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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씀 May 10. 2021

노예로 사는 증거

노예가 들어 있는 말


노예가 노예로 사는 삶에 너무 익숙해지면 놀랍게도 자신의 다리를 묶고 있는 쇠사슬을 서로 자랑하기 시작한다. 어느 쪽의 쇠사슬이 빛나는가, 더 무거운가. (리로이 존스, 1968년 NY할렘에서) 


아니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사실 우리는 노예다.


누구 책상의 서류더미가 더 높은가, 누가 더 비중 있는 과제를 수행하고 있는가, 누가 가장 야근을 많이 했고, 누구의 초과근무수당이 더 많은가, 금년도 미사용 휴가는 누가 가장 많은가, 그래서 얼마를 보상받는가. 


놀랍게도 우리는, 과거 노예들이 그랬던 것처럼, 지금의 삶에 익숙해진 채 서로의 쇠사슬을 자랑하고 있다. 그렇지 아니한가? 동의할 수 없다고 하니 한 발 물러선다. 그래 봐야 시간 팔이 노동자일 뿐이다. 우리는 시간의 사슬에 묶여 매혈하듯 시간을 팔아먹고 사는 시간 팔이 노동자다. 주당 40시간을 팔기도 하고, 60시간을 팔기도 한다. 체인으로 묶여 있는 주의 경우는 하루 24시간 모두를 팔아야 겨우 입에 풀칠을 한다. 서글프지만 우리의 자산은 시간뿐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의 시간을 나의 의지대로 소비할 권리를 가졌는지 묻는다. 당초 계약된 시간만큼만 제공하고서 생존이 가능한지 묻는다. 그러고도 가족부양과 내 집 마련, 자기 계발과 취미 활동하는 생활이 가능한지도 물어본다.


결국은 계약한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빼앗기며 살고 있을 것이다. 아니 빼앗긴 게 아니라 내가 먼저 헐값에 주겠다고 하여 갖다 바쳤을 것이다. 일부는 직장이 적성에 맞는다며 충성심에 불타 여분의 시간을 대가 없이 제공했을 것이다. 그러나 적성이란 주어진 일에 적응하는 것을 말한다. 적성은 찾는 게 아니라 맞추는 것이다. 직장에서는 똑똑하고 유능한 직원보다 업무에 자신을 맞추며 순응하는 직원을 선호한다. 자기의 자유를 주장하지 않고, 정책목표 달성에 몰입되어 자기 시간을 정신없이 내던지는 그런 직원을 우수직원으로 치켜세운다. 다른 말로는 '노예'라고 한다.  


노예의 삶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노예의 증거를 없애야 한다. 노예로 살지 않기를 원한다면. 노예의 증거들을 하나하나 파쇄하기를 권한다. 더 이상 빛나는 쇠사슬이 허용하는 자유에 만족하지 않아야 한다. 자유는 자기의 이유를 갖는 것, 이라 했다. 이제 나의 이유가 무엇인지 돌아볼 나이가 되었다. 집보다 회사에서 더 많은 밤을 보내는 이유가 무엇인지 고뇌할 때가 되었다.


일단은 내가 팔겠다 계약하지 않은, 나의 시간에 대하여 함부로 허비하지 않기로 하자. 그 시간만큼은 회사도, 친구도, 가족도, 권리가 없다. 완벽하게 나의 소유다. 내 마음대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쓰기로 하자. 하고 싶은 일, 적성을 맞추지 않아도 되는 일, 억지로 적응할 필요가 없는 일... 있지 않은가. 그 일을 하며 한 번 살아 보자. 지금까지 그 일을 포기한 이유는 단지 그것이 편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빼앗기지 말자, 내 시간은 내 거다.




Epilogue

억울한 시간


망치질하는 사람 Hammering Man

월급은 내가 회사에 공헌해서 받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의 기회손실에 대한 비용으로 받는 것이라고 한다. 나는 내 인생의 어떤 것을 희생하며 직장을 다니고 있는 걸까.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어쩌면 내가 간절히 원했던 그 일 대신에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러므로 허투루 살지 말자. 흘려 살기에는 너무나 억울한 내 시간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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