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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혜경 Aug 09. 2024

N년차 직장인의 퇴사일기

퇴사하면 뭐 하지?




퇴사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마지막 출근일까지 2주도 채 남지 않았다. 13일의 남은 연차를 소진하면 3년 5개월의 직장 생활의 마침표를 찍게 된다. 십 년 남짓한 시간을 직장인으로 살아오면서 네 번의 회사를 거쳤다. 6개월 인턴 생활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평범한 직장인으로의 삶이었다. '평범한'이 평탄하고 평화로운 직장 생활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적당히 미움받았고 적당히 사랑받은 시간이었다.


대체로 평탄했음은 그 적당함이 조율되어 회사에서의 일상을 버티게 해주는 무언가가 존재했기 때문이리라. 누군가는 이유 없이 나를 밀어내기도 했고, 누군가는 이유 없이 나를 동료로 아껴주었다. 사실 이유가 없다는 것은 진실이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 이유를 모르고 지나갔을 뿐. 그들이 나를 좋아하고 싫어함에 있어 무언가 공유되지 않은 이유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허나 나는 그들의 마음속에 들어갔다 나올 수 없었고 직장에서의 관계는 적당히 잘 매듭지어졌다.





퇴사를 앞둔 A사는 내게 조금은 특별한 근무 환경이었다. 주 3회 출근, 주 2회 재택근무로 자율 출근이 가능한 젊은 CEO가 이끄는 IT 회사였다. 전 직장에서 친하게 지냈던 개발자 G팀장님의 제안으로 입사하게 되었는데 근무 조건이 퍽 마음에 들었다. 꿈의 직장인 외국 대기업에서나 적용되는 줄 알았던 재택근무 시스템. 인생에서 처음 만난 재택근무는 다른 어느 조건보다 큰 복지처럼 다가왔다. 전 직장과 비교하면 천국과도 같은 근무 환경이었다.



전 직장에 대해 간단하게나마 썰을 풀자면,     

'라테는 말이야'로 시작해서 '내 딸 같아서 말하는 건데'로 끝나는 대화. 대화라고 말하기도 무색할 만큼 일방적인 잔소리를 쏟아내는 임원진과 함께하는 중소기업이었다. 꼰대 밑에 꼰대 있다고 그들을 견뎌낼 팀장들도 뉴 꼰대로 무럭무럭 자라나 팀원들을 괴롭게 만들었다. 스스로를 왕이라 생각하는 사장 아래 사장은 이사를, 이사는 부장을, 부장은 과장을, 과장은 대리를 착츱하는 시스템이었다. 라테 좋아하는 60대 대표가 운영하는 IT 회사를 상상해 보라. 재택은커녕 잠시의 자리비움도 허용되지 않는 삭막한 분위기, 화장실 다녀오는 것조차 눈치 봐야 하는 사무실 배치. 개비스콘이 필요하다.     


그런 회사에서 4년 반을 근무하다 재택이 가능한 동종 업계로 이직을 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만족도가 컸으랴. 게다가 대표 얼굴 보기는 하늘의 별 따기라 연봉 협상 시기를 제외하고는 마주칠 일조차 없어 대표 얼굴조차 모르고 일만 했다. 공용 오피스를 사용하니 자율성이 배가 되어 내 업무만 처리하면 누군가의 눈치를 볼 일도 없었다. 코로나 시기에는 감사하게도 풀 재택근무가 허락되었고 매일 강남까지 출퇴근하는 수고로움도 덜었다. 회사 출근하는 날은 점심시간에 요가 수업을 들었고, 재택근무하는 날은 피아노 연습을 가는 워라밸이 흘러넘치는 축복 속에서 일을 했다.     





물론 아름다운 호시절만 존재한 것은 아니다.


입사한 지 3개월 남짓 되었을 때의 일이다. 월급이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급여일인 10일이 되었는데도 통장에 돈이 꽂힐 기미는 없고 텅 빈 잔고가 직원들을 반기기 시작했다. 이사가 회의를 소집해 다른 회사로의 이직 의사를 밝히며 동종 업계로의 이직을 독려하기도 했다. 나는 입사한 지 고작 3개월인데 또 이직할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버텼으나 당시 많은 직원들이 퇴사의 수순을 밟았다. 급여가 밀려 발을 동동 굴리며 서로를 걱정하던 입사 초기의 동료는 3년이 지난 지금 아무도 남지 않았다.


회사에서 4대 보험을 납부하지 못해 미납 통보를 받은 날은 혹여나 회사가 망해버릴까 마음 졸이며 잠을 이루지 못하기도 했다. 그런 시간들이 무색하리만큼 A사는 현재 꽤나 잘 굴러가고 있다. 입사 초기의 두 배가량 직원도 늘었고 회사 규모도 커졌다. 내가 속한 팀을 제외하고는 매출이 없어 투자 없이는 직원들 급여도 주지 못하는 실정임에도 투자가 끊임없이 들어온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게다가 한 달 전에는 투자 유치 팀을 새로 꾸리기도 했다. 눈치 없이 누가 자꾸 투자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얼른 도망가세요.





요즘 가장 큰 고민은 '퇴사하면 뭐 하지?'다.


마음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바뀐다. 충분히 고민했다고 생각한 결정을 손바닥 뒤집듯 바꾸기도 한다. 하루빨리 퇴사하고 싶다고 생각하다가도 일하지 않는 삶을 생각하면 괜스레 마음이 싱숭생숭해진다. '이불 밖은 위험해'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고 오전 내내 누워만 있으면 어쩌나.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며 침대조차도 벗어나지 못하는 게으른 생활을 하면 어쩌나 노심초사다. 인간의 결심이 얼마나 나약한 것인지 알고 있기에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퇴사 후 첫 계획은 8월의 여름을 제주에서 보내는 일이었다. 제주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친구 집에서 인스타 관리를 명목으로 놀멍쉬멍하는 일상을 꿈꾸었다. 펜션의 SNS를 관리하며 쉬다 가라던 친구의 달콤한 말에 현혹된 바도 있다. 친구의 펜션은 서귀포시의 중문 관광단지와 가깝다. 원하면 언제든 바다를 보며 햇볕 샤워할 수 있는 거리다. 펜션에서 5분만 걸어 나가면 청량한 바다를 마주할 수 있거든. 뜨끈한 햇살 아래에서 독서 한 모금 즐기는 한량의 삶. 커다란 통창 가득 담긴 푸른빛을 바라보며 글을 써 내려가는 평온한 나를 상상하기도 했다.     


제주 한달살기 후 8월 예정된 수술을 마무리하면 올해가 무탈히 지나갈 거라 믿었다. 전공의 파업이 길어질 줄 몰랐을 때의 이야기지만. 전공의 파업 덕분에 세브란스 병원에 예약해 두었던 수술은 기약 없이 미뤄질 예정이며, 나는 다른 병원을 알아봐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이제부터 수술이 가능한 병원을 찾아다니며 진료 예약을 하고 검사를 받고 수술 일정을 조율해야 한다는 말이다. 산 넘어 산이다.

퇴사하면 푸른빛 제주 생활을 꿈꿨건만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래서 재미있는 거겠지.





누군가 내게 퇴사 후의 계획을 물어본다면 기꺼이 말해주어야겠다.


‘치앙마이 한달살기를 할 거예요.’

한여름의 제주 한달살이는 실패했지만 이번 겨울은 태국에서 보내려고 해요.

치앙마이에 갈 거고요, 그리고 그다음은 또 다음에 생각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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