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드림캐처 20화

드림 캐처

방문객

by 포뢰

지난 주 합창대회가 끝나자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간다. 매일 반복되는 하루들.

종례를 한다. 한 아이가 눈에 들어온다. 정가은.


저 아이는 내가 지금까지 손댔던 아이들과 다르다. 꽤 똘똘한 아이. 사랑이 고프고 관심이 그리운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지만 어쩐지 자꾸 눈이 간다. 하나씩 뜯어보면 별다를 것이 없는데 말이지.

어쩌면 유라를 보내고 1년 동안 조용히 자숙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시선이 머무는 것을 의식하고 애써 눈길을 돌린다. 멍청해 보이는 다른 아이들이 눈에 들어온다. 동태 같은 아이들.

큼큼. 목을 가다듬고 다음 공지사항을 읽어준다.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들자 또 그 아이가 눈에 들어온다.

대체 뭐가 다르지? 의아하다. 여자 아이와 시선이 얽히자 사타구니 근처가 간지럽다. 억지로 시선을 떨군다. 저 아이는 안 돼. 머릿속으로 되뇌지만 억누른 생각과는 다르게 손바닥이 화끈거린다. 교무실에서 저 아이의 허벅지를 밀어내던 순간과 손등을 어루만지던 순간이 떠오른다.


“오늘 종례 끝.”


교실을 나오자 의자와 책상 끄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들은 왁자지껄 떠들면서 가방을 메고 교실 밖으로 쏟아져 나온다. 그 가운데 정가은이 있다. 어쩐지 나를 보더니 반대쪽으로 돌아간다.

쎄한 느낌이 목덜미를 타고 흐른다. 눈치 챘을 리가 없는데? 그러고 보니…… 재혁이 친구였었지? 소꿉친구. 그래서 더 끌렸나? 머릿속에서 더러운 상상이 연기가 피어나 듯 떠오르려 하는데 방송에서 이름이 불린다.


“박정호 선생님, 잠시 교무실로 와주세요. 박정호 선생님, 잠시 교무실로 와주세요.”


무슨 일이지? 이렇게 방송으로 찾을 만큼 급한 일인가? 계단을 내려가면서 재혁이가 떠오른다. 오늘은 재혁이 어머님한테 전화를 좀 해야겠네. 경찰이 뭔가 찾아낸 것은 없는지. 1년 넘게 지난 지금 나와 연결된 것은 찾을 수 없겠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그래. 나쁠 건 없지. 얼마 전에도 경찰한테 전화가 오지 않았나? 차종이 뭐냐고 물었잖아. 뭘 알아냈나?





어르고 달랠 생각이었다. 그 쪼그만 아이가 무슨 소문을 들었다한들 제 힘으로는 아무것도 못 할 거라 생각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사탕발림으로 입 다물게 하는 것이 뭐 어렵겠는가.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런데 그 자식은 달랐다. 쥐방울만한 것이 분노를 표출하며 애지중지 아끼던 놀잇감을 놓아주라고 말하고 있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말을 쉽게 꺼내다니. 신경에 거슬리는 말을 하나씩 꺼내놓으며 약속을 하라고 종용하는 그 꼴을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약속? 그깟 약속 백 번도 해 줄 수 있다. 그런데 이 자식은 지키지 않았을 경우에 대비해 자신의 계획을 늘어놓았다.

“부모님한테 말할 거예요.”, “교장선생님은 아세요?” 등등.


게다가…… 유라와 전 직장 일까지. 알아서 득이 될 일이 아니었는데. 때로는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 중의 하나라는 것을 알려줄 때였지.




박정호 선생은 계단을 내려가며 그 때 일을 떠올렸다. 재수 없게 왜 지금 이 일이 생각나지?

요즘 가은이와 다른 아이들이 몰려다니는 꼴을 봐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생각이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박정호 선생님은 생각에 잠긴 채 교무실 문을 열었다. 교무실 한 쪽 면을 차지한 작은 테이블에 남자 둘이 앉아있었다. 한 명은 처음 보고, 한 명은 낯익지만 누군지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교무실에 들어온 박정호 선생님을 보고 미술 선생님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남자들도 일어섰다. 미술 선생님이 총총 걸음으로 걸어오더니 난처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선생님, 저…….”


그때 두 명의 남자 중 한 명이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듯 어깨를 밀며 가까이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박정호 선생님이시죠?”

“……네.”


기억이 났다. 목소리를 들으니 기억이 밀려왔다. 경찰.


“오랜만에 뵙네요. 한창수 경장이라고 합니다.”

“네, 경장님. 오랜만입니다.”

“잠깐 시간 괜찮으십니까?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요.”

“네, 그럼요.”

“잠깐 저 쪽으로.”

“네, 괜찮으시면 가면서 얘기 할까요?”

“그러실래요?”


그가 웃으며 말했다. 다른 남자는 조용히 뒤를 따라 오고 있었다.


