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화중 야구 5인방
“마이볼!”
문교가 공을 향해 뛰어간다. 방망이를 맞은 타구는 쉭! 바람 소리를 내며 하늘을 가른다.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공을 따라가며 모두 긴장한다. 분주히 움직이던 문교의 발이 드디어 멈춘다. 창공을 가르던 작은 야구공은 문교의 글러브에 착! 하고 안착했다.
“아웃!”
누군가 소리쳤다. 문교는 씩 웃으며 볼집에서 공을 빼낸다.
홍화중학교 1학년 야구 5인방.
모두 같은 초등학교를 졸업했고 야구를 사랑한다. 운동장에서는 항상 축구하는 아이들에게 밀리지만 막상 붙어보라지! 우리에게는 방망이가 있다고! 학교에 야구부가 없는 것이 개탄스럽다.
같은 초등학교를 다니던 5학년 가을부터 이들은 알음알음 얼굴만 알던 사이에서 본격적으로 시간을 맞춰 야구를 하기 시작했다. 물론 야구가 다섯 명만으로는 어렵지만, 상대팀 역시 외야까지 공을 날릴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포수 김표건
투수 안효민
1루 이태호
2루 김문교
3루 표재혁
나름 소수정예로 꾸려진 허접한 야구팀. 엄마를 조르고 졸라 마트에서 글러브를 사고, 형이 쓰다 놔둔 배트를 가져와 돌아가며 타석에 선다.
매주 일요일 오후. 별다른 일정이 없다면 운동장에 모여라! 일정이 있어도 가능한 운동장에 모여라! 이게 이들의 신념이다.
상대의 타구가 운동장으로 떨어진다. 내야 안타. 효민은 냅다 공을 쫓아 뛴다. 달리면서 공을 줍고 재빨리 1루 태호에게 던진다.
오늘 상대팀은 작년까지 아이들이 다녔던 홍화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
한 살 차이지만 초등학교 6학년 아이 중 한 명이 야구를 배웠다며 승리를 자신한다. 아. 꼴 뵈기 싫다. 우리가 이겨서 눌러주자. 그 한 놈 빼고는 모두 오합지졸에 불과하다. 야구는 혼자 하는 게 아니야! 팀워크가 중요하다고!
큰 점수 차는 아니지만 초등학생을 격파하고 운동장 스탠드에 앉아 먹는 아이스크림은 꿀맛이다. 이 순간만큼은 우리가 천하무적이 된 기분이다. 아니지. 못해도 이 근방에서는 우리가 가장 잘하지 않나? 물론 친구들 대부분이 야구가 아니라 축구를 한다는 게 조금 마음에 걸리지만, 이 정도는 무시해도 괜찮다. 우리는 즐겁게 야구를 하고 있고, 친구와 함께 하는 시간은 항상 재미있으니까.
“야. 중학교는 언제 방학 하냐?”
누군가 질문을 던졌다.
“몰라. 작년에 형 보니까 나보다 일찍 하던데?”
표건이가 아이스크림을 우물거리면서 대답했다.
“진짜? 그럼 방학 엄청 길겠네?”
효민이가 놀란 목소리로 말한다.
“아니. 근데 개학도 빨리 했던 것 같아.”
표건이가 대답했다.
“아, 뭐야. 그럼 똑같은 거네.”
재혁이 아쉬워하며 말했다.
“아. 이 새끼는 아직 5월인데 벌써 방학 타령이냐?”
문교의 말에 다들 킥킥대며 웃는다.
“어? 쟤 가은이 아니야?”
효민이 운동장 한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한다. 아이들 모두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가은이가 친구와 총총 걸음으로 아이들이 앉아 있는 스탠드를 향해 걸어왔다. 잠시 뒤 스탠드 그늘 속으로 들어온 가은이 재혁에게 말한다.
“야, 표재혁. 너희 엄마가 6시까지는 들어오래.”
“알았어.”
재혁은 가은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심드렁하게 대답한다. 말을 마친 가은이는 재빨리 뒤로 돌아 친구와 사라졌다.
“야, 너 가은이랑 사귀는 거 아니야?”
효민이 재혁을 쳐다보며 물어본다.
“아니라고 몇 번을 말 하냐. 나도 쟤랑 자꾸 엮여서 짜증난다고. 여친은 무슨…….”
재혁은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 막대를 입에 물며 곁눈질로 효민을 슬쩍 보더니 말을 잇는다.
“너 소개시켜 줘?”
재혁의 말을 들은 효민은 양 손을 휘저으며 펄쩍 뛴다.
“아니, 아니야.”
“나 해 줘.”
둘을 보던 표건이 배시시 웃으며 말한다.
“야. 이번 주에도 재혁이 안 온다고?”
“응.”
“왜?”
“몰라. 그냥 못 온대. 우리끼리 야구하래.”
효민이 시선을 떨구며 말했다.
“아니, 야구는 원래 아홉 명인데 우리는 고작 다섯 명이야. 그런데 그 중에서 재혁이가 빠지면 꼴랑 네 명이야. 네 명이서 무슨 야구를 하냐?”
문교가 볼멘소리로 투덜거렸다.
“재혁이 지난주에도 안 왔지?”
표건이 효민에게 물었다. 효민은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 갔어?”
“아니. 그건 아닌 것 같아.”
“그럼 집에 있는데 안 온다고?”
효민이는 눈치를 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왜?”
표건이 재차 물었지만 효민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몰라.” 라고 대답할 뿐이다.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어?”
효민은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역시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홍화중학교 1학년 야구 5인방 중 유일하게 효민과 재혁이 같은 반이고 나머지는 모두 다른 반이었다. 만약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다면 같은 반인 효민이 알아차렸을 것이다.
