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민정 시인님 별마당 도서관 강연 소식을 접하고 갈까 말까의 고민이 아니라 몇 시에 출발하면 되지?를 생각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지는 전혀 상관없었다. 김민정 시인 그 이름 하나만으로 충분했다. 나에게 민정 시인님은 상대를 대하는 진심의 자세를 생각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새고서림에서 단 한번 민정 시인님의 강의를 들은 후 두 번째 만남에서 정확하게 나를 기억해 주셨다. 엄청나게 다양한 사람을 만나셨을 텐데 그저 수많은 독자들 중 한명일뿐인 나를. 그리고 민정 시인님의 이야기에는 사랑이 가득하다 그게 시인이든 종이든 책이든 사람이든 무엇이든지. 향해있는 모든 것이 아름답고 반짝인다. 그래서 그 이야기에 함께 하고 있는 시간이 행복하다. 좋아하는 것을 향해 재지 않고 온 마음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 나가는 마음은 사실 민정 시인님께 배운 태도다. 손웅정 감독님과 대화하며 집에 가서 빨리 정리정돈을 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나는 민정 시인님을 만날 때마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온 마음을 다해 상대를 대하고 사랑해야지라고 마음먹게 된다.
이날 이야기에서 가장 좋았던 것을 단 하나만 골라보자면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묵묵하게 나아가는 자세다. 지금은 이상한 것이 하나도 없는 문학동네시인선을 처음 론칭했을 때 많은 반대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걸 나의 모든 것을 걸고 묵묵하게 끌고 오는 단단한 고집. 특히 지금은 이상할 것 없는 긴 제목의 시집의 첫 시작이 박준 시인님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이었는데 항상 해오던 것에서 벗어나 정말 그 책에 맞는 이름을 지어준 것, 그리고 어법상 '며칠을 먹었다'가 맞지만, '며칠은'으로 끝까지 밀어붙인 것도.
강연이 끝나고 역시나 민정 시인님은 나를 알아보셨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취업준비로 고민이라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나 꽤 즐겁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쩐지 민정 시인님의 질문에는 마음이 울컥했다. 괜찮다고 스스로 자기 최면을 걸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그저 민정 시인님의 다정한 물음에 스르륵 녹아버린 걸까. 민정 시인님은 좋아하는 것을 꼭 쫓아가라고 해주셨다.
회사가 사라졌을 때만 해도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도전해 나가야지라고 마음먹었는데 계속 서류에서 광탈을 하다 보니 나의 도전이 사치처럼 느껴졌다. 해오던 대로 경력을 쫓으면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너무 돌아서 가고 있는 건 아닐까.
사실 앞에 이야기는 모두 구차한 변명이고 확고하게 무엇이라 정의 내릴 수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에게 확신을 줄 수 없어서 계속 흔들렸다. 그럴 때마다 신기하게 나를 다시 돌아보는 기회들이 생겼다. 컨티뉴어스가 그랬고, 자영님의 트레바리가 그랬으며. 민정 시인님의 이야기까지.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민정 시인님이 강연에서 던져주신 질문들 중 몇 가지에 나의 대답을 적어보았다.
1. 나는 무엇을 싫어하는가?
경쟁, 나 혼자 잘살겠다고 하는 이기적인 행동들, 여우짓, 영혼 없는 말들
2.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각자의 속도를 존중하고, 내가 가지고 태어난 재능을 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게 필요한 다양한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는 것, 온 마음을 다해 응원하기, 남들은 보지 못하는 것들을 바라보기 (특히 무척 사소한 것들), 과정, 최선을 다하는 마음, 돌아보기
내가 좋은 사람이어야 남을 빌어줄 수 있다는 그 말이 참 좋았다. 나는 공과 사가 구분하지 못한다. 적정한 거리를 두지 못하고 언제나 상대에게 전속력으로 달려가는 그런 사람. 그래서 그 끝엔 언제나 상처가 가득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떠올려보면 투명하고 진심으로 상대를 대하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그런 사람이라서 상대도 그런 사람이어야 안도가 되고, 편안함을 느꼈던 것이다. 혼자 현상을 보고 왜 그런 행동 또는 생각을 했는지 떠올려보는 시간이 좋다. 그리고 난 사람이 너무 좋다.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던 적도 있지만 (누군가에게 직접적으로 받았던 상처라기보다는 우리가 사는 세계가 달라져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되는 언젠가에 대한 두려움이 커서 그 위험을 줄이려면 마음에 들이는 사람의 줄이는 것뿐이라고 생각했었다.)
3. 나는 무엇에 미쳐있는가?
좋은 것들을 찾아내서 그걸 좋아할 만한 사람과 연결하는 것, 유형의 것에서 상대의 마음을 발견하고 그걸 다시 구체화하는 것(선물하기 그리고 편지 쓰기), 상대와 진심으로 대화하기. 생각해 보면 나도 그런 것들 덕분에 힘든 시간들을 잘 건너올 수 있었다. 괴로운 시간마다 다시 꺼내서 쓰다듬을 수 있는 다정한 무언가
시 큐레이션을 시작했다. 잘할 것 같다는 추천으로 응원을 받으며 시작되었는데 사실 처음 올린 글들은 사실 시작했다는 것이 의미가 큰 글이다. 항상 감각으로만 판단하고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문제점을 이야기하다가 추천받았던 방법이었는데 언제나 사용하는 언어들이 비슷하고, 생각이 흐르는 방향이 꽤 정해져 있어서 쓰는 게 많이 힘들었다. 내가 표현하고 싶은 마음은 거대한데 나오는 건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으니까. 그래도 마음먹은 건 부족하고 빈틈이 가득해도 꾸준히 나아가는 것. 잘하는 것보다 좋아하는 마음으로 성실히 나아가는 것. 비교하는 마음 없이. 이걸로 어떤 결과가 났으면 하는 게 아니라 진짜 사랑하는 마음 하나만으로 달려 나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