“송유라에 대해 묻고 싶어서요. 기억 하시죠?”


대답할 수 없었다. 잊고 있던 그 이름을 듣자 손바닥에서 땀이 배어 나온다. 느낌이 왔다. 내가 도망갈 수 없는 덫에 걸렸다는 것을.





epilogue


각자의 집에서 뉴스를 보던 아이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잡혔다. 드디어.

재혁이를 맡았던 담임선생님이 범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아줌마와 아저씨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가은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배신감이라는 단어는 너무 순화된 표현이 아닐까?


“그런데…… 누가 신고했어?”


옆에 앉아 있던 이모가 물었다.


“어? 몰라.”

“몰라? 너희가 신고 한 거 아니야?”


가은은 눈을 깜박였다. 그러게. 누가 신고 했지?


“몰라. 신고 했으면 했다고 말했을 텐데……. 그러고 보니 아무도 그런 말을 안했네?”

“그럼 경찰이 알아냈단 말이야?”

“어? 그런가?”


가은은 잠시 생각해보았지만 누가 신고를 했다거나 제보를 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었다.


“이모.”

“응?”


이모는 텔레비전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아직도 내 주변에 재혁이가 있어?”


이모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가은을 바라보더니 주위를 둘러봤다.


“몰라. 없는 것 같은데?”

“그래? 범인을 잡아서 하늘로 올라갔나?”


이모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랬으면 좋겠다.”




모두 잠 든 밤. 홀가분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든 태호는 꿈을 꾸었다.


왼손에는 글러브를 끼고, 오른손에는 야구공을 들고 등으로 유리문을 열어 편의점에 들어왔다. 거침없는 발걸음으로 냉장고 앞에 선 태호는 시선을 음료수에 고정한 채, 냉장고 문을 열기 위해 오른손에 잡고 있던 야구공을 글러브 볼 집 안에 넣으려 했다.


“어?”


야구공이 글러브에 닿지 못했다. 옆을 돌아보자 재혁이가 한 손에 태호의 야구공을 든 채로 웃으며 서 있었다.


“……야.”


태호는 놀라움과 반가움이 뒤섞인 채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


“야. 너…….”


말을 맺을 수가 없다. 코끝이 찡해지면서 눈물이 나오려하고 있다. 재혁이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회색 후드 집업과 반바지를 입고 있는 재혁이. 그 날과 똑같은 옷차림이다.


“야…….”


울지 않기 위해 주먹을 말아 쥔다.


“미……미안해. 재혁아…….”


기어이 눈물이 흐른다. 지금 울어버리면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할 텐데……. 태호는 울음을 억누르고 천천히 한 마디씩 말했다.


“그 날…… 널 봤다고…… 말하지 못해서…….”


눈물이 떨어진다.


“정말…… 미안해.”


꿈인데……. 지금 나는 꿈을 꾸고 있는데. 하지만 재혁이는 마치 살아있기라도 한 것처럼 생생하다. 우리가 어제 야구를 하고 헤어진 것처럼 멀쩡하다.


“미안해…….”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는 태호에게 재혁이 야구공을 건넨다. 하지만 태호는 야구공을 받을 수가 없다. 눈물 때문에 대답은커녕 재혁이의 모습도 보기 힘들다.


“미안해. 재혁아.”


재혁이는 태호의 손을 잡아 손바닥 안에 야구공을 넣어준다. 그리고 태호를 마주보지만 태호는 재혁이가 웃고 있는지 화가 났는지도 알 수가 없다. 빌어먹을 눈물 때문에 흐릿하게 보일 뿐이다.

마침내 재혁이가 잡고 있던 손을 내리고 태호를 향해 말한다.


“용기 내줘서 고마워.”


재혁이의 말에 태호는 고개를 흔든다. 야구공을 잡고 있던 팔을 들어 옷소매로 눈물을 닦는다.

아니야. 나는 아무것도 못했어. 너를 위해서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어.

숨을 들이마시고, 눈물을 닦고 재혁이를 향해 입을 열었다.


없다.

아무것도 없다. 재혁이가 서 있던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태호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재혁아.”


작은 소리로 재혁이를 불렀다.


“재혁아!”


조금 더 큰 소리를 재혁이를 다시 불렀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재혁아……”


큰 소리로 부르려고 했는데…… 눈물이 뒤섞여 뭉개진 발음으로 알아들을 수 없는 이름만이 허공을 맴돈다. 이게 아닌데. 나는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이 더 많은데…….

태호는 그 자리에 선 채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쏟아낼 뿐이다.

떼구르르. 파란색 음료가 찰랑이며 떼굴떼굴 굴러온다. 플라스틱 음료수 병은 태호의 오른발 옆에 멈춘다.

태호가 간신히 눈물을 멈추고 야구공을 주머니에 넣은 후 허리를 숙여 병을 집어 든다.

재혁이와 나눠 먹었던 그 음료수. 꿈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태호는 물끄러미 음료수 병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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