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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n Jan 13. 2024

나를 성장하게 한 질문들

4년 간의 디자인 커리어 돌아보기

영화님(_y.note)을 처음 2020년쯤 토스피드 촬영 때 뵙고, 그 이후로 퇴사하고 사업하시는 것을 인스타그램을 통해 보면서 응원해 왔다. 한동안 서로 안부와 응원만 주고받다가 이것저것 자료를 받은 게 많아서 내심 쌓여있던 부채감에 이제는 한 번 뵙고 이야기 나누고 싶어 져서, 디자이너 회고 모임 모집글에 손을 번쩍 들었다.



사전 숙제가 있었는데, 질문의 양이 많고 꽤나 빡빡하게 느껴져서, 진지하고 성실한, 이제껏 프로젝트를 잘 정리해 온 사람들만 모임에 나오는 게 아닌가 조금은 겁이 났는데 실제로 참여해 보니 다들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라 조금 안심이 되었다. 퇴사하고 프로젝트를 정리한 지 한참 된 터라 모임에 대한 두려운 마음에 영화님께 참여를 못할 것 같아 죄송하다고 길게 쓴 편지를 메모장에 적어놨다가 그냥 별 말 못 하더라도 가자고 결심해서 결과적으로 너무 좋은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다. 






워크숍 D-day


워크숍은 나의 강점과 관심사를 적어 서로 소개하는 방식으로 시작되었다. 윗 줄에는 내가 생각한 나의 강점을, 아랫줄에는 나의 관심사를 적었다. 


강점


학교와 회사에서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나의 강점은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비주얼을 만들어내는 그래픽 디자인과 사진 역량이었다. 평소 친구들 사이에서 추진력이 있고 뭐든 빠른 편이라 유노윤호 또는 불도저라는 별명을 가지기도 했는데 그래서 속도와 실행력을 강점으로 적었다. 회사 다닐 때는 막상 인지하지 못했었는데 토스 때도, 센드버드 때도, 지금 함께 일하는 분들도 당시에 거의 30대 이셨고 그 안에서 나 혼자 20대일 때가 많았다. 또래보다는 나보다 6-7살 정도 많은 분들과 늘 함께 일하며 조금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했기에 아직 어린 나이, 그에 비해 가진 다양한 경험과 넓은 인간관계를 또 다른 강점으로 적었다. 글을 정리하면서 더 생각해 본 강점에는 아직 미혼이고, 소속이 없는 프리랜서이면서 운전 가능자이기에 기동성과 시간 유연성을 추가할 수 있을 것 같다.


관심사


최근 회사를 나온 이후 관심을 갖게 된 프리랜서1인 창업을 첫 번째로 적었다. 관심사를 이야기하면서는 연애 이야기도 나왔다. 대학생 때는 무조건 자만추를 추구했던지라 대외활동과 봉사를 엄청 열심히 했다. 대외활동의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니 마케팅 대외활동으로 틴더 앰베서더를 하게 되었고, 그 이후로 소개팅 어플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서 정말 다양한 어플을 경험해 봤다. 휴학할 때 했던 창업 동아리에서는 그룹 액티비티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그룹 미팅 서비스를 만들어봤고, 학교 수업에서도 소개팅 어플로 20명을 만나보고 그에 대한 인터뷰 및 기록을 해보고 싶다며 교수님께 당차게 프로젝트 제안서를 들고 갔지만 교수님이 자신은 별로 궁금하지 않으시다며 기각을 당했던 경험도 있다. 

휴학을 했던 2019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스트레스 해소 방법으로 운동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식단, 피부, 체형관리 등의 자기 관리에 관심이 점점 커졌고, 시간이 갈수록 나에게 어울리는 이미지와 스타일이 무엇인지 알아가고 있는 것 같다. 관리를 단기적으로 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나의 삶 속에 가져갈 수 있도록 지속가능한 라이프스타일에 관심이 많다. 또한 추후 커리어에 있어 미국으로 넘어가고 싶어서 글로벌을, 이 모든 여정을 글로 남기는 것이 의미 있고 즐거워 글쓰기를 적었다. 





이후에는 각자 가진 프로젝트 중 2-3가지를 골라서 회고를 공유해 보기로 했다.

