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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혜경 Aug 14. 2024

나는 퇴사하기로 했다

N년차 직장인의 퇴사 에세이





차갑고 지적인 이미지라 이런 옷이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독서모임에서 처음 만난 이가 내가 말했다. 나는 차갑고 지적인 이미지의 직장 여성이라고. 그래서 회사에서는 잘 웃지 않고 늘 차분하게 행동할 것만 같다고 말이다. 독서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릴 곳을 지나쳤다. '이번 역은 광명 사거리, 광명사거리 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낭랑하게 울려 퍼지는 성우의 목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부랴부랴 지하철에서 내리는데 웃음이 비실 새어 나왔다. 매일같이 출퇴근하는 지하철인데 내릴 역을 지나치다니. 이다지도 허당인 내가 차가운 직장 여성이 가당키나 하단 말인가. 내게 씌워진 첫인상 프레임이 퍽 재미나다 생각했다.


타인이 보는 나는 어떤 사람일까. 무표정일 때는 차가워 보이지만 웃음이 따뜻해요.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차가워 보인다는 말. 나이가 들어갈수록 차도녀라는 말을 덜 듣고 있기는 하지만 20대에는 바늘도 안 들어갈 것 같이 날카롭고 서늘하다는 말을 듣고는 했다. 차가워 보인다는 말이 좋아 일부러 표정을 지우던 어린 시절도 있었으나 따뜻한 사람이고 싶어 옅은 미소를 장전하고 다녔다. 은은한 미소가 주효했는지 3년 5개월의 시간 동안 A사를 다니면서는 차가워 보인다는 말을 거의 듣지 못했다.






차가운 직장 여성이라는 첫인상과 달리 회사에서의 내 별명은 P팀의 '엄마'였다.


개발자인 동료 K가 붙여준 별명인데 처음 들었을 때는 기분이 묘했다. 나와 동갑인 K가 엄마라고 부를 때는 오소소 소름이 돋아나기도 했다. 우리 프로그램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니까 엄마 맞죠. 엄마가 싫으면 어머니라고 불러줘요?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는데 웃음이 터져 한참을 깔깔대기도 했다. 결국은 받아들이기로 했지만 동갑내기 입으로 듣는 '엄마'라는 호칭은 한동안 내 웃음벨이었다.


나는 프로그램을 가장 오래 쓴 사람이자 프로그램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었다. 프로그램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면 누구든 내게 와 물었다. 개발자도 영업 사원도 CS 직원들도 모두 나에게 찾아왔다. 어떤 때는 슬렉으로 궁금증을 남겼고 외부에 있을 때는 전화로 도움을 청하기도 했다. 나를 찾는 이가 있으면 언제든 하던 일을 멈추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나를 필요로 하는 이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고, 그것이 내 쓸모를 증명받는 일인 것만 같았다. 내 쓰임이 필요한 곳이 있음이 나를 살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동료 K와 합을 맞춘 지 1년쯤 되었을 때 그가 물었다. 왜 퇴사를 하지 않았느냐고.


그간 힘들었겠다 위로의 말을 전한 동료들은 많았지만 왜 퇴사를 하지 않았는지를 직접적으로 물은 건 K가 처음이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입사 초 함께했던 동료들이 모두 퇴사를 한 상황이었으니 그럴만하다 싶지만 당시에는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그가 본 나는 책임감 때문에 회사에 묶여있는 사람 같았다고 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미 퇴사를 해도 7번을 했을 거라며 바보 같다고 웃었다.



지난 3년 5개월의 회사 생활을 정리하면 한 단어로 귀결된다. 다사다난.


입사한 지 3개월 만에 급여가 밀리기 시작했고, 어려운 회사 사정 때문에 급여를 동결해야 했다. 신규 배정받은 기획자와 QA팀에 한 달여 프로그램 교육만 진행해 주고 그 프로젝트에서 배제된 적도 있다. 새로 들어온 신입에게 괴롭힘을 당하기도 했고, 신입의 말만 듣고 내게 등을 돌린 사람들도 있었다. 무리하게 목을 사용한 탓에 후두근 긴장 조절 장애 판정을 받아 매일 울며 잠들기도 했다. 나오지 않는 목을 쥐어짜 프로그램 교육을 하고 고객사를 상대하는 일이 지옥같이 느껴진 때도 있었다.





퇴사한다 말했을 때 어떤 이는 나의 퇴사를 응원해 주었고, 어떤 이는 그만두지 말라며 퇴사를 말렸고, 또 다른 이는 부러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어디로 이직하는지를 물었다. 나라는 사람이 회사에 꼭 필요한 존재이니 그만두지 말 것을 종용할 때의 반응도 제각각이었다.


본인의 팀에 해가 갈까 전전긍긍하며 나를 설득하려는 이도 있었고, 나의 완고한 반응에 몇 달만 쉬다가 회사로 다시 복귀하는 건 어떠냐 묻는 이도 있었다. 회사를 차리면 연락할 테니 잠시 쉬다가 같이 일하자는 이도 있었다.


직장이라는 수식어를 뺀다면 나 자신의 존재가 허물어져 버릴 것이라 생각한 날들이 있었다. 건강이 악화되고 있음에도 회사를 떠나지 못한 이유는 사회에서 필요한 사람이고 싶다는 어리석은 마음 때문이었다. 직장을 다니지 않는다고 해서 사회에 불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님에도 흘러넘치는 미련을 주체할 수 없었다. 회사를 그만둔다고 해서 쓸모없는 인간으로 전락함이 아니라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없던 것이다.


내 존재의 이유가 마치 회사에 있는 것처럼 오랜 시간을 착각 속에서 보냈다.






마침내 나는 퇴사를 결정했다.


퇴사는 내 인생에서 더는 미룰 수 없는 커다란 숙제였다. 일련의 사건들로 미련 없이 회사를 떠날 수 있는 시점이기도 했고, 건강을 위해 내딛는 첫 발걸음이기도 했다. 불안이라는 감정이 이따금씩 나를 찾아오지만 잠시 마주하고 있을 뿐 잠식되지는 않는다. 불안감이라는 녀석과 등을 마주한 채 숨을 고르다 주저 없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힘이 생겼다.


더는 회사에서 나의 존재의 이유를 찾지 않는다. 회사 안에서나 밖에서나 나는 여전히 제제이다. 부모님의 자랑스러운 딸이고, 사랑스러운 친구이며, 존중받아 마땅한 사람이다. 회사에서의 나는 일종의 부캐였을 뿐, 존재 자체를 위협할 힘이 없다. 나의 목소리에 기꺼이 귀 기울여줄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기 외칠 수 있는 글쓰기 공간도, 내게 휴식을 주는 나만의 피난처도 있다.


회사가 아니어도 나는 충분히 아름답고 쓸모 있으며, 매력적인 사람이다. 끝맺음이 있어야 새로운 시작이 존재한다. 나는 이 길의 끝과 또 다른 길의 시작점에 서있다. 회사라는 굴레를 박차고 나온 나는 여전히 근사할 것이다. 좋아하는 책을 읽고, 일상적인 글을 쓰고, 드뷔시 곡을 연습하고, 가벼운 산책을 즐기는 삶. 떠나고 싶어지면 망설임 없이 비행기표를 끊을 수 있는 홀가분한 삶을 택한 나를 응원한다.









내가 좋아하는 짤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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