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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혜경 Aug 19. 2024

나의 해묵은 두려움에 관하여

드디어 퇴사 일자가 확정되었다.





퇴사 일자가 확정되었다. 


팀장 재량으로 오전 근무 후 팀원들과 점심 먹고 퇴근하는 일정이다. D-5일이지만 실제 근무일자는 오늘 포함 3일로 화요일 오전 근무를 생각하면 이틀 반이다. 멀게만 느껴졌던 퇴사가 코앞으로 다가오니 설렘보다는 불안감이 크게 번진다. 스스로에 잘한 결정이라고 되뇌어보지만 불안감을 감출 길이 없다. 인턴 생활을 포함하면 네 번째 퇴사임에도 회사를 떠나는 건 늘 불안하고 어려운 결정이다. 요동치는 마음을 잠재울 묘약이 필요하다. 


퇴사의 방점이 끝이 아닌 시작에 찍히길 바랐다. 시작이 두려움 대신 설렘으로 채워질 수 있으면 했다. 그게 일상적 글쓰기 공간을 만든 이유다. 새로운 길을 묵묵히 걸어줄 지음이 필요했다. 단순히 마음 편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친구가 아닌, 나의 부족함도 드러내 보일 수 있는 진정한 친구를 원했다. 나조차도 보지 않으려 외면했던 해묵은 감정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언젠가는 말하고 싶었다, 나의 오랜 두려움에 대하여. 막연히 피하고 싶던 심연 깊숙이 박힌 하나의 조각.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감춰왔던 작은 마음에 대해 털어놓고 싶었다. 허나 용기가 부족했다. 굳게 닫힌 입술을 여는 방법을 알지 못했고 오랜 시간을 그저 그렇게 흘려보냈다. 


긴 시간을 잊고 지냈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내가 존재했었다는 사실도. 







나는 오랫동안 글쓰기를 두려워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밑천이 드러남이 두려웠다. 내가 가진 재능이 보잘것 없이 작음을 외면하고 싶었다. 그래서 쓰지 않는 삶을 택했다. 주변에서 글을 잘 쓴다 칭찬의 말을 들으면 마음이 오그라 들었다. 작은 그릇이 들킬까 심장이 쿵쾅거렸다. 글도 적당히, 노래도 적당히, 그림도 적당히, 직장 생활도 적당히. 뭐든 적당히 잘 해내는 사람, 그게 바로 나였다.


문제는 그 적당함이었다. 그 어느 것에도 특출한 재능 없는 무색무취인 사람. 누군가는 내게 부족한 게 없는 사람이라 말했지만 나는 모든 게 부족한 사람이었다. 온갖 결핍에 둘러싸여 스스로가 그 결핍의 성에 숨어 지내는지 조차도 깨닫지 못하는.


'언니가 책 낼 때 표지는 저한테 맡겨야 돼요' 


지인 S가 말했을 때 선뜻 답하지 못했던 건 내 자격지심 때문이었을 거다. 언니는 언제가 되었든 분명 작가가 될 거라고 다부지게 말하는 S의 말에 쓴웃음을 지었던 그날의 나. 분위기를 맞추려 '당연하지. 잘 부탁해.'라고 말하면서도 웃지 못하던 내가 스쳤다. 글을 쓰면서 살고 싶어. 작가가 되어. 당당히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건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였다.







이번달 독서모임의 주제는 기록이었다. 


이경원 작가의 <당신의 기록은 꽤나 대단합니다> 에세이를 읽었다. 다이어리를 쓰며 인생이 바뀐 작가의 기록 노하우를 담은 책이다.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해 하루 5분 다이어리를 쓰기 시작했고 현재 다이어리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작가는 12월이 되면 본인이 쓴 다이어리 읽는 시간을 가진다고 했다. 하루에 네다섯 줄씩 남긴 기록들이 차곡차곡 쌓이면 12월 중 하루를 정해 다이어리를 읽는단다. 본인이 쓴 일상의 단상이 그 어느 책보다도 재미있다고 했다. 다이어리를 읽는 날이 1년 중 가장 행복한 날이라고 말이다.



언젠가의 나도 그러했다. 

내 글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왜 숨기기 급급했을까. 



눈부신 재능은 아니더라도 뭐든 적당히 잘 해내는 것 또한 재능임을 잊고 살았다. 나에게는 고작 다섯 줄이 적힌 일기를 보며 '내 글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다' 말할 수 있는 자존감이 필요했다. 고장 난 나를 향해 주문을 외듯이 중얼거려 본다. 나는 내 글을 사랑한다. 내 글을 사랑한다. 무척이나 나를 사랑한다. 


그리고 생각했다. 달콤한 말들을 칭찬으로 듣지 못하고 흘려보냈던 날들에 작별을 고할 시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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