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애정하는 연남동의 동네책방 '무슨 서점'은 8월부터 10월까지 2개월간 그린북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서울제로마켓사업의 지원으로 진행되는 이 프로젝트는 친환경적인 서점 조성을 목표로 하는데 그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그린북 나눔'이다.
매달 출판사로부터 파본을 받아서 무슨 서점에서 구입하는 책 한 권 당 한 권씩 파본을 증정한다.
10월은 1984BOOKS, 시간의흐름, 어떤책, 에이치비프레스 네 곳의 출판사가 함께했다.
어쩌다 보니 꾸준히 무슨 서점에서 책을 구입해서 파본도 이번달까지 총 4권을 받았는데 도저히 왜 파본인지 모를 만큼 멀쩡한 책들인데 간혹 인쇄부터 잘못되어 천덕꾸러기처럼 취급받는 책들이 파본이 되기도 한다.
이번의 파본들 중 하나는 표지가 거꾸로 제본되어 판매될 수 없는 책으로 출판사의 창고에 처박혀있다가 그린북나눔이라는 기회를 얻어 세상 밖으로 나들이를 나왔다. 그런데 그 책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첫날 바로 주인을 찾아갔다. 심지어 새 주인인 독자님은 기념이 될 것 같다고 즐거워하며 선택하셨다고 한다.
뿌교수로 유명한 세븐틴의 승관을 한라봉으로 캐릭터화한 인형은 원래 눈이 초롱초롱하다.
그런데 불량으로 안광 자수가 누락되어 초점을 잃은 조금은 무서운 인형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간혹 뿌교수님이 극대노 할 때 안광이 사라진 얼굴과 똑같아서 오히려 판매해 달라는 팬들의 요구에 '심연라봉'이라는 이름까지 생기게 되었다.
거꾸로 제본된 표지의 책과 심연라봉 모두 원래는 의도했던 대로 제품이 나오지 않아 판매자 입장에서는 처치곤란한 것들이었다. 그들에게 굳이 이름을 붙여보자면 실패작인 것이다.
하지만 책은 표지만 거꾸로 제본되었기 때문에 읽는 것에는 전혀 문제가 없고, 인형 또한 안광이 없을 뿐 여전히 뿌교수 인형이다.
즉 그들의 겉모습이 처음 생각대로 나오지 않았을 뿐 그 본질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것이다.
나도 언제나 처음 생각했던 대로 일이 풀리지 않으면 실패했다 혹은 망했다고 이야기한다.
처음 생각했던 그 궤도를 조금 벗어났다는 이유로 말이다.
하지만 그걸 귀하게 바라볼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 그건 실패작이 아닌 레어템이 되었다.
무엇이든 그것의 진정한 쓸모를 바라볼 줄 아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런 어긋남 속에서 본질의 가치를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