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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뢰 Sep 10. 2024

늦지 않게 너에게 닿기를

뒤늦게 알게 된 진실

아무래도 내가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모양이다.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나를 휘감았다. 

10분 전까지만 해도 나는 목소리조차 들어 본 적 없는 할아버지를 상상하며 행복했다. 

내가 누나에게 질투의 대상이 되다니. 

꾹꾹 눌러 담아 힘들게 뚜껑을 닫아도 다시 열리는 쓰레기통처럼 내 감정은 

고작 마음속에만 담아둘 수 없을 정도로 환희에 가득 차 있었다. 

하늘을 나는 것 같은 기쁨을 밖으로 표출하고 싶다. 희열을 표현하고 싶다. 

하지만 누군지도 모르는 목소리의 주인에게 정희 누나라는 이름을 듣자 나는 땅으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아니야. 정희 누나라고? 불과 몇 시간 전에 얘기했던? 

내 얼굴을 만지고 나를 확인했던? 그 정희 누나? 


 “이제 괜찮아졌어. 난 다 털어냈거든.” 


귓가에 누나의 목소리가 메아리친다. 

정말 괜찮아 진 거야? 진짜…… 털어낸 거야? 그랬다면 왜? 

온갖 의문점이 발아래 가득 차 있어서 어디로도 내딛지 못하는 내가 보인다. 

믿을 수가 없어 같은 질문을 되묻는 내가 보인다. 

정말…… 누나야? 


종이 울리고 아이들이 일제히 밖으로 뛰어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오히려 움직일 수가 없다. 

창문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내가 앉은 자리까지 들린다.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막는지 소리를 지른다. 

학교가 끝날 때까지, 통학버스를 타기 위해 이동하기 전까지 나는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몸이 땅 속으로 꺼지는 느낌이다. 


시설로 돌아오는 통학버스에 누나는 없었다. 

평소와 다르게 버스는 고요했고 훌쩍이며 우는 소리만 간간이 들려온다. 


 “누나.”


버스에서 내려 시설로 돌아가는 짧은 길. 나는 누나의 친구를 부른다. 

그녀는 내내 울고 있었다. 


 “정희 누나…….”


내가 정희 누나의 이름을 말하자 그녀는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진짜인 모양이다. 


 “진짜야? 정희 누나?”

 “……응.”


그녀는 계속 울고 있다. 


 “왜?”


묻는 말에 대답이 없다. 

그녀는 여전히 훌쩍이며 울고 있을 뿐이다. 


 “뭐 아는 거 없어?”

 “너야말로 들은 거 없어? 아침에 정희랑 같이 일찍 나갔잖아. 오늘 너랑 간다고 나한테 얘기했어.”

 “아니, 별말 없었어.”


그녀가 잠시 기다렸다가 나에게 가까이 다가온다. 


 “주변에 아무도 없겠지? 모두 갔겠지?”

 “……아마도?”


그럼에도 그녀는 망설인다. 

정말 주위에 아무도 없는지 확인을 하고 싶은 건지, 말을 해도 되는지 확신이 서지 않아 망설이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녀가 훌쩍이더니 나를 찾아 작은 소리로 속삭인다.

 

 “정희 임신했대.”

 “뭐?”

 “…….”

 “아…….”


할 말이 없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오늘 아침 나를 찾아온 정희 누나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그런데 임신이라니. 도대체 누구……?


 “황 실장이 누구한테라도 얘기하면 엄마를 찾아내서 죽여 버리겠다고 했대. 그래서 아무한테도 말 못 했어. 그런데 어제 병원에 다녀왔잖아. 원장이 알아버렸어.”


누나는 빠르게 말을 내뱉는다. 그녀가 쏟아낸 말이 내 피를 멎게 한다. 

차가운 얼음물을 뒤집어쓴 기분이다. 


 “……그래서 원장이 뭐라고 했대?”


갈라진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아무 말도 안 했대. 정희한테는.”

 “……그럼?”

 “……황 실장이 죽여 버리겠다고 했나 봐.”


그러고도 남을 새끼지. 나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이 서 있었다. 

그녀가 슬프게 말을 이었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응.”


그녀가 갑자기 내 옷자락을 잡는다. 

체취가 느껴질 만큼 가까이 다가서는 게 느껴진다. 


 “정희는 알고 있었어. 엄마를 못 만날 거라는 걸.”

 “……뭐?”


예상치 못한 말에 귀가 종긋 선다. 

그녀의 말을 하나라도 놓칠 수 없다. 


 “……그럼 황실장한테…….”

 “알면서 간 거야. 알면서.”

 “……왜?”

 “나도 몰라. 언젠가 내가 물어봤었어. 엄마를 언제 만나냐고.”

 “그럼 정희 누나가 누나한테도 말했어?”

 “황실장이 엄마로 정희를 꾀어낸 거?”


그녀의 신랄한 표현에 할 말을 잃었다.


 “……응.”

 “정희는 바보가 아니야. 미련스러운 곳이 있긴 하지만 멍청하지는 않아. 처음에는 나한테도 아무 말 안했어. 어느 날…… 시설에 누가 찾아왔다고 하더라. 아마 그때까지는 황실장의 말을 믿은 것 같아.”


그녀의 말에 대꾸를 할 수가 없었다. 시설에 누가 찾아왔다고? 

흐름으로 보건데 분명 정희 누나의 엄마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찾아왔다는 사람은……?


 “……그게 누군데? 누가…… 왔는데?”

 “나도 몰라. 어쨌든 정희 엄마는 아니었던 것 같아. 정희는 그 후로 입을 닫았어. 더 이상 아무 말도 안 했어.”


간신히 숨을 쉬고 있었다. 머릿속이 미친 듯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혹시…….


 “마지막으로 이 일에 대해서 말 했을 때는 뭔가를 찾고 있다고 했어. 그게 뭐냐고 물어봐도 알려주지 않았어. 찾아서 줘야한다고 이해 안 되는 말만 했던 것 같아.”

 “……뭘 찾는데?”

 “몰라. 그냥…… 이렇게 말했어. 찾아서 줘야 해. 그것 밖에 없어.”


눈물이 흘렀다. 어렵게 침을 삼키고 울먹이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아랫입술을 앞니로 깨물었다. 

고개가 떨어졌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서 누나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말…… 안 할 거지?”

 “……응.”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가슴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그녀는 잠시 내 주변을 서성이나 싶더니 발을 돌려 천천히 시설로 돌아갔다. 

멀어지는 발소리가 들린다.   

신음하듯 대답한 나는 그 자리에 쪼그리듯 주저앉았다. 

더는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왜 그렇게까지 한 거야? 왜……. 

시설에 나를 혼자 남겨두고 왜 그렇게 가버린 거냐고. 바보 같다고 원망했다. 멍청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자 기가 막힌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화를 곱씹을수록 원망이 황실장에게 옮아갔다. 

누구한테 얘기하면 엄마를 찾아내서 죽여 버리겠다고? 그럼 지금까지 찾아보지도 않은 거야? 

감언이설로 누나를 꾀어냈구나. 누나는 그것도 모르고……. 

나 역시 아무것도 모르고 누나를 질투했다. 

아니다. 누나는 알고 있었다. 

자신의 바람이 헛되다는 것을. 

그런데도 나는 누나에게 모진 말을 퍼부었구나. 

나는 스스로를 저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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