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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뢰 Sep 06. 2024

늦지 않게 너에게 닿기를

죽음

 “무슨 지원금?”


누나는 말이 없었다. 


 “무슨 지원금?”


나는 누나에게 소리를 질렀다. 

이제 내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나에게 할아버지가 있었다니. 이 세상에 피붙이가 남아 있었다니! 

그런데 왜 원장이 막는 거냐고.


 “지원금 말이야. 우리는 다 나라에서 지원금이 나온대. 사람 한 명당 얼마씩. 

그런데 우린 장애가 있으니까…… 다른 사람보다 돈이 더 많이 나온대. 

네가 할아버지한테 가면 그 지원금을 받을 수가 없잖아. 그래서 원장이…….”

 “악!”


나는 분하고 억울한 마음에 소리를 지르고 악다구니를 써댔다. 

이 무슨 불합리한 처사인가. 

그 원장이라는 년이 고작 돈 때문에 이런 짓을 저지르고 있단 말인가?


 “말도 안 돼! 돈 때문에? 그깟 돈 때문에 내가 여기에 있어야 한다고? 나한테 할아버지가 있는데?”

 “석헌아. 잠깐만. 내 말 좀…….”

 “누나는 언제 알았어?”


화가 났다. 

최소한 나는 할아버지가 나를 찾아 왔었다라는 사실만이라도 알고 있었어야하지 않았나? 


 “누나는 언제 알았냐고? 왜 이제야 나한테 얘기해?”


누나는 말이 없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훌쩍이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내 말 안 들려? 왜 대답 안 해? 언제부터 알았냐고!”


원장과 황 실장, 그리고 세상을 향한 분노를 애꿎은 누나에게 쏟아낸다. 

나는 분한 마음에 어느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내가 누구와 함께 살지는 내가 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나를 찾는 할아버지가 있는데 왜 내가 그 사실도 모른 채, 바보 멍청이처럼 여기에 있어야 한단 말이야. 


 “석헌아…….”


지금, 이 순간 누나의 울먹이는 목소리 따위는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 

나는 화가 나서 어쩔 줄 몰랐다. 누나에게 배신감을 느꼈다. 

황 실장이라는 새끼랑 붙어먹더니 이제야 나한테 알려줘? 


 “……황 실장이 알려줬어?”


다그치듯 누나에게 따져 물었지만, 누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새끼가 나한테 말하지 말라고 했어?”


정적이 흘렀다. 


 “그 새끼를 그렇게나 믿어?”


이를 악물며 더러운 것을 내뱉듯이 말을 뱉어낸다. 


 “누나가 믿는 황 실장 그 새끼가 누나 엄마한테 보내준다며? 그런데 누나는 왜 아직도 여기 있어?”


나는 분노에 잠식됐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들을 쏟아내며 누나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내가 얼마나 멍청한 짓을 했는지. 내가 황 실장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나는 씩씩대며 분노를 토해냈다. 

아무 잘못도 없는 누나에게. 


 “엄마한테 가려고 밤마다 황 실장한테 간 거 아니야?”


메마른 감정의 차가운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내가 이렇게까지 냉정하고 차가운 놈이었나? 

하지만 누나는 내 매몰찬 말들을 모두 받아냈다. 어떠한 반박의 말도 꺼내지 않았다. 

잠시 둘 사이에 적막이 흐르고 마침내 누나가 입을 열었다. 


 “맞아. 엄마한테 가려고 그랬어. 그런데 시설에 찾아온 사람은 우리 엄마가 아니었어.”


누나의 목소리가 아까와 달랐다. 

무엇인가 결심한 사람처럼 망설이지 않고, 떨리지 않고, 흥분되지 않은 어조로 차분하지만 강하게 말했다. 


 “네 할아버지라는 것을 안 것도 순전히 우연이었지만 황 실장님이랑 같이 있을 때 알게 된 것도 맞아. 

실장님이 너희 할아버지가 가고 나서 도둑놈이라고 욕했거든. 내 돈 줄 훔쳐 간다고. 

너는 시설이 공짜로 운영되는 줄 알았어? 우리는 그저 돈 줄이야. 그러니까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우리는 여기에서 그런 존재야. 그들이 우리를 가족이라고 생각한다고 착각하지 마. 

할아버지한테 가고 싶으면 내가 준 USB 잘 챙겨둬.”


누나의 목소리 뒤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시설 아이들일 것이다. 벌써 등교 시간이 다 된 모양이다. 

누나도 그 소리를 들었는지 잠시 말을 끊었다가 내 옆에 바짝 서서 작은 목소리로 이어 말했다. 


