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뢰 Sep 18. 2024

길고양이 밥을 주고 있습니다.

고양이는 사랑입니다. 

 "엄마, 노란색 고양이가 있는데 너무 말랐어."

 "고양이를 어디서 봤는데?"

 "지하 1층에서 나가는 주차장."

머리가 복잡하다. 딸아이가 길고양이를 본 모양이다. 목격했다던 장소도 어디인지 대충 알겠다.

 "엄마, 근데 고양이가 나한테 와서 막 비볐어."

 "성묘야?"

 "아니, 새끼."

아....이런. 딸의 말을 종합해보면 굶주리고 마른 새끼 고양이가 딸의 발목에 몸을 부벼댔다는 뜻이다.

 "사료 좀 갖다 줘. 고양이 용품 넣어두는 서랍있잖아. 거기 열면 샘플 사료들 많아."

 "아무거나 갖다 줘도 돼?"

 "새끼라고 했으니까 애기들 먹는거, 입자 작은 걸로 한 봉 갖다 줘."

 "응."


뭘 어쩔 생각은 아니다. 우리 집에는 이미 고양이 두 마리가 자리를 잡고 있던 터라 더 이상 들일 수는 없다.

심지어 딸이 봤다는 고양이는 일명 코숏이라 불리는 고양이일테고 함께 사는 남편은 코숏을 싫어한다. 

키우고 있는 고양이는 두 마리 모두 브리티쉬 숏이었고 남편의 취향에 따라 애견샵에서 분양받았다. 


처음 고양이를 데리고 왔을 때는 아무 것도 몰랐기 때문에 돈을 주고 반려묘를 데리고 온 다는 사실에

조금 찝찝했을 뿐이었지만, 둘째를 들였을 때는 이것 저것 들여다 본 상태라 내가 반대를 했다. 

포인핸드만 들여다 봐도 많은 고양이들이 유기되거나 길에서 생활하고 있고 특히 새끼고양이는 죽는 경우가

정말 허다했다. 일년에 두 번의 번식기를 보내고 나면 보호소는 그야말로 아깽이 대란이었다. 

그런 아가들 중 하나를 데리고 오고 싶었다. 다 구할 수는 없지만 한 마리라도 데리고 와서 살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남편의 반대는 더욱 심했다. 격리기간을 거친다해도 집에 이미 고양이가 있는 상태라 불안하다, 길에서 살았던 아이들이라 어떤 질병이 있을지 모른다. 

뭐, 이해한다. 그럴 수 있지. 당시 우리는 첫째를 들인지 고작 두 달 남짓이라 초보집사였고 더더군다나 남편은 고양이를 이해하지 못했다. 골골송을 내는 첫째를 보고 "혹시 폐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닐까?"라고 했던 사람이니....이런 남편을 보고 오히려 놀랐던 건 나였다. 왜 이런 사람이 고양이를 들이자고 했을까? 

답은 딸이 좋아해서였다는 지극히 간단한 결론.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국 우리는 애견샵에서 또 둘째를 분양 받았고, 두 마리의 고양이를 키우면서도 나는 항상 길고양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물론 그들은 모르겠지만 말이다. 

가방에 샘플 사료를 넣고 다니는 이유가 그 중 하나다. 우연히 마주치는 길고양이들은 통통한 아이보다 비쩍 마른 아이들이 대부분이었고 그 아이들에게 일회성이지만 사료를 나눠주고 싶었다. 

문제는 항상 목표지향적이고(앞만 보고 걸어감), 아침형 인간(밤에 일찍 잠)인 내 성향 때문에 길고양이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도대체 캣맘과 캣대디들은 어떻게 고양이들과 마주치는 것일까.(나도 그들처럼 되고 싶다기 보다 감사한 마음이 더 큰데 어찌됐건 신기하기는 하다.)


퇴근하고 가방에 항시 넣어서 다니는 샘플 사료를 하나 챙겨 딸이 고양이를 봤다는 곳에 가 보았다.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러 간다고 하고 샘플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없었다. 