1. 프로젝트명 
2. 목표 
3. 달성여부 (0~10) 
4. 배운 점 
5. 처음부터 다시 한다면?


내게 의미 있었던 세 가지 프로젝트는 시간 순으로 토스, 졸업전시, 그리고 센드버드였다. 프로젝트를 정리하다 보니, 나의 커리어 여정도 자연스럽게 정리가 되었다. 더 돌아가서 처음을 떠올렸을 때 프로젝트를 하기에 앞서 스스로 했던 질문들이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토스에 가기 전 했던 첫 번째 질문은 아래와 같았다.




#1

UXUI 디자이너가 아니더라도 IT기업에 취업할 수 있을까?


내가 다녔던 학교에서는 학생 때 상업적인 작업보다는 작가적인 작업을 하는 걸 선호하는 분위기라 느꼈다. 학교에 브랜딩 소모임이 있었지만 나의 어린 생각으로는 저학년 때부터 UXUI, 브랜딩을 하는 게 취업만을 위한 뻔한 활동으로 생각해 흥미가 없었던 것 같다. 나는 입학할 때부터 이미지 제작에 관심이 많았고, 사진과 영상을 하는 소모임에 들어가 비슷한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며 취업과 별로 관련이 없는 예술에 가까운 작품 활동을 주로 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사진이나 영상업계에서 일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학교 다닐 때 도왔던 선배들의 졸업 작품에서의 경험과 여러 아르바이트 경험을 통해 도제식, 끈끈한 단체활동이 나와 맞지 않는다 느껴 이 옵션도 재껴두었다. 그러다 3학년 마치고 휴학하고는 취업을 할 만한 포트폴리오가 없는 것 같아서 부랴부랴 신촌 연합 창업 동아리 CEOS, 디프만 등 실무에 근접한 포트폴리오를 쌓을 수 있는 동아리에 들어가 프로덕트 디자인을 경험했다. 그 계기로 아직까지 친하게 지내는 좋은 팀원들을 만났지만, 작업 프로세스와 협업 방식이 내 고유한 기질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UXUI 또한 옵션에서 접어두게 되었다. 당시 네이버 디자인캠프나 삼성 디자인 멤버십을 하는, 큰 기업에 취업을 잘할 것 같은 친구들은 나와 굉장히 멀어 보이기도 했다. 그러던 와중, 학교 구인구직 커뮤니티를 통해 토스의 커뮤니케이션팀 디자인 어시스던트를 뽑는다는 구인글을 봤고, 그렇게 2019년 10월, IT회사에 콘텐츠 제작 및 사진 촬영, 보정 등 어찌 보면 사진 덕분에 처음 발을 들일 수 있었다.


커뮤니케이션팀 콘텐츠 디자인 어시스던트로, 이 역할로는 첫 번째 어시스던트였다. 좋은 팀원분들을 만나서 4학년에 복학하고도 시간표 따라 근무 시간을 조정하면서 일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다. 당시 커뮤니케이션 팀 소속으로 미디어에 필요한 이미지, 인포그래픽을 만드는 업무와 기사 사진 촬영을 진행했고, 콘텐츠 팀으로 점점 커지면서는 초기의 토스피드 이미지 제작과 유튜브 서브채널인 머니그래피의 아이덴티티, 첫 시리즈를 함께 만들었다. 후반부터는 팀 위클리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주셔서 인스타그램 활성화를 제안해 현 님과 함께 운영하며 지금의 계정으로 크기까지의 첫 발을 내딛는 기여를 했다 생각한다. 


1. 프로젝트명: 토스 콘텐츠 디자인

2. 목표 

- 토스의 사진 톤 적립

- 인스타그램 계정 활성화

- 유튜브 서브채널 시작

3. 달성여부(0~10): 8

4. 배운 점? 제대로 된 첫 사회생활로, 컴즈팀 분들께 일하는 태도와 협업방식 등을 배웠다. 본래 기질적으로 자유로운 영혼인지라 회사와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그 편견을 깨고 2년을 자유롭게 잘 다녔다. 내가 자리에 없어도 일만 제대로 한다면 회사 어디에 가서도 일할 수 있다는 점, 전사에 사진을 찍으러 돌아다니며 수많은 인터뷰에 참여해 이야기를 듣고 나만의 방식으로 회사에 기여할 수 있었던 점, 그렇게 사람들과 인터렉션 하며 쌓이는 시간들이 학교 아닌 또 다른 조직에서의 소속감과 행복을 가져다주었던 점 등 돌아보면 얻은 것이 훨씬 많았다. 무엇보다도 처음으로 사진으로 사회에서 첫 인정을 받아 지금까지도 사진 일을 이어올 수 있게 한 계기가 되었다.

