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조카 1호 덕분에 깨달은 나눔
정지훈. 내가 사랑하는 조카 1호.
같은 지역에 살고 있지만, 각자의 일상이 바빠 부모님 댁에서 가끔 얼굴을 본다. 그날도 모처럼 모두가 모인 자리였다. 그런데 지훈이의 오른손에는 깁스가 씌워져 있었다.
“어! 지훈이 왜이래?”
“손이 아프다고 울길래, 병원에 갔는데 성장판쪽이 다친 것 같다고 우선 깁스를 하래요.”
올케가 슬픈 얼굴로 말했다.
“아직 두 돌도 안 된 아이가 어쩌다가.”
엄마도 거들며 걱정하셨다.
며칠 뒤, 다급한 전화가 왔다.
“언니, 지훈이 서울로 병원을 가야 할 것 같아요, 시간 괜찮으세요?”
“그럼, 무조건 가야지”
내가 사랑하는 조카 1호가 서울까지 올라갈 만큼 아프다니,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아장아장 걷는 지훈이는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다.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집안의 웃음은 자취를 감췄다. 우리 부모님의 첫 손자이자, 내가 가장 아끼는 조카 1호.
부모님은 매일 새벽 기도를 다니셨고, 평소 말씀이 없던 아버지도 “지훈이 괜찮을 거야.” 하며 어머니를 다독이셨다.
지훈이의 진단명은 ‘랑거한스세포 조직구증식증’. 백혈구 중 조직구가 과다 생산되어 몸의 여러 장기에 쌓이는 희귀 질환이었다. 원인도 알 수 없다는 설명이 우리 가족을 더욱 슬프게 만들었다. 정해진 날마다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는 것이 최선이었다. 직장에 다니는 남동생을 대신해 스케줄 조절할 수 있는 내가 올케와 함께 서울 병원에 다녔다.
지훈이의 암세포는 오른손 두 번째 손가락에 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 퍼졌는지 알 수 없어 양쪽 골수 검사를 해야 했다. 성인은 부분 마취로 검사를 하지만, 지훈이는 너무 어려 전신 마취가 필요했다. 작은 침상에 누워 수술실로 들어가는 지훈이를 보며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지훈이, 잘하고 나올 거야.”
올케를 안고 함께 기도했다.
마취에서 깨어나는 지훈이는 아장거리지 않았다. 술에 취한 듯 갈지자로 걸음을 옮겼다. 병원 복도에서 지훈이를 잡기 위해 ‘얼음땡’ 놀이를 하듯 뛰어다녔다. 히죽히죽 웃고 있는 모습이 다행이었다.
“언니, 마스크 꼭 써야 해요.”
“난 답답해서 잘 못 쓰겠던데.”
“그래도 아이들 감염 때문에 꼭 써야 한대요.”
순간 미안해졌다. 암 병동의 아이들 대부분은 머리카락이 없고, 몸에는 의료장비들이 가득했다. 그런데 나는 마스크 하나가 불편하다고 생각했구나.
지훈이는 다행히 약물 부작용 없이 머리카락을 유지했다. 하지만 병실의 다른 아이들은 대부분 머리카락이 없었다. ‘내가 이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없을까? 해외 봉사에서 만났던 아이들이 아닌 아픈 아이들을 위해서.
‘머리카락 기부’
염색도 파마도 하지 않고, 오랫동안 댕강 묶어 다녔던 내 머리카락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니 참 다행이었다. 미용실에 가서 머리카락 기부를 원한다고 하자, 미용사 선생님은 고무줄로 단단히 묶인 머리카락을 “땡강!” 하고 시원하게 잘라 주셨다.
“선생님, 머리 너무 짧아요!”
수업 중 아이들이 짧아진 내 머리를 보고 깜짝 놀랐다.
“아픈 친구들에게 머리카락 기부했어.”
“저도 할래요!”
이 한마디가 큰 파장(波長)을 일으킬 줄은 몰랐다.
미용실에는 머리카락 기부를 결심한 아이들로 북적였다. 초등학교 4학년, 1학년. 긴 머리를 아끼는 아이들이 선뜻 기부하겠다고 나섰다. 드레스만 입는 걸 좋아하던 여학생의 긴 생머리는 그녀의 ‘필수 조건’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기꺼이 포기하고 기부하겠다는 마음이 참 예뻤다.
“쟤가 한다고 해서 저도 하는 거예요.”
누군가의 행동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용기가 되었다.
“기부하면 상장도 준다.”
실은 기부 증서지만, 아이들에게는 따뜻한 마음이 담긴 ‘상장’이라 표현해 주었다. 짧아진 머리를 가진 친구들이 하나둘 늘어나자, 더 많은 아이들이 동참하기 시작했다. 어떤 아이는 2번, 3번씩 꾸준히 기부하기도 했다.
아이들의 선행을 널리 알리고 싶어 지역 신문사에 연락을 했다. 기자님과 인터뷰를 하는 날, 아이들은 한층 더 성장해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서영이는 두 번째 기부를 마쳤다.
“첫 번째 기부 했을 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또 하고 싶었어요.”
별이는 고등학생이 된 해, 자신의 생일에 맞춰 세 번째 머리카락 기부를 하기도 했다.
“중학교에선 파마나 염색을 못 하니까 머리카락을 계속 길렀어요. 관리하느라 조금 힘들었지만, 저는 원래 파마나 염색엔 관심이 없어서 괜찮았어요.”
그리고, 태어나서 앞머리 외에는 한 번도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았던 여섯 살 주은이도 있었다.
긴 시간 병원 생활을 해야 했던, 하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건강한 사랑스러운 조카 1호, 정지훈. 아픔의 시간이 길었기에, 아주 단순한 행동 하나가 이렇게도 큰 기쁨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아이들을 통해 다시금 알게 되었다.
머리를 자르고도 해맑게 웃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진심이 전해졌고, 그 작은 용기가 누군가에게는 얼마나 큰 희망이 되는지를 느꼈다.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 앞에서 매번 부끄러워진다. 나는 오늘도, 아이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며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