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드림캐처 03화

드림 캐처

뜻밖의 제안

by 포뢰

1년이 지났다. 시간은 여지없이 흘러갔고 재혁이도 기억에서 점점 사라져 갔다.


중2 여름방학을 며칠 앞 둔 어느 날. 지표면에서 열기가 피어오르고 점점 더워지는 날씨가 이어지고 있었다. 방학을 앞둔 설렘으로 왁자지껄 한 무리의 아들이 교문을 향해 걸어내려 온다. 이런 홍화중학교 하굣길에 야구 5인방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문교와 효민이 함께 학교 정문을 나섰다.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고 곧장 편의점으로 달려갈 계획이었다. 밥을 먹고 나서 뒤돌아서면 배고프고, 세 걸음만 떼어도 허기지던 때가 아닌가.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섰다. 편의점 문은 딸랑거리며 손님이 왔음을 알려준다.

딸랑. 딸랑. 쉴 새 없이 딸랑거리는 문. 학교를 마친 아이들이 편의점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편의점은 금세 교복 입은 아이들로 넘쳐났고, 아이들을 타고 들어온 소음은 편의점을 가득 매웠다. 문교와 효민 역시 이 행렬에 합세했다. 둘은 다른 매대에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김밥과 햄버거가 줄줄이 진열되어 있는 냉장고로 향했다.


“오늘은 매콤한 걸로.”


문교가 냉장고로 손을 뻗었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 문교의 어깨를 잡았다. 문교는 잡고 있던 삼각 김밥에서 눈을 떼고 뒤를 돌아보았다. 여자다.

낯이 익은데 누구인지 단번에 기억이 나질 않는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자는 문교를 보고 어색하게 웃는다. 문교는 자연스레 여자아이의 가슴으로 눈이 간다.


‘표예나’


교복 명찰에 적힌 이름. 눈을 껌벅인다. 이름도 낯익네. 누구지?


“문교야, 잘 지냈어?”


목소리를 듣자 기억이 난다. 재혁이의 누나.


“어, 누나. ……안녕하세요.”


문교의 목소리를 듣고 옆에 있던 효민도 고개를 돌린다. 역시나 누나를 알아보고 꾸벅 인사를 한다.


“안녕. 효민아. 너도 잘 있었지?”

“네.”

“그거 사려고?”


예나는 문교가 들고 있던 삼각 김밥에 눈길을 주며 묻는다. 갑자기 쑥스러워진 문교는 “아니요.”라고 하며 재빨리 삼각 김밥을 원래 있던 자리에 내려놓았다. 예나는 눈웃음을 지으며 아이들이 내려놓았던 삼각 김밥을 다시 집어 든다. 그리고 걸음을 옮겨 바나나 우유도 집어 든다. 문교와 효민은 서로의 얼굴만 쳐다볼 뿐이다. 예나는 카운터로 향하더니 이쪽으로 오라는 듯이 문교와 효민에게 손짓을 한다.




“재혁이가 그렇게 되고 1년이 지났잖아.”

편의점 한쪽 구석에 놓인 테이블 사이로 예나가 문교와 효민을 마주보고 앉은 채로 말했다.

여전히 시끌시끌한 편의점. 이런 이야기를 하기에는 적당한 장소는 아니지만 밖은 더웠다. 게다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에 서서 삼각 김밥과 우유를 먹고 싶지는 않았다. 다행히 편의점 테이블에 자리가 났다. 예나는 테이블로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계산한 음식을 내려놓고 문교와 효민에게 손짓했다. 남자 아이 둘은 눈만 꿈벅일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예나가 부르는 대로 따라갔다.


“먹어.”


예나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두 아이는 선뜻 포장도 뜯지도 못한 채 서로를 바라보기만 했다.


“괜찮아. 먹어.”