5. 처음부터 다시 한다면? 초기 어시스던트라 규칙이 없어 자유롭게 누린 것들도 많았지만 속상한 일도 더러 있었다. 흐린 눈으로 덜 속상해하고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시 회사에서 2021년 초쯤 토스피드 콘텐츠들이 사진에서 일러스트로 개편되는 시기가 있었는데, 비실기로 미대입시를 거의 경험하지 않은 나는 스스로 그림을 못 그린다고 생각하던 터라 팀에 새로 필요한 업무에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토스에서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으면서 사진 역량으로는 인정을 받고 있었지만 막상 당시 팀에 필요로 하는 일러스트레이션 역량은 부족한 스스로가 회사, 그리고 팀에 충분하지 않은가 하는 불안과 회의가 있었다. 당시에는 다들 바쁘시기도 했고, 때로는 방어적인 마음에 나의 상황을 알리고 도움을 구하는데 소극적이었는데 조금만 더 용기를 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회사에 다니면서 무사히 학교를 졸업하고, 졸업 전시도 마쳤다. 졸업할 때가 마침 코로나 시즌이라 이례적으로 온라인으로만 전시를 하게 되었고, 처음으로 회사 사람들에게 나의 디자인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 긴장했던 것 같다. 회사를 다니면서, 함께 살던 룸메이트와 팀으로 전시를 준비하면서 늘 일정이 빡빡했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유쾌하고 즐겁게 헤쳐나가는 방법을 팀원인 민우에게 배운 것 같다. 민우와 처음 하는 팀플이 하필 졸업전시였기에 초반에 어려움이 많았지만 결국에는 각자의 역량을 활용하면서 무사히, 사이좋게 전시를 끝마칠 수 있었다. UX, 기획, 카피라이팅과 스토리텔링을 잘하는 민우는 지금 제일기획에서 아트디렉터로 일하고 있고, 비주얼라이징, 사진, 아트워크 및 아트디렉션 쪽을 담당했던 나는 계속 디자이너 또는 포토그래퍼로 일하고 있는 게 서로의 강점을 그나마 빠르게 깨닫고 협업한 덕분이지 않나 생각했다. 

 

https://www.behance.net/gallery/112424193/Treat-a-therapeutic-dining-brand-treat

졸업전시 작업 중 일부


졸업하고 2년의 계약기간이 끝나갈 때쯤, 정규직 전환평가에 임할 것인지에 대한 기로에 섰다. 2년간 이 일을 하면서 조금씩의 발전은 있었지만 앞으로도 계속 같은 일을 하면서 성장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지, 사진을 찍는 디자이너로 새로운 역할을 정의하고 만들어가야 하는 상황 속에서 스스로 로드맵을 그릴 수 있는 역량을 갖추었는지, 회사에서는 그런 나를 도울 수 있는 친절한 환경인지 판단했을 때 자신이 없었다. 퇴사하기 몇 개월 전부터는 갑자기 늘어난 어시스던트들의 인수인계와 회사 적응을 돕는 역할을 자처했다. 2019년부터 재직하며 회사 구석구석의 사정이나 업무 진행 방식, 회사에서 선호하는 사람의 유형을 체득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토스 고인 물이 되어 회사의 보이지 않는 규칙이나 사무실 안내, 업무 시 따라야 할 콘텐츠 및 사진 촬영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여러 계열사의 어시스던트 친구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평가받는 자리에서 스스로 도피를 했던 게 아닐까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돌아보면 토스를 나오기로 선택한 이후로 새로운 팀에서 소중한 경험도 쌓고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토스 톤에서 벗어난 다양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던 것 같다.