아니, 이 정도면 나는 길고양이 퇴치자가 아닐까? 애정 듬뿍한 내 마음과는 달리 고양이는 나를 싫어하나보다.

헛웃음이 날 정도다. 


다음 날 아침 출근길. 

나를 만나기만 하면 사료를 줄텐데 너는 왜 모습을 안 보이니. 딸이 고양이를 목격했다던 장소에 도착하자 초등학교 3학년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고양이에게 츄르를 주는 모습이 보인다. 아! 저 고양이구나! 

 "아들, 고양이 주려고 츄르 챙겨왔어?"

처음 보는 아줌마가 말을 걸자 그 아이를 나를 올려다본다. 

 "네."

 "착하네. 나도 사료 좀 갖고 왔어."

 "지금 몇 시에요?"

 "8시."

 "저 학교 가야 돼요. 안녕히 계세요."

엥? 남자아이는 주던 츄르도 바닥에 팽게친 채 신발주머니를 들고 가버렸다. 이게 무슨 일이냐고. 

바닥에는 절반 정도 먹다 남은 츄르와 고양이만 남아있었다. 나는 버려진 츄르를 집어서 남김없이 고양이에게 쭉쭉 짜주었다. 배가 고팠는지 고양이는 열심히 츄르를 먹었다. 그리고 가방에서 샘플사료를 뜯어서 손바닥에 올려서 고양이에게 들이밀었다. 킁킁 거리면서 냄새를 맡더니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아. 고양이는 딸내미 말처럼 너무 말라있었다. 털이라도 있어서 이 정도지 털 빼면 꼬챙이같을 것 같다. 

내 손바닥은 고양이침 범벅이다. 얼마나 급하게 먹는지 작은 알갱이인데도 중간중간 사료가 목에 걸리는지 켁켁 거린다.

 "괜찮아, 괜찮아. 천천히 먹어. 천천히."

물론 알아들을리 없다. 그래도 먹는 내내 다독이며 천천히 먹으라고 말해준다. 

완전 새끼는 아니고 6개월은 넘은 것 같다. 

고양이는....안타깝지만 예쁜 외모는 아니었다. 물론 마르고 바깥생활을 해서 더욱 그래보일 수 있지만 흔히 보이는 코숏인데다 더 볼품 없는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울음소리 또한 목이 많이 쉰 것처럼 그르릉 거리는 소리가 났다. 이미 손을 탔는지 사람 손길도 거부하지 않았다. 먹는 내내 주위를 경계하면서 급하게 사료를 삼키는 모습이 안쓰러웠지만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라고 선을 그었다. 집에 데리고 갈 수는 없었다. 


다음 날. 집에서 10분 일찍 출발한다. 직장인들은 공감할 것이다. 아침 시간 5분이 얼마나 소중한지. 특히 애들까지 챙겨야 하는 나 같은 직장맘은 더욱 그럴 것이다. 샘플 사료 한 봉을 챙겨 어제 만났던 곳으로 향한다. 고양이는 SUV 차 밑에 웅크리고 있다. 오늘도 있구나. 아침에만 이 곳에 있나? 사료봉지를 흔들자 쉰 목소리로 '아옹, 아옹' 하며 못생긴 얼굴을 들이민다. 하....안쓰러우면서도 이쁘다. 

덕분에 매일 아슬아슬하게 출근시간을 지키며 회사에 도착한다. 

기호성 테스트를 한다고 샀던 샘플사료들. 우리 집 고양이들은 먹지 않는 사료들. 고맙게도 이 고양이는 가리지 않고 모두 먹어주었다. 

나 또한 매일 아침마다 주차장에 쪼그리고 앉아서 아이를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다. 갈 수록 예뻐보이기도 한다.


밤에는 네가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아침만 챙겨주고 있어. 안다면 하루에 두 번은 챙겨줄 수 있을텐데.

굶지 않도록 사료를 챙겨주면서도 집에 데리고 오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또 한가득이다.  부디 무탈하게 자라거라. 내가 내년에 TNR도 신청해줄게.



고양이는 모르고 나만 알고 있는 추억이 생겨버렸다.

이전 03화 투고 결과는 참담한 실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