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가 멸망할 때
폼페이가 멸망할 때라고 합니다.
유적지를 조사해 보니 사람들이 달아나면서 서로 뒤엉켜 도시 전체가 한 마디로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병사 하나는 초소를 꼿꼿이 서서 지키다가 죽었다고 합니다. 죽을 걸 뻔히 알면서도 말입니다. 그 사람을 가리켜 누군가가 "의연한 패배주의"라고 했다고 합니다.
시대의 한 가운데서, 패배의 시대라도 의연할 수 있을 것만 같던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젠 눈치 보는데만 익숙해 집니다.
뭔가 잘못되지 않을까, 이러다 정말 큰 일이 나는 게 아닐까, 이 정도면 할 만큼 한 게 아닐까.
자본주의와 미국이라는 21세기 최대의 지배자는 인간의 전인성을 산산히 쪼개어 놓았고, 한 독립국가의 운명을 좌지우지 하며, 세계를 단지 미국을 위해 존재하는 도구로 만들어 놓고야 말았지만, 이제 우리에게 더 이상 "의연한 패배주의"란 없습니다.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끝났다해도, 인간의 시대는 절대로 끝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