#2

회사에서 주로 사진을 찍던 내가, 브랜드 디자이너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퇴사하고는 쉬면서는 새로운 기회를 찾았다. 디자인 스튜디오의 사진을, 사진 스튜디오에서의 사진 어시와 디자인을 의뢰받았고, 디자인과 사진의 기로에서 늘 중간에 있고 싶어 했다. 스마트 스토어에 관심이 생겨 사업자 등록도 해보고, 관심 있는 팀에 콜드 콜도 보내보았지만 결과적으로 프리랜서로 약속했던 팀들과는 함께 작업을 기약하더라도 실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입금받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많았다. 당연하게도 내가 팀에 풀타임으로 온전히 헌신하지 않는 만큼 그들 또한 나에 대한 기대나 필요가 그리 높지 않았다. 


쉬면서 오는 막연함에 조급했던 나는 사진 스튜디오에서의 풀타임 제안을 응했고, 몇 주 지나지 않아 옴짝달싹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처음에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정이 쌓이고,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으며 나도 어딘가 매일 갈 곳이 있다는 것이 좋았다. 그러나 머지않아 지난 직장과 너무나 다른 근무환경, 그리고 자유롭고 싶어 하는 나의 성향상 여기는 나와 상극인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원하는 직장에서의 가치가 자유로운 시간, 판단의 자율성, 건강한 소속감, 커리어의 성장, 일하는 만큼의 보상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때부터 정말 본격적으로 IT회사 디자인 직군의 채용공고를 찾았다.


링크드인을 통해 발견한 센드버드는 토스랑 어느 정도 브랜드의 결이 비슷했고, 성장 가능성이 큰 산업인 데다가, 조직이 자율적이고, 전반적인 비주얼을 다루면서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시키는 직무라 확장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외국계 기업이라 영어를 주로 사용하는 것도 나에게 유리한 환경이자 미래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고, 마지막으로는 면접 때 만난 매니저님, 리드님께 디자인 조직 안에서 배울 점이 굉장히 많을 것 같아서 선택하게 되었다. 아래 센드버드 김동신 대표님의 유튜브 채널, '존잡생각'을 보면서도 경영진의 비전과 회사 문화에 설득되기도 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uxI9vljXw8&t=1s)


1. 프로젝트명 : 센드버드 브랜드 디자인

2. 목표 

- 브랜드 이미지 전반 리뉴얼, 아트디렉션

- 디자이너 조직 안에서 인정받기

3. 달성여부(0~10): 10

4. 배운 점? 첫 디자인팀 소속의 디자이너가 되었다. 나를 공식적으로 담당하며 나의 업무와 요구, 목표치를 관리해 주시는 매니저가 생겼고, 디자인적 영감과 배움, 디자이너로써 스스로의 역량에 대한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외국인 팀원들과 영어로 업무를 진행하고, 같은 팀 사람들이 전부 해외 유학 경험이 있는 등 글로벌한 환경에서 일하면서 언젠가는 외국에 가고 싶다는 꿈에 한 발 다가선 것 같았다. 한 달에 30만 원이나 되는 어학 지원금으로 스스로 부족하다 느꼈던 스피치도 배우고 다양한 영어스터디에 참여해 보며 학교, 회사 외 사람들과 만날 수 있었다. 센드버드 덕분에 본가로 돌아와 가족들과의 오랜 공백을 회복했고, 이후 커리어에서는 미국에 가고 싶다는 꿈을 키울 수 있었다. 

디자인과를 졸업했지만 사회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며 역량을 쌓은 경험은 부족했기에 센드버드에서 브랜딩, 포토그래피, 그 안의 일러스트레이션, 3D, 웹사이트, 캠페인, 가이드라인 등의 다양한 업무를 접하며 커리어 만족도가 점차 높아졌다. 이전에 토스피드를 만들면서 언젠가 회사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싶다 생각했는데, 센드버드에서 그런 갈증을 해소하고 프로젝트 진행 과정과 그 결과를 공식적으로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풀재택을 하며 근무 환경에 대한 자율성이 더욱 높아지고 운전실력과 여행 경험이 부쩍 늘어난 것에 반해, 사람들과의 대면 교류가 부족해져 외향형에서 내향형인 사람이 되었고, 스스로 오프라인에서 상호작용하면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기도 했다. 

