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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재 Feb 21. 2022

밥은 펜보다 강하다

뜨거운 순간

‘펜은 총보다 강하지만 밥은 펜보다 강하다.’     


흘러간 JTBC 드라마 ‘허쉬’에 등장하는 말이다. 드라마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밥 이야기를 하고 싶다. 밥이란 정말 이토록 집요하고 무시무시한 것인가?     


‘끼니는 시간과도 같았다. 굶더라도, 다가오는 끼니는 피할 수 없었다. 끼니는 파도처럼 정확하고 쉴 새 없이 밀어닥쳤다. 끼니를 건너뛰어 앞당길 수도 없었고 옆으로 밀쳐낼 수도 없었다. 끼니는 새로운 시간의 밀물로 달려드는 것이어서 사람이 거기에 개입할 수는 없었다. 끼니는 칼로 베어지지 않았고 총포로도 조준되지 않았다. 전투가 없어도 끼니는 돌아왔고 모든 끼니는 비상한 끼니였다. 겨울은 깊어갔다. 섣달부터는 보릿가루를 물에 타서 저녁을 먹었다.’ (김훈, 칼의 노래)     


그 시절 이순신이 직면했던 끼니는 절실했다. 정말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요. 눈앞의 적보다도 사나운 것이었다. 오늘 우리가 직면한 끼니 무엇이 다른가?      


다르다면 그때는 굶기를 밥 먹듯 하고 요즘은 밥 먹는 것을 굶듯이 한다는 것… 단순한 차이가 아니다. 실로 어마어마한 차이…     


먹고 살기 위해서 일했던 시대가 있었다. 지금도 그렇다고… 그렇지 않다. 지금은 먹고살기 위해서라기에는 지나치게 치열하고 지나치게 절실하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중학교에 다니고 고등학교, 대학교 다니면서 어두워지는 줄도 모르고 축구 한번 제대로 해본 적이 있는지…     


상대적 개념의 등장 때문이다. 남보다 잘 먹고 살아야 한다. 실상 먹으라고 하면 먹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인생은 밥이 다가 아니야!’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무리 고상하게 말해도 따지고 보면 다 밥과 비슷한 부류이다. 밥은 모든 것의 대명사니까…     


세상은 좋아졌다. 단군 이래 이처럼 평화롭고 풍요로운 시대가 있었던가… 단순히 먹고살기 위함이 아니다. 잘 먹고 살기 위함이다. 그럼 잘 먹고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정조는 제주에서 수라상에 오를 전복을 채취하던 해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수라상에 전복을 올리지 말 것을 명했다고 한다. 요즘 시장에 가면 전복 5~6마리에 만원이다. 2마리는 회로 먹고 3마리는 모눈종이처럼 칼집을 내어 버터구이하고 내장은 전복죽을 끓이면 그야말로 전복 성찬이 된다. 만원이면 임금의 수라상을 능가하는 것이다. 이것이 지금 우리 앞에 놓인 밥이다.     


이렇게 잘 먹고 사는 우리가 세상에서 제일 빈곤하고 불행하다. ‘상대적 결핍’ 때문이란다. 그게 뭐지… 유령처럼 보이지도 않는 소위, 그 상대라는 것 때문에 내가 불행해야 한다니…     


당당해질 필요가 있다. 나를 불행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나 자신뿐이다. 남이 나를 불행하게 한다는 건 용서할 수 없다. 그러므로 상대적 빈곤감을 떨쳐내야 하는 것도 오직 내 몫이다. 어릴 때부터 오직 1등을 향해서 노력해온 관성이 아직도 나를 저만치 밀어내는데 말 한마디로 아무렇지도 않게 이를 털어내라고 하니 난감한 일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허구한 날 위만 쳐다보고 한탄할 수는 없는 일… 하루에 1g씩만 들어내 보자. 그리고 나이 들면서 자식 키우게 되면 1등만 채근하지 말고 행복해지는 법을 차근차근 가르쳐주길… 세상에 아름다운 것, 볼만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세상은 생각보다 더디게 변한다.


‘눈물은 아래로 떨어져도 숟가락은 위로 올라가야 하니까’ 이 말도 함께 등장했다. 잘 먹지도 않으면서 먹는 것이 그렇게 절실한 것처럼 말하지 마… 


제발… 나는 엄살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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