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회고
작년 5월 초, 찬빈 님 소개로 맹그로브 프렌즈로 고성을 방문한 이후 7개월 만에 다시 찾은 이곳. 이번에는 남자친구와 함께 2024년 1월을 보내고 2월을 맞는 시기에 왔다. 지난번 올 때도 여름 감기에 걸려 한참 아팠었는데 이번에도 같은 약을 들고 왔다. 이번에도 3박 4일. 맹그로브 기간 동안 회사 면접도 보고 사진 작업도 하고, 친구랑 부지런히 맛집도 다니고, 실컷 낮잠도 자면서 충분히 회복했다. 혼자 있을 때에 비해 집중은 덜 됐지만 그래도 누군가와 함께 와서 매 끼니 맛있는 걸 챙겨 먹고 심심할 틈 없이 즐거웠다.
평화롭고 조용한 고성에서 돌아본 이번 1월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개인적으로는 미래를 바꿀 큰 결정을 했고, 그에 따른 큰 지출이 있었다. 앞으로 3년 안에는 미국에 가겠다는 목표를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고, 이 근황을 만나는 지인들에게 알리면서 응원을 받았다. 큼지막한 계획에 맞춰 그 사이에 어떻게 준비를 해 나아가야 할지 중장기적인 로드맵이 잡혔다.
미국과 관련한 지인들, 프리랜서를 하고 있는 친구들, 전 회사에서 친하게 지냈던 동료들과 두루 만나면서 즐거운 일들이 많이 생겼다. 회사 다닐 때보다 조금 자고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면서 주체적인 일상을 보냈는데, 이제 프리랜서니까 영업을 다닌다는 명목 하에 다양한 모임에 나가보고, 새로운 사람들과의 약속도 스스럼없이 잡고는 했다. 약속도, 하고 싶은 일도 너무 많아서 시간과 장소 단위로 투두를 만들어 정신없이 지냈고 마음이 즐거운 나머지 배가 고프지 않아 하루 한 끼 먹으며 살이 쭉쭉 빠지기도 했다.
다행인 건, 퇴사 전부터 회사와 별개로 꾸준히 하던 일이 있어서 쉬면서 감을 잃지 않도록 느슨하게 일도 할 수 있었고 새로운 파트너십의 기회도 얻게 되었다는 점이다. 일하면서는 전과 다르게 위임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각자 잘하는 게 있고, 내가 모든 걸 잘할 필요도, 그럴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내가 하는 게 마음이 편해서 그동안 꼭 잡고 놓지 못했다면, 이제는 다른 사람들을 믿고 공동의 목표를 공유하면서 내가 생각하는 기준치의 결과물을 낼 수 있도록 가이드하는 역할을 해보고 있다. 적합한 인재를 찾아 활용하고, 새로운 기회를 만들고, 조합하고, 커뮤니케이션/디렉션하는 게 디자이너로써 아트워크를 작업하는 것만큼이나 보람찬 일인 것 같다. 내가 없으면 안 되는 게 아니라 나 없이도 잘 돌아가는 구조를 만드는 것. 대체할 수 없는 사람에서 대체가 가능한 시스템을 만드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중이다. 이제 일을 시작한 지 5년 정도 되었으니, 앞으로 가게 될 회사에서도 시니어가 될 준비를 조금씩 하고 있는 것 같다.
생일
만 27세가 되었다. 스스로 느끼기에 점점 단단하고 안정적인 사람이 되고 있다. 새로운 도전이 두렵지 않고 어떤 사람들과 있어도 나로서 그 공간에 존재하는 게 당당하다. 사람들을 만나고, 연결하고, 새로운 기회를 만들고, 도전하는 일들이 어렵지 않은 요즘, 낯선 환경에서 내 주변의 것들을 흡수해 내 것으로 만들고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데 에너지를 쏟고 있다. 미국에 가면 더 많은 기회를 만나 지금은 상상할 수 조차 없는 모양으로 성장할 것 같아서 더욱 기대가 된다.