“잘 모르겠어. 그런데 요즘 재혁이 좀 이상해.”
“왜?”
아이들의 시선이 모두 효민에게 쏠렸다. 효민은 작게 한 숨을 내 쉬고 말을 이었다.
“그냥 좀 이상해. 잘 놀지도 않고, 자리에 앉아만 있어.”
“걔가?”
이상하다는 듯이 태호가 물었다. 재혁이는 5인방 중에서도 가장 활발한 아이였는데?
“응. 그러니까 이상하지. 원래는 엄청 까불잖아. 근데 요즘은 조용해.”
“어디 아픈 거 아니야?”
“몰라.”
효민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야. 네 명이서 무슨 야구냐? 오늘은 다른 거나하고 놀자.”
문교가 체념한 듯이 말했다.
하지만 그 다음 주에도 재혁이는 나오지 않았다. 심지어 학교에서 마주쳐도 아는 체하지 않고 서둘러 교실로 들어가 버렸다. 아이들은 점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쟤가 도대체 왜 저러지? 쉬는 시간에도 자리에만 앉아있고, 종례가 끝나면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갔다. 함께 야구를 하기는커녕 대화 할 시간도 없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같은 반인 효민도, 소꿉친구인 가은도 몰랐다. 다들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자 아이들도 점차 재혁이와 야구를 잊었다. 매주 일요일마다 모여 야구를 하던 아이들은 각자 뿔뿔이 흩어졌다. 재혁이와 연락을 시도하던 친구들도 이제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정 야구가 하고 싶다면 둘, 셋이 만나 캐치볼을 하는 게 고작이었다. 싫다고 피하는 사람을 억지로 끌고 올 수는 없잖은가.
한 낮의 길이가 제법 길어졌다. 이제는 저녁에도 오래도록 해가 하늘에 떠 있었다. 정신없던 5월도 끝나고 싱그러운 6월이 찾아왔다. 초여름에 접어든 날씨답게 낮에는 땀이 나기 시작했다.
“아, 야구하기 딱 좋은 날씬데…….”
6월 10일 토요일 오후.
태호는 1루 미트를 왼손에 끼고 오른손으로 왼손을 향해 공을 던졌다. 착! 하고 공이 글러브에 감기는 소리가 듣기 좋다. 편의점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 태호는 새로 산 1루 미트를 시험해 보고 있었다. 비록 마트에서 샀지만 두 달 가량 엄마를 졸랐다. 갖고 있는 용돈을 탈탈 털어 엄마에게 드리고 나머지만 내 달라고 부탁했다. 문제는 탈탈 털었다는 용돈이 고작 2만 7천원뿐이라는 것이다. 돈이 더 많았던 것 같은데 왜 이것 밖에 없지? 이상하네. 매일 학교가 끝나고 들렀던 분식집이 원인인 것 같다.
“포지션?”
“응. 너희 매주 야구하더만.”
토요일 오후. 프로 야구 중계를 보며 아빠가 태호에게 물었다. 아빠는 아침부터 쇼파와 한 몸이 되어 있었다.
“허스트”
“1루? 아……. 그래.”
아빠는 태호를 눈으로 훑어보더니 새삼 히죽거리며 말했다.
일명 찐뽕글러브라고 불리는 마트글러브지만 태호는 새 글러브가 갖고 싶었다. 그런 태호의 눈에 들어온 글러브는 대략 10만원 정도. 태호는 갖은 약속과 입발림으로 엄마를 꾀어내야 했다. 공부를 열심히 하고, 방은 스스로 치우고, 학원에 빠지지 않고……. 온갖 약속을 한 후에야 엄마가 나머지 돈을 보태줘서 드디어 글러브를 살 수 있었다. 비록 마트 글러브지만 손으로 꾹꾹 눌러가며 볼집도 만들고, 부드럽게 다진다며 몇 날 며칠을 껴안고 다녔다. 이 글러브로 아이들과 야구를 해야지. 재혁이가 3루에서 던지는 공을 멋지게 뛰어 올라 캐치해야지! 하지만 재혁이의 부재로 글러브는 빛 한 번 보지 못하고 내내 태호의 방에 놓여 있었다. 이제 더 이상은 안 돼! 이 글러브도 햇빛 한 번 보자! 싶어 오늘 갖고 나왔지만 함께 야구를 할 친구들이 없었다.
편의점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 글러브를 만지작거리다 테이블에 올려놓은 콜라를 집어 들고 한 모금 마신다. 재혁이 없이 우리끼리라도 야구를 하자고 할까? 누구 다른 애를 한 명 더 영입할까? 이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질 때 쯤 골목을 따라 걸어 나오는 재혁이 눈에 띈다.
“어? 재혁이다.”
태호는 비스듬히 앉아있던 자세를 바로 고쳤다. 맨날 집구석에 처박혀 있더니 오늘은 어쩐 일로 밖에 나왔어?
재혁은 살짝 언덕진 골목에서 걸어 나왔다. 태호가 앉아 있는 자리에서는 재혁이 보이지만 재혁은 아마 태호를 알아차리지 못 했을 것이다. 굳이 찾으려면 찾을 수 있겠지만 지금 보이는 재혁은 그럴 것 같지 않다. 고개를 푹 숙이고 누가 볼세라 빠른 걸음으로 골목길을 나와 그 다음 골목길로 몸을 숨겼다.
“어디 가는 거야? 저 새끼.”
태호는 목을 길게 빼고 재혁이 사라진 골목길을 바라보았지만 특별한 것은 없었다. 시선을 내리자 왼손에 낀 글러브만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