예나가 재차 권하자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문교가 삼각 김밥을 들었다. 그 모습을 흘끗 보더니 효민도 삼각 김밥의 포장을 벗겨냈다. 억지로 입에 문 삼각 김밥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입 속으로 호로록 흘러들어갔다. 맛있네. 삼각 김밥은 금세 없어져버렸고 예나는 미소를 지은 채 둘을 바라보았다.


“재혁이가 그렇게 되고 1년이 지났잖아.”


아이들이 삼각 김밥을 모두 먹고 바나나 우유를 마시려는 찰나 예나가 입을 열었다. 아무도 재혁이가 어떻게 됐다고 정확하게 말하지 않았다. 마치 부정한 것이라는 듯이.

아이들은 들고 있던 바나나 우유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감히 마시지 못하고 손끝으로 바나나 우유를 만지작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예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이번 주 일요일이 7월 8일이야. 재혁이 발견한 날.”

“아…….”


어쩐지 미안했다. 이맘때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날짜까지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 것이 누나에게 미안했다. 재혁이를 잃은 가족들은 분명 작년 6월 10일에서 시간이 멈춰 있을 것이다.


“너희 혹시 와 줄 수 있어?”


예나의 제안에 다소 어안이 벙벙해진 문교가 눈을 들어 예나를 보며 묻는다.


“어디를요?”

“우리 집.”

“누나…… 이사했잖아요.”


내내 지긋이 미소 짓고 있던 예나의 표정이 풀어진다. 예나는 눈을 내리고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이사했지. 그 집에서는 못 살겠더라고. 엄마도 그러고. 자꾸 재혁이가 보인다고해서.”

“아…….”


예상 못한 대답에 문교와 효민은 시선을 맞췄다.


“너희 같이 야구 했잖아. 매주 했었지.”

“네.”

“초등학교 때부터 했으니까 꽤 오래 했네?”

“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 밑밥을 깔지?


“재혁이 가고 1년 된 날이니까 간단히 제사를 지내려고 해. 원래는 안 하는 거래. 이렇게 어린 아이는……. 그런데 내가 해주고 싶어서. 정말 간단히 라도. 그 날 잠깐 와 줄 수 있을까?”

“집으로요?”


되묻는 효민의 질문에 예나가 다시 미소를 지었다.


“응. 별거 없고 잠깐 와서 재혁이한테 인사만 해줘. 그러면 재혁이도 더 편하게 천국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너희랑…… 표건이랑 태호도 같이. 가은이도 부르려고. 가은이는 내가 연락할게.”

“아…….”


문교는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가도 되는 건가?


“네, 누나. 갈게요.”


문교는 옆을 돌아 봤다. 효민이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정말? 고마워.”


예나는 문교에게 시선을 주었다.


“문교, 너도 같이 올 거지?”


문교는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이제 와서 주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 새끼는 왜 아무 생각 없이 넙죽 대답 한 거지?


“네…….”


어쩔 수 없이 문교가 대답했다.


“누나. 제가 표건이랑 태호한테도 말 할게요.”

“정말? 그래주면 정말 고맙고.”


예나는 효민을 향해 눈웃음을 지었다.


“그럼 일요일 3시쯤에 보자. 학교 앞에서 기다릴게.”




“너 이 새끼. 가은이 때문이지?”


예나가 돌아가고 둘만 남자 문교가 효민을 향해 인상을 쓰며 말했다.


“응? 아니야. 가은이 때문에 아니야. 야, 친구가 그렇게 됐는데 한 번 가봐야지.”

“미친……. 너 지금까지 잊고 있었잖아.”

“너도. 그래서 더 미안하지 않냐? 재혁이 그렇게 되고 우리 다 잊고 있었잖아.”


효민의 받아치는 말에 문교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표건이랑 태호한테도 연락하자. 가은이는 어쩌지?”


효민이 스마트폰을 꺼내며 말했다.


“어쩌긴 뭘 어째? 누나가 연락한다고 했잖아.”

“아……. 그랬나?”

“이 새끼. 가은이 때문 맞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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