 “난 아무것도 얻지 못했어. 그러니까 너라도 할아버지랑 같이 살아. 일이 끝날 때까지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고. 가족에게 돌아간다는 건…… 여기에서는 말도 못 할 정도로 질투심을 불러일으킬 테니까. 

나도 그랬고.”

 “근데 지금은 괜찮아? 왜 말해주는 건데?”

 “……이제 괜찮아졌어. 난 다 털어냈거든.”


주머니에 손을 넣고 USB를 만지작거리며 누나에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


 “USB에 뭐가 들어 있는데?”


버스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들은 이미 우리 옆에 와 있었다. 

아이들이 버스를 향해 걸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발밑에 자갈이 밟히는 소리. 

누나가 숨을 내쉰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USB가 어떻게 나를 도와준단 말인가.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며 내내 생각했지만,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누나는 그 후 어떠한 힌트도 주지 않고 버스에서 내려 나를 피하듯 멀리 떨어져 학교에 가버렸다. 


할아버지라니.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몰랐던 존재로 인해 나는 줄곧 흥분 상태였다. 

나에게 가족이 남아 있다니. 그것도 할아버지가 남아 있어 나를 찾고 있다니. 

설렘과 기대로 나는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수업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였다.


중소도시 변두리에 위치한 작은 학교는 일반 학급과 특수 학급으로 나누어져 있다. 

운동장을 함께 쓰는 중, 고등학교. 

우리 시설에 있는 아이들은 모두 이 학교 특수 학급에 있다. 

반은 두 개. 누나와 나는 다른 반이다. 

등굣길에 누나에게 들은 말로 인해 나는 하루 종일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가 나를 찾아왔었다는 말이 온종일 나를 따라다녔다. 

이건 행운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그런 행운이 나에게 찾아왔다니. 


그러다 문득 다 털어버렸다던 누나의 말이 떠올랐다. 

나를 질투했다던 누나. 

황 실장이 누나에게 엄마를 찾아준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어땠나? 

나도 누나를 질투하지 않았나. 

시설에서 질투라는 감정은 발에 차일 정도로 흔한 감정이다. 

누군가에게 후원자가 생겼다는 말만 들어도 아이들은 서로를 질투했다. 

누나가 한 말도 이해가 된다. 


이런 생각에 잠겨 있는데 갑자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책상과 의자가 밀리는 소리. 분주하게 움직이는 아이들의 발소리. 이어 비명도 들린다.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다. 

비명은 우리 반에서만 나는 것이 아니다. 

옆 반과 아래층, 위층 가릴 것 없이 여자들의 비명이 들리기 시작한다. 

뭐지?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엉거주춤 일어나 소리를 찾기 위해 좌우를 두리번거린다. 


 “너희 창문에서 떨어져. 자리로 돌아가!”


선생님이 고함을 지르다시피 큰 소리로 말한다. 

무슨 일이야? 뉴스에서만 듣던 괴한이라도 나타났나? 이런 시골 학교에? 

아니면…… 지진? 진동은 느끼지 못했는데? 


 “뭐야? 무슨 일이야?”


나는 누구에게라고 할 것 없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하지만 아무도 나에게 대답해주지 않았다.


 “야! 너 거기! 자리로 돌아가!”


선생님의 지시에도 웅성거리는 소리는 더욱 커졌다. 

중간중간 울먹이는 소리도 들렸다. 답답하다. 

대체 무슨 일인데?

손을 휘저으며 소리가 크게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며 소리 쳐 물었지만 

다들 웅성이며 정신이 없는 것 같았다. 


 “누가 떨어졌대.”


어디선가 들려온 숨죽인 목소리.


 “뭐? 누가?”


대답이 없다. 

누가 말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누가 떨어졌는데? 누군데?”


웅성거리는 소음으로 인해 목소리의 주인을 알 수가 없다. 

답답함에 속이 터질 지경이다. 

누가 학교에서 떨어졌을까? 사고인가? 


비명이 다소 잦아들었다. 

커튼 치는 소리가 들렸다. 

선생님이 누군지 모를 아이를 창문에서 떼어내느라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것 같다. 


 “죽은 것 같대.”


내 왼쪽. 

창가와 가까운 곳에서 속삭이며 말하는 소리. 

분명 나에게 하는 말은 아니다. 

그러기엔 거리감이 있다. 


 “누가? 누군데?”


누구인지 모르지만 살아있기를. 제발 사고이기를. 

도대체 학교에서 누가 죽는단 말인가. 

나는 고개를 붕붕거리며 흔들었다. 누가 좀 알려줘. 

마침내 웅성거리는 목소리 사이로 이름이 들렸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정희 누나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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