5. 처음부터 다시 한다면? 미국 트렌스퍼를 조금 더 적극적으로 요구했다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한국 오피스에 입사해서 미국으로 건너가려면 회사에서는 몇 배의 돈을 들여 나를 옮겨줄 명확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글로벌 기업에 가더라도 트렌스퍼로 해외로 넘어가기까지는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계약직으로 입사해 정규직 전환이 되고, 스톡옵션을 받는 등 한 단계씩 잘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레이오프가 돼서 끝이 아쉽기는 했다. 그래도 이곳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진로가 바뀌었고, 스스로 떳떳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디자인 커리어를 쌓을 수 있었다.





#3

4년의 경험을 가진 지금, 회사 밖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스스로의 정체성을 이야기할 때, 학교를 다니는, 토스에서 일하는, 토스에서 일하다가 센드버드에서 일하는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토스와 센드버드에서 일하다가 나와 자유롭게 일하고 있는 사람'까지로 변화했다는 게 돌아보면 생경하다. 쌓아온 경험과 이력이 있어서 언제든 다시 팀으로 일할 수 있고, 디자인 말고도 사진이라는 기술이 있어서 어디를 가더라도 굶어 죽지는 않은 것 같다는 믿음이 있다는 게 이전과 가장 달라진 점인 것 같다. 긴 계약직 생활, 레이오프 등 그 안에 쌓인 감정적 어려움이 많아 담담히 풀어내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이제 새로운 챕터로 접어들면서 지난 일 중 좋았던 것들을 더 크게 남기고 지나올 수 있을 것 같다.


위 질문에 대한 답을 하자면 직장인이 아니어도 답은 있는 것 같다. 최근에는 다양한 루트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배우고 있는데, 영화님의 회고 모임도 그렇고 5년 차 프리랜서 하다(free.hada)님의 개인사업자/프리랜서 회고모임에 참여하면서 직장 밖 다양한 사람들의 레퍼런스를 귀로 들을 수 있어서 내가 모르는 세상이 훨씬 넓고 일하는 방법은 다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퇴사 이후에는 이전에 함께 일했던 인연으로 새로운 프로젝트를 함께하는 경우도 있었고, 인스타그램으로만 소식을 알던 사람들과 직접 만나서 대화하며 더 친해지고 직접적으로 응원하는 사이가 되기도 했다. 결국에는 사람들과 잘 지내며 내 일을 잘하고, 그걸 온라인으로 열심히 알리면 회사 밖에서도 동료를 만들고 있고, 기대하지 않았던 좋은 결과가 메아리처럼 돌아온다는 것을 느꼈다.


지금은 회사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보다는, 이만큼 자유로워졌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가 어디일지 실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큰 것 같다. 회사 밖에서 생각보다 재밌는 기회들이 많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시간적, 체력적 여유가 생기면서 매일이 설레고 기대되는 일들로 채워지는 중이다. 프리랜서로 일하면서는 더더욱 안정적인 수입원, 느슨하게라도 소속감을 가질 수 있는 커뮤니티, 언제든 새로운 일과 사람을 맞이할 체력과 기분 관리,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로드맵 그려 동기부여하는 게 중요하다고 느끼고 있다. 

 



#1. UXUI 디자이너가 아니더라도 IT기업에 취업할 수 있을까?

#2. 회사에서 주로 사진을 찍던 내가, 브랜드 디자이너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3. 4년의 경험을 가진 지금, 회사 밖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나를 움직이게 한 건 이 세 가지 물음이었고, 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나름대로 부단히 노력해 왔다. 때마다 운이 좋게 어떤 기회와 사람들을 만나서 어찌어찌 나만의 답을 찾아 여기까지 왔다. 아직 세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답을 찾아가는 과정 중에 있지만, 영화님과의 회고모임을 통해 나의 커리어를 스토리로 연결 짓고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영화님이 토스에 오래 다니셨던지라 모임에 자연스럽게 토스 사람이 많았기에 회고에서의 비중이 컸던 것 같은데, 근무 기간이 겹치지는 않더라도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많아 즐거웠다. 온라인으로 이야기하기 어려운 고민을 털어놓고 조언을 구하기도 했고, 결과적으로 다음 단계를 선택하는데 큰 도움과 용기를 얻었다. 내년에도, 후년에도 영화님의 회고모임에 참여할 기회가 있다면 더 성장한 모습으로 참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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