시기도 하고, 술심부름이나 간식 심부름을 시키시면서 잔돈은 용돈하라고 주시기도 했다.
아빠는 동네에서는 소문난 고수로 통했는데, 어깨너머로 아빠에게 장기와 바둑을 배운 나는 또래 친구들 중에는 적수를 찾을 수가 없었고, 나보다 세 살 많은 옆집 석재사 아저씨 아들, 승식이 형이 유일한 맞수였다. 일요일 아침이면 밥도 안 먹고 승식이 형네 집에 가서 저녁 늦게까지 함께 장기를 두곤 했던 기억이 난다.
공격과 방어가 오고 가기를 몇 차례. 오목 제3국의 최종 승리는 OO이. 가족 모두가 행복한 순간이다.
아마 할머니가 이겼다면 아마 4국, 5국, 계속해서 OO이가 이길 때까지 오목을 두어야 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