내가 몇 년 전의 나에 비해 스스로 느낄 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건 주변의 응원과 확신이 컸다. '하겠다고 한 건 정말 해내는 사람'이라 얘기해 주는 친구들이 주변에 있고, 무언가 새로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면 나는 꼭 그걸 하게 될 것 같다고 믿고 응원해 주는 주변의 말들에 또 용기를 얻었다. (고마워요!)
커리어 브랜딩
프리랜서로 나와 있어서 셀프 PR에 대한 필요성을 실감하던 차에 돌싱글즈 4 소라님의 EO 영상을 보고 깊이 공감했다. 자기가 스스로 잘하는 것을 외부에 알리고 각인시키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과 동시에 주변에 좋은 레퍼런스를 많이 두면서 나의 고정관념과 한계를 깨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여성으로서 가정과 함께 커리어를 이어가기 위해 더더욱 미국에 가고 싶다 느꼈다.
그러던 와중, 예전에 하던 창업동아리 단톡방에 흥미로운 네트워킹 행사 정보가 올라와서 신청해 참석하게 되었는데 Andrew 님의 링크드인 브랜딩 관련 강연과 Ji Hong 님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커리어 조언이 인상 깊었다. '나의 천재성을 찾아가는 데 투자하는 게 내 나이 때 가장 좋은 투자'이며, '나만의 스토리, 기술 등 독보적인 무언가가 있으면 경쟁상대가 없다.', '내가 거쳐간 회사의 나열보다 내가 무슨 임팩트를 만들었고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더 궁금해한다.' 등 도움이 되는 조언들을 얻었다.
이 날 특히 기억에 남았던 외국계 스타트업인 Need의 사람들과 대화 속에서, 내가 몇 달간 프리랜서로 독립하면서 잊고 있었던 조직 안에서의 성장, 몰입, 헌신과 열정을 되새길 수 있었다. 반면에 개인적으로는 직장에 매몰되지 않고 회사 밖에서의 사업 감각을 기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결국 지금 나의 시점에서는 커리어와 비즈니스 둘 다 해야 하고, 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났다.
퇴사 이후 포트폴리오와 링크드인 프로필을 정리하면서 내가 다른 디자이너들과 다른 점이 무엇이고, 어떤 산업과 직무에서 어필이 될까 고민해 왔다. 토스 때부터 사진을 찍어왔어서 실사 기반의 이미지를 능숙하게 다룰 줄 알고, 또 이제는 영상까지도 확장하고 있는 점을 활용해서 새롭게 링크드인 프로필을 업데이트했다.
Creative designer | Photo and video production specialist 로써 Corporate branding | Media content creation의 역량을 가지고 있다는 헤드라인을 작성했다. 디자이너이면서 사진, 영상 제작을 직접 할 수 있으니, 기업 브랜딩부터 기업의 미디어 콘텐츠까지도 디렉팅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다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지난 6개월 사이 레이오프를 겪고, 미국에 가겠다는 결정을 하고,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나고, 삶의 기세가 전반적으로 달라진 것 같은 2024년이다. 놀랍게도 최근의 근황은 긴 고민 끝에 전에 다니던 회사로 돌아가기로 했다. 잡 레벨도, 내게 주어지는 권한도, 팀 구성이 바뀌어 일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입사한 22년에는 엔트리인 L3, 그다음 해에는 L4, 그리고 올해 재입사하면서는 시니어 레벨인 L5로 빠르게 올라갈 예정이다. 기존에 팀원들과 팀장님이 있어서 그만큼 내 역할에서의 퍼포먼스를 낼 수 있었는데 이제는 달라진 상황에서 새로운 임팩트를 만들어가는 도전이 있을 것 같다. 이렇게 빨리 회사로 복귀할 줄은 몰랐는데,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3년 후 미국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다. 조직에서의 성장과 원하는 만큼의 자율과 꽤 괜찮은 보상과 영어학원을 대체할 환경과 미국으로의 커리어 기회를 주는 곳으로 반 년 만에 다시 돌아간다.
여행
틈틈이 국내 이곳저곳 여행 다니며 리프레시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고정 출근 시간이 없어서 대체로 내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행복했다. 지금은 다시 회사에 들어가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으니 그전까지 이 생활을 충분히 누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