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를 시작한 지 2주쯤 되었을 때 색다른 추천 글이 올라왔다. 북한학 전문 서점에서 진행하는 세미나 모임이었다. 처음에는 작은 동네 서점인가 보다, 자연스럽게 넘겼는데 '북한'이라는 단어가 뇌리에 꽂혔다. 북한학을 다루는 것도 특이했지만 특강의 주제는 더욱 생경했다. '북한 아이돌의 계보'라니. 북한과 아이돌,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의 조합에 어리둥절해졌다. 내가 제대로 본 게 맞나 싶었다. 북한의 아이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니. 북한에도 BTS 같은 아이돌이 존재하는 걸까. 덕질이 취미인 내 마음에 작은 파문이 일었다. 게시물을 훑어보니 북한의 전자음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젠데 세미나를 여는 서점이란다. 특이해도 너무 특이하다.
대체 뭐 하는 곳이길래 페미니즘과 북한을 동시에 다룬다는 말인가. 서점의 정체성이 더욱 궁금해지는 대목인 거다. 북한의 아이돌과 전자음악, 페미니즘을 한 곳으로 묶어낼 수 있는 서점은 한국에 단 하나뿐이겠다 싶어 틈새시장을 노린 서점인가 생각했다. 네이버에 '이나영 책방'을 검색하니 북한학 전문 서점이라고 나온다. 책방 소개 글을 빌자면, 로컬 지향 동네 서점이자 북한학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서점이란다. 내게는 낯선 장소지만 벌써 3주년을 맞이한 곳이라니. 그 어렵다는 코로나 시기를 버텨낸 기특한 동네 책방이다. 이곳은 수상하지만, 궁금증을 자아내는 곳이었다.
이나영 책방에 발을 들인 건 '오물 풍선' 이슈가 네이버 뉴스를 잠식되었을 때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오르는 오물풍선 기사에 머리가 어질해질 즈음, 이나영 책방 인스타에서 반가운 소식이 올라왔다. 3주년 기념 '오물풍선 집담회'였다. 물 풍선 이슈는 궁금하나 북한에 대해 아는 바가 없던 나는 신청을 주저했다. 문제는 단 하나. 내가 북한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이었다. '강의 형태가 아니라 오물 풍선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는데 궁금증만으로 찾아가도 괜찮은 걸까'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나영 책방지기는 내 마음을 알아주듯 모임 공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덧붙였다.
'사건을 깊이 몰라도 괜찮습니다. 진행자가 개요를 나누고 틀 거리를 제공합니다.'
북한학 전문 서점이라는 독특한 공간이 나의 궁금함을 해소해 줄 거다. 일단 못 먹어도 고다. 고민은 ‘틀 거리’를 보고 해도 된다는 생각으로 신청했다. 북한학 전문 서점이라는 특수성을 가진 동네 책방. 수상해서 더 궁금했던 이나영 책방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오물 풍선 집담회는 걱정과 달리 스무스하게 이어졌다. 논쟁적인 주제였지만 안전하고 침착한 대화가 이어졌다. 한 사람에 집중될 수 있는 발언권을 제안하기 위해 발언 카드는 네 개로 제한되었다. 의견을 표시하고 싶다면 발언 카드를 들고 3분 동안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무조건 한 번 이상 발언 기회를 사용해야 한다는 규칙 덕분에 모든 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의미 있었다.
연령대와 성별, 직업도 제각각이었다. 초등학생 자녀와 동행한 가족이 단연 눈에 띄었다. 아이들에게 북한에 대한 올바른 시각을 심어주고 싶어 함께 모임에 참여하셨다고 했다. 이나영 책방의 단골 친구의 손에 이끌려 방문하셨다는 50대의 F4 중년 여성분들도 계셨다. 재일조선인과 관련한 전시회를 준비하고 계신 예술가와 북한 전담 기사를 쓰고 계시는 기자님도 만났다.
여러 사람이 이야기를 나눔을 뜻하는 '집담회' 답게 사회자가 일방적으로 이끌어 가는 시간이 아니었다. 사회자는 오물 풍선이라는 이슈를 중립적인 입장에서 자료를 제공하는 역할을 했을 뿐이다. 오물풍선 사건의 개요, 쟁점이 되는 사안을 네 가지로 나누어 참여자들의 말을 끌어냈다. 잘 모르는 사안이기에 할 말이 없을 거라 걱정하던 나는, 놀랍게도 네 개의 발언 카드를 모두 소진하고 돌아왔다.
이나영 책방에서 무엇보다 반가웠던 것은 학교 동문을 만난 일이었다. 바로 이나영 책방의 크루이자 힐데와 소피의 오주연 대표다. 그는 오물풍선 집담회를 이끌어준 사회자이기도 했는데 알고 보니 북한학과를 졸업한 재원이라고 했다. 집담회 시작 전 자기소개 시간, “학교에 북한학과가 있었던 것이 의외의 연이 되어 이곳에 왔다”는 나의 말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했다. 비슷한 시기에 학교를 다녔던 것 같다며 나를 반겼다.
그는 북한학과를 졸업하고 북한학 전문 서점에서 일하며 '힐데와 소피'라는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아니 북한의 이야기를 다루는 책을 집필한 이력 또한 가지고 있었다. 북한학이란 무엇인가에 관해 묻고 답한 <어쩌다가 북한학>과 <나는 통일을 땡땡합니다>가 그의 손에서 탄생한 결과물이다. 북한학과를 졸업하면 전공을 살리는 일이 극악이라고들 했지만 그걸 해낸 사람을 우연히 만나버린 거다. 뜻하지 않게 북한학과로 진학해야만 했던 친구 L과 달리 자발적으로 북한학과를 진학한 사람을. 북한학이라는 게 무엇인지 알리고자 자발적으로 인터뷰집을 만들고 판매하는 사람을 말이다.
대학 졸업 후 북한이탈주민을 지원하는 사회적 기업에서 일하며 만난 인연들과 북한학 전문 서점을 만들었단다. 서점과 출판사를 운영하며 북한과 관련된 책을 집필하는 작가로, 원하는 책을 출간하는 편집자로 살아가는 모습이 근사했다. 북한이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 아프리카의 위기를 담은 <내일을 위한 아프리카 공부>나 선동의 수사학을 담은 <선동은 쉽고 선동은 어렵다>를 출간하는 출판사라는 점도 눈에 띄었다.
출판사의 행보와 같이 이나영 책방 역시 유연했다. 젠더 세미나를 진행하고 요가 수업을 연다. 북한학 서점이지만 북한과 관련된 책 보다 북한과 관련되지 않은 책들이 더 많다. 세 명의 책방지기가 선정한 양질의 소설과 사회과학책이 책장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북한과 무관한 책들이 많아 의외였다는 말에 그는 나직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이나영 책방은 신대방역에 위치한 작은 동네 책방이자 북한학을 다루는 서점이에요. 동네 책방의 핵심은 뾰족한 전문성이라 생각해서 북한학 전문 서점을 운영하게 되셨대요. 책방 이름은 사장님의 이름이자 '이것이 나의 영감'의 줄임말이라고 합니다. 물론 북한학 서점이라고 해서 북한 관련 책만 파는 건 아니랍니다. 책방 크루가 엄선한 다양한 분야의 책이 준비되어 있으니 걱정은 접어두셔도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