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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혜경 Aug 12. 2024

N년차 직장인의 치앙마이 한달살기

퇴사하면 뭐하지?





올해의 마지막을 근사하게 마무리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태국으로의 여행.


본디 계획한 여름 제주 한달살기가 무산된 시점부터 어디든 가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퇴사의 여유를 즐기기 위해서는 무조건 여행을 떠나야 한다며 스스로를 닦달하는 내 모습에 어리둥절한 것도 잠시, 일단 무조건 가야 한다는 일념 하에 한달살기 장소를 물색했다.


12월에 여행 가기 좋은 나라가 어디인지 검색하던 중 문득 홍콩이 스쳤다. 재작년에 다녀오지 못했던 홍콩을 혼자 가보는 건 어떨까 싶어 곧장 에어비앤비를 알아보았다. 국내 여행조차 혼자 가본 적 없는 내가, 혼밥조차 못하는 내가 혼자 여영을 간다니. 기분이 묘해졌다. 어딘가 떠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묘한 강박에 시달리며 쉴새없이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혼자 떠나는 여행은 처음이라 설렘보다는 걱정이 앞섰지만 주말은 친구와 함께, 나머지 일정은 혼자 보내도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역시나 계획은 마음대로 되지 않아야 제맛 아닌가.


홍콩으로 떠날 계획을 브리핑하자 여기저기서 태클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혼자 여행 가는 건 절대 안 된다는 아버지와 홍콩 한달 살기는 비용적으로 부담이 될 수 있으니 동남아 쪽을 알아보는 게 좋겠다는 지인들의 현실적인 조언이었다. 귀가 한지같이 얄팍해져 주변 의견을 적극 수용하기로 마음먹었고, 엄마와 함께 동남아 한달살기로 일정을 대폭 수정했다. 이왕 함께 떠나는 거라면 엄마의 의중을 물어야 했다. 다렸다는 듯 '치앙마이가 한달 지내기에 좋다던데' 빙그레 웃음 짓는 엄마를 보며 올 겨울 여행지는 태국의 치앙마이가 되었음을 직감했다.  



엄마는 나와 달리 파워 E 성향의 소유자다.


여행 모임을 포함해 몸 담고 있는 모임만 열개에 달한다. 심지어 20년 전 아르바이트로 일하셨던 마트 여사님의 모임을 지금까지 지속하실 정도로 관계를 중히 여기시는 분이다. 모임분들과 다녀온 여행지를 나열하면 나의 배가 넘는다. 중국, 일본, 북한 동북아는 이미 섭렵하셨고 스위스, 프랑스, 영국, 스페인 등의 유럽을 비롯해 태국,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까지 안 다녀오신 곳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의 여행광이다. 그런 어머니가 다녀오시지 않은 곳이 있었으니 태국 치앙마이였던 것. 엄마는 이미 홍콩을 다녀오신 바 다른 곳으로 여행을 가고 싶으셨던 거다. 태국의 방콕, 푸켓, 파타야에 이은 네번째 태국여행인 셈이다.





‘한달살기 하기 좋은 도시가 있을까?’


주변에 물었을 때도 치앙마이와 발리가 1, 2위를 다투었다. 많은 이들의 추천사를 듣고 있으니 사람들이 많이 가는 데는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앙마이와 발리 중 치앙마이를 선택한 건 순전히 날씨 때문이었다. 12월의 발리는 애매한 우기 시즌으로 3월부터 6월 혹은 9월에 가야 맑은 날씨를 온전히 느낄 수 있다고 했다. 반면 치앙마이는 11월부터 2월이 여행하기 최적이라고 하니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물론 여행 메이트인 엄마의 입김도 한 몫했음을 밝혀둔다.



태국 치앙마이 12월 날씨
최저 15º / 최고 31º




12월 한달살기 장소는 태국 치앙마이로 순탄하게 낙점되었다.


치앙마이는 추위를 많이 타서 겨울을 유난히 힘들어하는 내게 혹독한 겨울 날씨 대신 따뜻하게 지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메리트가 있는 도시다. 홍콩의 숙소를 찾아보다 치앙마이로 갈아타니 가격차가 눈에 띈다. 물가가 높은 홍콩과 달리 태국은 숙소 비용도 저렴하고 오랫동안 생활하기 퍽 좋은 환경이다.


12월의 태국 날씨는 24도에서 31도로 서울의 한여름 날씨와 다름없다. 작년 12월 기준으로는 최저 13도 최고 31도이다. 타들어가는 한낮의 더위만 피하면 한국의 열대야 같은 밤의 무더위를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에 한숨을 돌렸다. 오전과 밤에 활동하고 낮에 쉬라는 조언이 대다수인 걸 보면 한낮의 태양은 쉬이 이길 수 없는 존재구나 싶다.







태국 치앙마이 한달살기, 뭐부터 준비해야 하지?


타국에서 한달이라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가장 먼저 준비해야 할 건 뭘까. 한달동안 안락하게 지낼 수 있도록 숙소가 아닐까. 숙소는 비행기와 달리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다. 숙소의 위치부터 가격과 동선까지 선택의 폭이 크기 때문이다. 숙소의 위치는 관광지와 가까운 곳으로 접근성을 높일 것인지, 리조트가 모여있는 조용하고 한적한 곳을 선택할 것인지, 내게 꼭 맞는 숙소가 어떤 형태인지 고민이 더해질 수 밖에 없다.


사생활이 존중되고 개인적인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 좋을지, 호텔과 같이 한결같이 관리되는 숙소로 갈 것인지, 가성비를 고려하여 저렴한 에어비앤비로 갈 것인지 등 우선순위를 정하고 숙소를 예약해야 한다.


나에게 있어 첫번째는 올드타운과 거리가 멀지 않을 것, 두번째는 가성비 좋은 숙소일 것, 세번째는 부엌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음식값이 아무리 저렴하다 한들 태국의 현지 식재료를 구매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는 재미에 비할 수 있을까. 심지어 엄마라는 든든한 아군과 함께하는 여행인데 부엌도 없는 럭셔리 호텔은 의미 없는 사치다.  







치앙마이의 성수기는 우리나라의 겨울이라더니 12월 비행기 가격이 상당히 높다.


10월 기준 왕복항공권 대한항공 직항이 55만 원대인데 12월로 검색하면 75만 원으로 가격이 뛴다. 약 2개월 후에는 10월처럼 항공권 가격대가 저렴해질 수도 있다는 희망으로 천천히 알아보아야겠다. 12월이 성수기라 비행기표가 제일 비싸다는 회사 동료 L의 말은 정신 건강을 위해 못 들은 척 제쳐둔다.


부엌이 필요하니 호텔이 자연스럽게 지워지고 가성비 위주의 숙소를 찾다 보니 여행 경비 다이어트가 절로 된다. 부엌이 있는 아담한 숙소에 머무는 대신 야무지게 먹고 즐기면 된다. 코끼리 투어를 가고 태국 요리 수업도 참여하고 요가 수업도 듣고 싶으니까. 여행의 시작은 계획부터라고 했으니, 치앙마이 비행기표를 검색하는 지금 이 순간부터 힘껏 설레고 즐거워 할 테다.


태국이라는 낯선 곳에서 까맣게 타서 돌아올 2025년의 나에게 무한한 허그를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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