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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씀 May 03. 2021

무안도(無眼島) 기행

인간은 모두 장애인이다


내가 그 섬을 간 것은 29년 전 여름이었다. 


모 잡지사 기자였던 K선배가 내게 무안도 이야기를 해 주었다. 무안도, 無眼島, 말 그대로 눈이 없는 섬이다. 그 섬에는 앞을 볼 수 없는 사람들만 모여 살고 있다고 했다. 난 K선배의 말을 듣고, 소설 쓰지 마시라, 못 믿겠다는 리액션을 보냈다. 그러나 K선배의 표정에서 진실을 읽어내고는 급 호기심이 솟구쳤다. 원래부터 신박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취향이라 당장 가보고 싶었다. 하계휴가를 내고 올라탄 무안도행 배 난간에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인천 무의도에서 작은 배로 갈아타고 한 시간을 더 들어가야 했다.


선착장이랄 것도 없는 섬 모퉁이, 콘크리트로 덮은 경사면에 배가 비행기처럼 착륙했다. 나는 K선배의 조언대로 검정 선글라스부터 썼다. K선배는 일반인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한다는 말을 했었다. 마치 입국심사대처럼 꾸민 컨테이너 박스 앞을 지날 때, 난 비지땀을 흘릴 정도로 긴장했다. 섬으로 진입하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지켜보고 있는 아파트 경비원 복장의 남자 둘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 달 가까이 눈을 가리고 연습한 보람이 있어, 무사히 그 앞을 지날 수 있었다.


'아니지, 어차피 그 두 사람도 앞을 못 보지 않나? 근데 왜 내가 긴장한 거지?'


난 헛웃음이 나왔다. 섬에는 정말로 단 한 명도 앞을 보는 사람이 없었다. 많지 않은 사람들이 길 중앙에 설치된 흰색 인도줄(引道線)을 잡고, 전혀 불편하지 않게 이동하고 있었다. 작은 섬이라 자동차는 보이지 않았고, 아니 자동차는 없는 게 당연했다. 놀라운 것은 섬 전체가 쓰레기 하나 없이 깨끗하고 정돈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앞을 못 보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렇게 깔끔하게 청소를 해놓았는지 탄복했다. 나는 검은 선글라스 속에서 두 눈을 부릅뜨고 섬을 샅샅이 살폈고, 보는 광경마다 놀라울 따름이었다. 섬사람들은 하나같이 밝은 표정이었고, 인도줄을 잡고 이동하다 분기점이나 모퉁이에서 잠깐 멈추고는, 점자로 된 안내판을 더듬어 보고 원하는 방향으로 다시 걷곤 했다. 가끔 다른 사람과 만나면 자연스럽게 비켜주고, 웃으며 인사하며 담소도 나누는 모습이 육지의 일상과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 것은 해가 떨어지고 어둠이 파도에 밀려온 뒤였다.


나는 섬을 구경하는데 정신이 팔려, 묵을 곳을 미처 마련해 두지 않았던 것이다. 섬은 암흑 그 자체였다. 그믐인지 흐린 밤인지 모르겠으나, 달빛에 기댈 수도 없는 칠흑 같은 밤이 된 것이다. 앞을 볼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라 불빛을 필요로 하지 않았고, 가로등도, 상점의 간판 불빛도 이 섬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난 어둠에 갇혔다는 말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물리적으로 나를 가두진 않았지만, 어둠은 쇠창살보다 더 위력적이었다. 동서남북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한걸음도 뗄 수 없었다. 누가 등을 떠밀어도 갈 수 없었다. 여느 섬처럼 막연히 여관이 없으면 민박집이라도 있겠지, 생각했던 나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좀 더 철저하게 대비를 했어야 했다.


당황하니까 눈을 감고도 잘 걷던 내가 선글라스를 벗고도 휘청거렸다. 인도줄을 쥔 손에서 땀이 삐져나오고, 걸음은 이유 없이 빨라지고, 넘어지는 횟수도 늘어났다. 눈을 뜨나 감으나 똑같은 세상이었다. 앞을 볼 수 있는 사람도, 그럴 수 없는 사람도 차별 없이 동등한 세상이 내 앞에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나는 앞을 못 보는 것이 아니라 앞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둘의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공포였다. 난 공포에 사로잡혀 발을 떼놓지 못한 채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러다 나는 눈을 감아 버렸다.


눈을 뜨고 있어도 볼 수 없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섬에서 내 멀쩡한 두 눈은 무용지물이었다. 차라리 아무것도 보지 말자, 눈을 감고 인도줄을 더듬으며 몇 시간이나 섬을 헤맸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어느 순간 눈 앞이 환하다는 익숙한 느낌에 눈을 떴다. 세상에... 불빛이다. 간판 불빛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있을까. 


장애인의 집-무안도 종합사회복지관 부설 ☞


이렇게 써놓은 하얀 간판이 저 앞에 밝게 빛나고 있었다. 난 뛰어갔다. 앞을 못 보는 척해야 한다는 사실도 잊어버리고, 곧장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투명한 아이보리색 블라우스 차림의 여자가 문 열리는 소리에 반응하며, 나를 향해 말했다.


"저어, 오늘 밤 묵을 곳이 필요합니다. 혹시 이 근처에 여관이나 민박집이 어디쯤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이곳이 바로 손님 같은 장애인들을 위한 곳입니다. 무료로 묵을 수 있으니 이쪽으로 오십시오."


"잘못 알고 계신 것 같은데요. 저는 장애인이 아니라 정상인입니다. 아니 비장애인이란 말입니다."


난 여자에게 항의하듯이 말했다.


"손님께서는 이미 장애를 겪고 있지 않으신가요?"


난 할 말을 잃고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사실이었다. 비로소 진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앞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장애가 될 수 있으며, 앞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 정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방법으로 섬을 청소하는 이곳 사람들이 육지 사람들보다 훨씬 정상적이란 것을. 그리고 우리 모두는 장애인이란 사실을.



Epilogue

 모든 인간은 장애인이다


무안도를 닮은 섬
장애인복지법
제2조(장애인의 정의 등) “장애인”이란 신체적ㆍ정신적 장애로 오랫동안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는 자를 말한다.


인간은 원래부터 장애인이다. 신과 달리 불완전한 존재라는 얘기가 아니다. 인간의 신체 기능은 환경에 따라서 생활에 편리를 주기도 하고, 불편을 주기도 한다. 무안도에서 내가 겪었던 것처럼, 앞을 볼 수 있는 신체적 기능이 오히려 섬에서의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주었다. 따라서 나도 장애인복지법 제2조(장애인의 정의 등)에서 규정한 '장애인'에 해당하는 것이다. 


결국 '장애'라는 것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으로 구분 짓는 잣대가 될 수 없다. 그 구분은 인간을 둘러싼 환경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육지와 섬의 장애인 기준이 다르듯이 말이다. 육지에서 나는 비장애인, 섬에서는 장애인,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차라리 모든 사람을 장애인이라 하든지, 아예 '장애인'이란 말 자체를 지구 상에서 없애든지. 그냥 사람일 뿐이지, 장애를 가진 사람으로 부언할 필요가 없다. 모든 사람이 나름의 장애를 가졌는데, 굳이 구분할 필요가 있냐는 말이다. 나의 결어는 이것이다. 


모든 인간은 장애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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