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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혜경 Aug 23. 2024

불면과 숙면의 밤 그 어딘가

저도 머리만 대면 자고 싶습니다만






내 친구 J는 머리만 대면 잠이 드는 사람이다.


같이 TV를 보다가 조용해서 슬쩍 돌아보면 세상모르게 자고 있다. 즐겁게 넷플릭스 드라마를 보다가도 소파에만 누우면 딥 슬립의 세계로 떠난다. 고롱거리는 숨소리가 커지면 언제 깨려나 빤히 쳐다보게 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혼자 놀래서 깬다. 드르렁 코 합주가 시작되면 본인 코 고는 소리에 놀라서 벌건 토끼 눈이 된다. 마냥 편하게 자는 것 같지는 않은데 머리만 대면 잠에 빠지는 모습은 여전히 신기하다.


J의 머리에 바닥을 인지하는 센서가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할 때가 있다. 바닥과 맞닿기만 하면 5분 안에 작동되기 때문이다. 잠드는 데 상당 시간이 필요한 나로서는 그 감지 센서가 부럽기도 하다. 바닥 센서 감지기를 돈 주고 살 수 있다면 나는 진작에 구매했을 것이다. 침대에 눕자마자 무념무상으로 곯아떨어지는 J의 무던함은 평생 가져본 적 없어 더욱 궁금한 요소 중 하나다.





불면증이 심하던 스물둘의 여름, 일주일에 다섯 시간 남짓 잠을 청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루에 다섯 시간이 아니라 일주일에 다섯 시간 잠을 이루던 때였다. 사실 잠이 들었다기보다는 잠깐 졸았다는 말이 어울릴 테다. 세상의 불행을 끌어안은 듯이 불안에 떨었고, 초조함으로 밤을 지새웠다. 틀어진 관계 속에서 버텨나갈 자신이 없어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지나고 보니 성장통이었구나 싶다.


그렇게 네 달의 불면의 밤을 보냈다. 부서질 듯했던 불면의 감각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사람들의 말이 귓가를 스쳐 반대쪽으로 빠져나가버리는 듯했다. 몸이 공중에 떠있는 것처럼 소리가 넘실거렸다. 언어에 형태가 있다면 나의 왼쪽 귀로 들어왔다 오른쪽 귀로 흘러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을 텐데, 그럴 수 없음이 아쉬웠다.


당시 생활환경을 바꾸고 난 뒤 거짓말처럼 잠들 수 있게 되었는데, 그 개운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단잠을 이룬 뒤 깨어나던 날의 따스한 햇살을 지금도 기억한다.


폭닥한 이불에 쌓여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커다란 창에서 쏟아지는 햇볕을 받아내던 아침. 일어나서 아침 먹으라고 닦달하는 엄마의 잔소리가 눈물 나게 반갑던 날의 풍경이 생생하다. 관계 속에서 방황하던 스물둘의 불면의 밤은 그렇게 나를 지나쳐갔다. 그리곤 공중에 부유하듯 떠다니던 언어가 내 안으로 스며들었다. 말들이 더 이상 나를 스쳐가지 않고 안에 고요히 머물렀다. 수많은 불면의 밤이 지난 후의 탐스러운 잠과의 조우, 그것으로 충분했다.






본디 나는 일찍 잠에 드는 게 힘든 아이였다.


자려고 누우면 시계 초침 소리, 윙윙거리는 냉장고 소리, 가구들이 삐걱대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미묘하게 삐걱대는 가구들의 몸짓이 나를 불안감에 빠뜨리는 제1의 요소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몹시도 두려워했다. 가구들이 내지르는 비명 안에 무언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 날은 두 눈을 꼭 감고 어둠이 걷히기를 기다렸다. 눈을 뜨지도 감지도 못한 채 날을 새는 경우도 허다했다.


심약한 어린이였던 나는 두려움에 떨다 울며 잠들고는 했는데, 아빠는 그런 나를 강하게 키우기 위해 곁을 내어주지 않으셨다. 울다 지쳐 부모님 방에 찾아가면 혼자 자야 한다며 방문을 걸어 잠그기 일쑤였다. 어떤 날은 방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부모님 방문 앞에 몸을 웅크리고 잠에 들기도 했다. 또 다른 날은 새벽녘 어슴푸레 해가 떠오르고 나서야 방으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







지금은 어떠냐고 묻는다면 여전히 잠을 자는 건 힘든 일입니다,라고 답할 수 있다.


나는 여전히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 오래된 냉장고의 울림, 밤이 뿜어내는 미묘한 소리를 견디기 힘든 날들이 있다. 그런 때는 유튜브에서 '잠 잘 오는 수면 유도 영상'을 찾아본다. 비 오는 날 시골의 장작 소리, 숲이 전해주는 자연의 바람 소리, 잠이 솔솔 오는 장독대 빗소리 같은 것들을 듣는다. 유튜브에서 흔히 찾을 수 있는 자연 소리를 담은 ASMR을 작게 틀어둔다.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자연의 소리로 방에서의 작은 소음들과 함께 두려움을 걷어낸다. 그 소리들로 곤히 잠에 떨어지면 좋겠지만 그건 아직 어렵다. 최대한 작게 소리를 낮추거나 두려움이 사라질 때쯤 핸드폰을 무음으로 바꾸고 다시 잠을 청한다.





숙면을 위해서는 핸드폰을 멀리 두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나 실천은 쉽지 않다.


원체 잠을 잘 이루지 못하는 데다 핸드폰의 블루라이트까지 더해지니 불면의 밤이 깊어간다. '밤에는 제발 불  좀 끄고 일찍 자라' 늘 엄마에게 듣는 잔소리지만 삼십 년째 고치지 못하고 있다. 쉬이 잠들기 어려운 내게, 일찍 잠들고 일찍 일어나는 새 나라의 어른이로 살아내는 건 여전히 어려운 숙제다.


새벽 네 시, 아빠가 화장실 가려던 발걸음을 멈추고 환한 내 방을 보며 잠을 독려한다. '지금이 몇 시인데. 건강 생각해서 그만 자라' 다정함이 뚝뚝 떨어지는 단골 새벽 멘트에 이제라도 눈을 붙여야지 다짐하며 불을 끈다.


오늘 치의 단잠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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