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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씀 May 05. 2021

사과 할머니

사과드립니다.


"저 보래, 또 하나 지고 간다."

"그러게 평생 사과 한 번 안 하더니, 쯧쯧."

"저건 누구 집에 갖다 주는 거래?"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방향으로, 머리에 수건을 두른 왜소한 체격의 할머니가 자신 몸집만 한 사과를 짊어진 채 힘겹게 가고 있었고, 그 뒤를 감시하듯 거리를 두고 개 두 마리가 따르고 있었다. 저렇게 큰 사과도 처음 보았거니와 그 큰 사과를 지고 가는 할머니는 또 누구인지 궁금했다. 무엇보다 당연하다 감내하는 듯한 할머니의 표정이 더 궁금했다. 


"저 할머닌 누구신가요? 왜 저러시는 거죠?"


아까 골목에서 수군대던 사람들은, 무얼 당연한 걸 묻느냐, 는 얼굴로 처음 보는 이방인의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그 할머니는 마을에서도 성질 고약하기로 유명하였고, 무엇보다 남에게 피해를 주어도 잘못했다, 사과할 줄 모른다는 거였다. 평생 한 번도 잘못을 시인한 적이 없고, 마을 사람 어느 누구도 할머니의 사과를 받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사과하면 죽는 병에 걸렸느니, 사과도 먹지 않느니 하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고 했다. 자연히 마을 사람들은 할머니와 접촉하기를 꺼리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사과 할머니가 몹시 아프던 날 밤, 먼저 간 할아버지가 꿈에 나타나 저 세상 이야기를 전했다고 한다. 이 세상에서 저지른 잘못에 대하여 사과를 하고 용서를 받지 못하면 저 세상으로 올 수 없다는, 저 세상에서는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보다 남의 마음을 훔치는 것을 더 나쁜 일로 여기며, 이 세상에서 남의 마음을 훔쳤다면 진심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받아야 한다고.


영감, 나는 남의 마음을 훔치지 않았어요, 할머니의 말에 할아버지는 측은하게 바라보며, 할멈, 잘못하고도 사과하지 않고 남의 마음에 상처를 입힌 것은 그 사람의 편안하고 행복한 마음을 빼앗아 간 거야. 훔쳐간 것보다 더 나쁘단 말이야, 할아버지의 말에 할머니는 고개를 떨구었다고 한다. 그날 이후 할머니의 기이한 행동이 시작되었다고 마을 사람들이 입을 모았다.   


사과 할머니는 밤마다 대나무를 잘라 틀을 만들고 창호지를 붙여 대형 사과를 만든다고 했다. 마치 사월초파일 연등을 크게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밤새 큰 사과 한 개를 완성하면, 다음날 아침 그 사과를 지고 나선다고 했다. 그리고는 지난날 사과하지 않았던 사람을 찾아가 그 사람의 집에 사과를 내려놓고 서 있다 온다고 한다. 묵념하는 자세로 뭐라고 중얼거리며 한참을 서 있다 돌아온다는 후문이었다. 내가 사과 할머니를 카메라에 담으려고 황급히 돌아서는데, 뒤에서 마을 아주머니의 말이 따라왔다. 


"오래된 사과는 시들기 마련이여, 글구 시든 사과는 껍질도 잘 안 벗겨지잖여. 사과도 때가 있는 법인데 말이여, 때를 놓치면 사과는 못 먹어."




우리 주변에도 사과 할머니 같은 사람이 있다. TV에 이런 사람 많이 나온다. 요즘 부쩍 많아졌다. 사과하면 죽는 줄 아는 겉똑똑이들 말이다. 잘못을 시인하는 순간, 자기 정체성과 자존감이 무너진다고 두려워하는 사람들, 그들 무리 내에서 패배자로 따돌려질까 봐 사과하지도, 용서를 빌지도 못하는 사람들, '피해 호소인' 운운하거나, 의류 매장 직원을 폭행하고도 사과하지 않는 벨기에 대사 부인 같은 부류의 사람들 말이다.


사과(謝過)는 영어로 apology란 단어를 쓴다. apology는 그리스어 ‘apologia’에서 유래했고, 이 말은 ‘apo(떨어지다)’와 ‘logos(말)’가 합쳐진 단어로 ‘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말’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한다. 네이버 사전에 그렇게 나온다.


'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말'인데도 그 말하기를 죽기보다 싫어하는 사람들, 사과 자체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모르는 것일까. 사과한다고 자신의 가치가 하락하거나 없어지는 것이 아니란 것을. 사과는 곧 자신에 대한 반성이고, 그런 성찰을 통해 어제의 실수에서 해방되어 내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실수는 실패가 아니며,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실수란 것을.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한마디는 이 말이다.


뒤돌아보지 않는 자,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Epilogue

사과드려요


사과 할머니는 오늘도 사과를 지고 간다 


몇 해 전 겨울, 문경읍 어느 마을 담벼락에 그려진, 사과를 지고 가는 할머니를 찍었다. 습관처럼 우리는 연말이 되면, 지나온 일 년을 돌아보게 된다. '정말 잘 살았어, 후회 없는 날들이었어.' 이러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 한숨을 내쉬며 먹먹한 마음으로 후회를 한다. 뒤돌아 보면 언제나 후회와 아쉬움뿐인 것이다. 조금 더 잘 대해줄 걸, 그때 그렇게까지 하지 말 걸, 반성을 하면서도, 사과의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는 경우가 많다. 그러는 사이 세월은 후-욱, 하고 지나가 버린다. 70년이 훌쩍 지나간 사과 할머니처럼 말이다. 저처럼 늘그막에  나도 사과를 지지 않으려면 당장 사과부터 하러 다녀야겠다. 잘 익은 빨간 사과를 하나씩 전해주면서, "사과드려요. 그때 내가 너무했어요. 속상했죠, 미안해요."라고 말하며, 마음속 응어리 서로 다 풀고, 함께 웃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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